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교 선생님의 첫사랑은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학생들이 열광하는 수업 소재이다. 나는 수업 주제의 인기 순위를 매길 때 평소에 좀처럼 볼 수 없는 초롱초롱하고 열정적인 눈빛을 보내는 학생들의 비율을 기준으로 삼는다. 이를 척도로 그동안의 수업 주제를 인기순으로 줄 세워보면, 1등은 성교육(부제:성관계란 무엇인가)이고 그다음 순위는 첫사랑이다.
청소년기는 가족이 아닌 타인에게 느끼는 사랑의 감정을 처음으로 마주하고, 체험하며, 그 경험을 통해 사랑하는 방법을 배워가는 시기이다. 그러니 아직 사랑을 경험해보지 못한 학생들은 어른의 선례를 무척 궁금해한다. 생판 남인 관계에서 모종의 사건을 계기로 호감을 싹틔우고, 서로에게 의미 있는 존재가 되어가며 사랑을 꽃피우는 그 일련의 과정을 도대체 어떻게 밟아나가는지 간접적으로나마 느껴보고 싶은 것이다. 되돌아보면 나도 중고등학생 시절 선생님께서 첫사랑 얘기를 해주실 때면 열심히 귀를 기울이며 주인공이 된 것처럼 설레하기도, 안타까워하기도 하며 몰입했던 기억이 있다.
이제는 내가 아이들에게 첫사랑을 얘기해준다. 나는 정말 운이 좋게도 영화의 한 장면 같은 첫사랑 이야기를 갖고 있다. 영화라고 하기에는 조금 부족하다 해도 웹드라마 수준은 될 것이다. 내 첫사랑 얘기를 해줄 때면 아이들이 시간 가는 줄 몰랐다며 높은 평점을 남겨주니, 나름의 흡입력과 울림이 있는 추억이라고 생각한다.
때는 2012년 여름이었다. 나는 고등학교 2학년이었고 1학기 내신을 마무리하는 기말시험을 치열하게 준비하고 있었다. 2학년이 되어 자연계를 선택하면서 좋은 내신 점수를 받기가 더욱 어려워졌다. 모든 과목에서 1등급을 받고 싶었던 나는 미련할 정도로 간절하게 공부했다. 지나친 간절함은 종종 자신을 좀먹었다. 내신 성적에 심한 압박을 느낄수록, 성적은 떨어졌다. 기말시험은 하락한 1학기 내신을 보정할 수 있는 마지막 기회였기 때문에 좋은 결과를 받아야 한다는 강박감이 더욱 강했고, 그만큼 힘겨워하며 고통받고 있었다.
그날도 독서실에서 묵직한 스트레스를 짊어지고 자신을 채찍질하며 공부하고 있었다. 물을 마시고 왔는지, 화장실을 다녀온 건지 잠시 자리를 비웠다가 돌아왔는데, 내 자리에 전에 없던 파란색 레쓰비가 "힘내세요!"라는 포스트잇과 함께 놓여 있었다. 그 포스트잇이 얼마나 고마웠던지, 이러한 상황에서 응당 느껴야 할 설렘 또는 두근거림보다는 감동과 고마운 마음이 더 크게 다가왔다. 나를 잘 아는 주변 사람이 아니라, 이름도 모르지만 힘내라고 말해주는 사람이 있다는 사실이 정말 감사했다. 그날 위로받았던 기분은 10년이 지난 지금도 생생하다.
그때의 나는 기운 빠지고 지쳐버린 경주마에게 매섭게 채찍질하고 있었다. 말은 어떻게 해서든지 근력을 짜내면서 남들을 제치고 싶어 온 마음을 다해 달렸다. 하지만 어떻게 해도 다리 근육에는 힘이 들어가지 않았고, 그저 넘어져 버리고 싶었다. 내리 채찍을 맞은 상처에는 피가 맺히고 살점이 패였다.
익명의 누군가가 선물해준 레쓰비와 포스트잇은 따가운 상처에 연고를 발라주었다. 쪽지를 건네준 사람이 누굴까 궁금했지만, 일부러 찾으러 다니지는 않았다. 다만 그 포스트잇 쪽지를 항상 필통에 넣어 다녔다. 힘들 때마다, 우울하고 지칠 때마다 쪽지를 꺼내볼 수 있는 든든한 부적이었다.
그렇게 기말고사가 끝났다. 시험의 결과는 기대에 미치지 못했다. 2등급이 몇 개 있을 것이 확실했다.
기말고사가 끝났지만 계속 독서실에 다녔다. 당연히, 공부해야 하니까. 그날도 항상 그랬듯이 독서실에 앉아서 문제를 풀고 있었는데, 누군가가 책상 구석으로 쪽지 하나를 살며시 놓고 갔다. 공책의 귀퉁이를 찢어 꼬깃꼬깃 접은 쪽지를 펼쳐보니 "죄송하지만 한 번만 밖으로 나와주세요."라고 적혀 있었다.
