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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쇼호스트 김형수 Jun 20. 2019

쇼호스트 되기 3

- Too much love will kill you

공중파 아나운서가 되는 절차는 보통 이렇다.


1차 서류 전형

2차 실기 테스트

3차 필기시험

4차 실기 테스트 2

5차 최종면접


쇼호스트도 이와 비슷하다. 3차 필기 전형이 없을 뿐 테스트하는 내용은 과연 이 지원자가 카메라 앞에 서서 '쫄지' 않고 프레젠테이션을 잘할 수 있는 사람인가. 방송국 정체성맞는 인물인가 등을 테스트하는 것이다.


서류 전형은 참 거시기하다. A사에서는 떨어진 친구가 B사에서는 최종면접을 통과하기도 하는 것을 보면 각 사마다 기준이나 지향점이 다르다. 물론. 모든 회사의 전형절차에서 우수한 성적으로 통과하는 사람도 있다.


각 회사의 공채는 수학이 아니다.  1+1=2 라는 자명한 답을 갖고 있으면 대비하기가 차라리 쉬우련만, 공채는 논술과 비슷해서 정해진 답대로 준비하기가 어렵다. 프로필 사진, 자기소개서, 요즘 특히 많이 요구하는 자기소개 동영상 등을 열심히 준비하는 수밖에 없다.


서류전형에 통과하고 나면 대략 최종 선발인원의 10배 수 정도의 지원자가 실기 테스트를 보게 된다. 


시간여행이 가능하다면 19년 전 여러 방송사의 아나운서 시험을 보러 다녔던 28살의 나를 만 이렇게 말해주고 싶다.


"형수야~너무 사랑하면 다친다. 하던 대로 편하게 해"  누군가 이런 조언을 했더라도 조언대로 하기란 매우 어려운 일임을 안다.


그때는 정말 간절했다. 비단 아나운서의 역할뿐만 아니라, 여러 가지 사정상 번듯한 회사의 일원이 되어야만 했다. 시험 때마다 너무 비장해서 얼굴은 경직되곤 했다. 집에서 시험장까지 갈 동안은 괜찮았는데, 수험표를 달고 대기하는 곳에 들어서면 머릿속은 하얘지고, 심장은 쿵쾅거렸다. 누가 청심환을 먹으면 괜찮다 했는가. 아무 소용없는 짓이었다.


이윽고, 시험장에 들어가 수많은 면접관들 앞에 서게 된다. 생전 처음 서보는 화려한 조명과 여러 대의 카메라 뒤편에 '이번 조 애들은 얼마나 잘할라나 보자'는 표정의 사람들이 나를 노려 본다. 


숨을 깊이 들이마시고 내쉬기를 수차례 해보지만 내 심장이 고장 났나 보다. 여전히 맥박이 빠르다. 대략 10명이 한 조인 경우가 많았는데, 나만 그런 것은 아니었다. 어떤 지원자는 하도 떨다 보니 들고 있던 원고까지 너무 흔들려서 '파닥파닥' 소리가 날 정도였다. 내 차례가 왔다. 아카데미에서는 선생님께 칭찬도 곧잘 들었는데, 원고가 아득히 멀리 보이고, 급기야 입안에 침이 마르는 위기까지 찾아왔다.


전문가들은 "안녕하십니까. 수험번호 126번 김형숩니다. 문재인 대통령은 오늘 북유럽 3개국 순방을 마치고 귀국길에 오릅니다" 정도의 문장만 듣고 지원자의 실력을 가늠할 수 있다.


짧게 진행되는 1차 실기는 늘 통과가 가능했지만, 좀 더 심층적으로 지원자를 들여다보는 2차 실기는 통과하지 못하는 경우도 있었다. 긴장으로 목젖까지 말라 발음이 뭉개지는 등 제대로 실력 발휘가 안된 탓이다.


실제 초보 후배들과 방송해보면, 어떤 친구들은 지나친 긴장으로 잠시 정신이 멍해져 할 말을 잇지 못하는 '블랙아웃' 상황을 겪기도 한다.


다난한 과정을 거쳐 베테랑 쇼호스트 소리도 듣고, 지원자를 관찰하는 면접관 역할도 하는 사람이 되어, 과거를 복기해 본다. 이제내가 아나운서가 되지 못하고, 쇼호스트가 된 이유를 알게 되었다. 아나운서 시험장에서는 너무 간절했고, 쇼호스트 시험장에서는 '에라 모르겠다' 식의 마음 상태였기 때문이다.


아나운서 시험장에서의 나는 너무나 간절해서 준비한 것의 반도 제대로 보여주지 못하는 쫄보였지만, 쇼호스트 시험장에서 나는 준비도 별로 안되어 있으면서 당당하게 시험에 임하는 당돌한 지원자로 보였을 것이다. 그때의 나는 쇼호스트 시험은 연습이라고 생각했었으니까 가능한 마음가짐이다.


그렇게 시험에 임했더니 '저 지원자는 프레젠테이션을 잘하지는 못하지만, 하나도 안 떠네? 잘 가르치면 가능성이 있겠는걸?'과 같은 평가결과 뽑 것이라 생각한다. 물론 요즘은 가능성뿐 아니라 일정 수준의 프레젠테이션 실력도 갖추어야 뽑힐 수 있다.

Too much love will kill you - Queen
너무 아픈 사랑은 사랑이 아니었음을 - 김광석


후배나 후배가 되려고 노력하는 사람들과 사사로운 자리에서 이야기를 나누는 기회가 있을 때 비유로 삼는 노래 제목들이다.


너무 잘하려고 하면 잘 안된다.

너무 잘하려고 하는 마음 자체가 부담이 되어 가진 실력을 억누른다. U 20 월드컵에서 대한민국 남자축구 역사상 처음으로 준우승을 차지한 20세 이하 대표팀을 보면 실력도 좋지만, 우리 축구 대표들이 늘 가졌던 비장함을 내려놓고, 즐기려 하는 자세를 보이지 않았던가. 심지어, 승부차기에서 만면에 웃음을 가득 짓고, 상대 선수를 응시하던 우리 골키퍼가 상대의 슛을 막아내고 결국 팀을 승리로 이끌기도 하지 않았는가.


시험장에서 선 지원자들이 이런 자세로 경기에 임했으면 좋다. 이를테면 '당신들이 나를 안 뽑으면 이 회사 손해지 뭐...'와 같은 생각을 해보는 거다. 마음이 편해야 제 실력을 발휘할 수 있다.


지나친 사랑이 마음에 부담이 되지 않기를 바란다. 연습한 만큼 제대로 한판 놀고 나오겠다는 마음으로 시험에 임하면 어떨까.


치열하되, 살살하는 것. 

써놓고 보니 어렵지만 그래야 머리도, 호흡도, 말도 자유롭다. 그래야 평소 실력만큼, 아니 평소보다 더한 실력이 표출된다.  


예비 후배들의 건투를 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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