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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소연 Dec 06. 2022

0. 들어가며

하찮은 이야기에도 배움이 깃들지어다.

어쩌다 보니 교사되기 일보직전

어쩌다 보니 중학교에서 가정 과목을 가르치고 있습니다.
교사가 된 첫 해, 학교에 출근하니 아이들이 저를 '선생님'이라 불렀습니다. 한동안 그 호칭은 저에게 큰 부담이었습니다. 너무나 평범하고 내세울 것 없는 저라는 사람을 통해 아이들이 이 세상을 알아갈까 봐 두려웠거든요. 제가 그들의 선생님인 것이 나쁜 영향을 주는 게 아닐까 조심스러웠습니다.

제 전공 과목이 가정이라는 것도 양심에 찔렸습니다. 가정 교과서는 의 식 주 가족 소비 생활을 통해 행복한 삶을 직접 살아가는 방법을 설명합니다. 알려준 대로 따라 하면 행복해질 수 있을 거라고 말합니다. 쉬워 보여요. 하지만 어른으로 잠시 살아보니 '행복'이 말은 쉽지, 일상생활에서 마주하는 게 어려운 일이라는 걸 알아버렸습니다.
저는 행복한 사람이 아닙니다. 보통은 밋밋하며, 아주 드물게 행복을 느끼고, 그보다 자주 우울하고 화가 납니다.


이런 제가 가정을 가르친다는 게 부끄러웠던 적이 있습니다. 아이들 앞에서는 시간 관리 방법을 설명하지만, 정작 저는 하릴없이 유튜브를 보며 시간을 낭비하기도 하거든요. 균형 잡힌 영양을 강조하지만 저도 식사를 거를 때가 있으니깐요.
이제는 받아들이기로 했습니다. 저는 교과서에 있는 내용을 글자로 내뱉을 수는 있을지라도 완전한 행동으로 실천할 수는 없어요. 사랑을 책으로 배운 사람 같다고나 할까요. 패션을 책으로 배운 사람이라고나 할까요.
다만 제가 할 수 있는 건 그 지식을 과거, 현재, 미래의 경험을 통해서 무수히 많은 시행착오를 겪어보는 겁니다. 아 이렇게 사랑하면 상대방이 지치는구나, 이런 옷차림은 나에게 어색하구나. 그렇게 몸으로 배워간 과정을 알려주는 게 제가 할 수 있는 최선입니다.


그래서 저는 수업 시간에 제 이야기를 자주 들려줍니다. 대개는 흑역사인 경우가 많아요. 결혼 직전 갔다가 깨진 연애썰이나 다이어트 실패썰을 들려줍니다. 제가 직접 손빨래를 하는 우스꽝스러운 영상을 모아 브이로그로 보여주기도 해요. 그 내용들은 종종 놀림거리가 되기도 합니다. 너무 사적인 것 아니냐고 할 수 있어요. 그렇지만 아이들의 호응이 너무 좋아서 저는 또다시 광대를 자처합니다. 실제로 내 눈앞에 서 있는 어른이 직접 경험한 사연들은 가장 효과적인 학습자료가 될 거라 믿습니다.

이런 말을 들으면 썰을 안 풀래야 안 풀 수 없다.

되돌아보면 제가 학생이었을 때도 수업 시간에 교과서의 지식을 받아쓰는 것보다 곁다리로 새어가던 선생님의 잡담이 더 재미있었습니다. 열심히 외웠던 개념들은 일찌감치 증발했지만, 몇몇 선생님의 잡담 내용은 아직까지 종종 생각이 납니다.
잡담을 할 때 선생님은 지식을 전해 주는 사람이 아니라 저보다 먼저 인생을 살아본 사람이었습니다. 그래서 저에게 선생님이란 그 사람의 말과 행동, 그리고 그가 들려주는 여러 경험담을 통해 내가 살아보지 못한 어른의 세계를 간접적으로 체험할 수 있게 알려주는 존재였습니다.

이제 저는 '선생님'이라는 호칭을 어색해하지 않습니다.
선생님, 즉 먼저 태어난 사람이라는 뜻이지요. 지구의 공기를 조금 먼저 맡은 사람의 관점에서 아이들에게 어른으로서 살아가는 방법을 보여주는 것이 제가 해야 할 역할이라는 걸 압니다.
제 삶이 정답은 아닙니다. 만약 정답이란 게 있다면 그것과 거리가 한참 멀 것이라 예상합니다. 저는 완벽하게 행복한 사람도 아닙니다. 하지만 행복을 향해 여러 도전을 하고, 시행착오를 거치면서 성장하고 있는 어른입니다. 이런 삶을 사는 사람은 이런 선생님이고, 이런 어른이란다. 아이들에게 들려줄 수 있는 여러 사례 중 하나가 될 수는 있겠지요. 가치 판단은 아이들의 몫으로 남겨두겠습니다.

앞으로 말할 이야기들은 제 시행착오의 기록입니다. 수업 시간보다 아주 약간 더  정제된 언어와 해석을 담아서 엮어보려고 합니다.

조금의 욕심이 있다면, 제 이야기를 읽으며 아이들이, 그리고 어른들이 세상을 좀 더 재미있는 곳으로 생각했으면 좋겠습니다. 일상은 대부분 밋밋하고 행복은 드물지라도, 힘내서 살아볼 만한 곳이라고 여겼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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