"어머, 내가 누군가의 심기를 불편하게 했나." 긴장하면서 밖에 나가보니 웬 키 큰 청년이 쭈뼛거리며 서 있었다. 나눴던 대화 내용이 잘 기억나지는 않지만, 그 청년이 쑥스러워하며 레쓰비 맛있게 먹었냐고 물어봤던 것 같다. 그리고 몇 주 전 레쓰비를 놔둔 사람이라며 어색하게 자기를 소개했다. 그는 근처 남학교에 다니는 고등학교 3학년이고 나와 같은 중학교를 졸업한 1년 선배이기도 했다. 그 이후로 독서실에서 자주 마주치면서 빠르게 가까워졌고, 수능 100일을 기념하는 날 오투시네마에서 다크나이트 영화를 보러 갔다. 그리고 그날부터 사귀는 사이가 되었다.
나는 공부를 곧잘 하는 편이었기에 큰 이변이 없으면 무난하게 서울에 있는 대학에 갈 수 있었다. 그러나 그는 본인의 성적으로 짐작했을 때 이대로라면 부산에서 대학을 다니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나와 같이 서울에 있는 대학을 가고 싶어 하던 그는 수능까지 남은 100일 동안 정말 열심히 공부했다. 현실의 냉혹함을 모르는 고등학생이어서 가능했던 걸까. 순수한 열정, 투지 같은 거였다. 그 기간 독서실 마감은 항상 그 친구가 담당했다.
그렇게 100일의 시간이 지나고 2012년 11월 수능 날이 되었다. 100일 동안 있는 힘껏 공부에 최선을 다했던 그는 그 전과 비교했을 때 분명 월등하게 실력이 향상되었지만, 아쉽게 수능 성적과 입시 결과는 기대에 미치지 못했다. 그는 깊게 고민했을 것이다. 그리고 한 번 더 수능에 도전하기로 결심했다. 그 결정을 하기까지 여러 가지 이유가 있었겠지만 나도 그중 하나였다.
2013년 재수생이 된 그와 고3이 된 나는 스터디인지, 데이트인지 모를 것을 함께하며 공부했다. 주된 장소는 부산대 도서관, 그리고 독서실 부근이었다. 만나서 같이 쉬기도, 웃기도, 다투기도 하면서 치열하게 미래에 대해 고민하고 또 수능이라는 목표를 향해 달려가는 서로를 다독이며 1년의 세월이 흘렀다.
2013년 11월 그의 두 번째 수능, 나의 첫 수능 날이다. 그 친구는 재수하는 1년 동안 정말 치열하게 공부했고, 서울권 대학에 진학할 수 있을 만큼의 실력을 착실하게 쌓아왔다. 하지만 시험에서 제 기량을 모두 발휘하지 못했고, 그간의 노력에 견주면 다소 아쉬운 점수를 받았다.
아직도 기억한다. 수능 날 밤이었다. 가채점을 마치고, 그가 우리 아파트 놀이터에 터덜터덜 걸어왔다. 그리고 아쉬움에 엉엉 울었다. 그런 그를 말없이 토닥이는 것 외에 내가 할 수 있는 게 없었다.
나는 수시로 서울권 대학에, 그는 정시로 부산권 대학에 진학했다. 우리는 관계를 견고하게 다져나가기보다는 새롭고 즐거운 각자의 대학생활에 심취해 있었다. 고백하자면 내가 좀 더 많이 빠져 있었다. 장거리 연애를 할 때 자주 못보는 상황에서 필연적으로 발생하는 서운함, 그리고 새로운 삶을 시작하면서 쌓여가는 두근거림에 내가 먼저 헤어지자고 말했다. 그게 2014년 4월이었다. 1년 8개월가량의 풋풋하고 귀한 첫사랑이 막을 내렸다.
이렇게 이야기를 마무리하면서 난 학생들에게 "이 이야기에서 얻을 수 있는 교훈이 뭘까?" 하며 장난스럽게 질문한다. 학생들은 "여자 때문에 재수하면 안 돼요!" "재수하면 성적이 오르기 어려운가 봐요." "장거리 연애는 되도록 안 할 거에요."라며 말한다. 아마 연애가 끝나버렸고, 그 친구의 재수 결과에 아쉬움을 느꼈기 때문에 그런 생각을 했을 것이다.
그렇지만 난 그건 중요한 게 아니라고 말한다. 그리고 선생님의 첫사랑에서 감히 교훈을 추려본다면, "항상 포스트잇, 그리고 간단한 간식이나 현금을 아주 조금 넉넉하게 챙겨 다녀서 내가 응원하고 싶은 상대를 마주할 때 그 기회를 놓치지 않기"라고 알려준다.
누군가에게 응원받는 일은 정말 감사하고 또 눈물날 정도로 위로가 된다. 그 대상이 정말 생뚱맞은 사람일 때 놀라움과 함께, 세상에는 내가 잘 되길 바라는 사람이 있구나 하며 더 큰 힘을 받기도 한다. 10년이 지난 지금도 불쑥불쑥 그때의 쪽지가 떠오르며 마음이 따뜻해진다. 그런 쪽지를 준비하고 남겼을 때 그는 어떤 마음이었을까. 그 사람도 좋은 마음으로 그 기억을 간직하면 좋겠다.
평생 잊지 못할 위로를 해준 것도, 불안하고 고되었던 수험생 기간을 아름답게 기억할 수 있는 첫사랑의 추억으로 만들어 준 것도, 그리고 앞으로 수십 년 동안 학생들에게 들려줄 수 있는 영화 같은 이야기를 남겨준 것도, 고마운 게 참 많은 첫사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