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장인에게는 입사 후 3년 간격으로 이직을 고민한다는 법칙이 있다. 새로움-익숙함-지루함을 느끼는 간격이 3년 정도 되는가 보다. 난 이제 만으로 2년이 거의 꽉 찼고, 학교는 슬금슬금 내년을 위한 준비를 하고 있으니 3년을 눈앞에 두고 있다고 하자. 요즘 이런 생각을 자주 한다. 내가 이 직업만 가지고 평생을 살 수 있을까. 정확하게 말하자면 나의 청, 장년층을 교사라는 직업으로만 살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다. 우리 엄마는 이 말을 듣고 '호강에 겨워 요강에 똥을 싼다.'라고 후기를 남겼으며, 직설적 표현에 능숙한 간호사 친구는 '배가 불렀네. 그럼 너 대신 내가 교사할게.'라며 진심으로 재수 없어 했다.
복에 겨운 고민이긴 하다. 예전만큼은 아니라고 하지만 그래도 공무원 시험이나 공기업의 입사 경쟁률을 보면 여전히 수많은 사람들은 큰 사고를 치지 않는 이상 해고될 일 없는 안정적인 직장에 큰 의미를 두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나도 그 안정성에 이끌려 2년이라는 시간을 매달린 뒤 겨우 교사가 된 것이다. 처음 일자리를 구했던 그때는 평생직장에서 풍기는 믿음직스러움이 얼마나 간절했는지 모른다. 어른이 되었다는 이유로, 대학을 졸업해야 한다는 이유로 황무지 같은 인생을 혼자의 힘으로만 개척하려니 앞이 깜깜했다. 그 막막함을 어떻게든 빠르게 해치워 버리고 싶었다. 어떻게서든지 확실한 것들로 하나씩 심어두고 싶었다. 올해, 내년, 십 년, 이십 년 후에도 변함없이 꽃을 피울 수 있는 그런 믿는 구석을 심어놔야 했다.
하, 인간은 어쩜 이리도 간사한지. 화장실 들어갈 때 마음과 나올 때 마음이 다르다더니, 지금은 매해 똑같이 피는 꽃이 조금 뻔해지기 시작한 거다. 분명 예쁘고 귀엽고 사랑스러운데 다른 꽃을 심었다면 어떨까? 맨날 장미꽃만 볼 수 없잖아. 동백꽃은 어떤지 궁금한데. 이런 궁금증이 들기 시작했다. 행복한 고민이라고? 맞다. 지금 내가 하고 있는 일이 너무 힘들거나, 적성에 맞지 않았다면 고민은 생략하고 곧바로 이직 준비를 했겠지. 하지만 내가 노인이 되어 20대를 되돌아보았을 때 너무 일찍부터 편안함과 안정감에 몰입하느라 지금의 젊음과 활력을 아쉬워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드는 건 어쩔 수가 없다.
난 지금의 직업을 당장 그만 둘 용기도, 그럴 결정을 내릴 만큼 열렬하게 하고 싶은 일이 있는 것도 아니다. 평생을 교사로만 살고 싶지는 않지만 교사의 테두리를 벗어나는 건 시험을 치렀던 그 고생이 아직까지는 너무 아깝고, 지금 하는 일도 그만두기에 너무 아쉽다. 욕심쟁이다. 입구가 좁은 사탕 상자에서 손을 끝까지 움켜쥐고 있으니 도무지 사탕을 밖으로 빼낼 수가 없다.
그래서 내린 결론. 교사 테두리 안에서 할 수 있는 딴짓을 열심히 해보자. 그리고 그게 바로 글쓰기이다. 글을 잘 쓰고 싶다. 재미있어서 조금씩 글을 남기다 보니 더 잘하고 싶어졌다. 난 지금 전문 작가만큼 글솜씨가 수려하거나, 마음을 울리는 문장을 생각보따리에서 골라잡을 수 있을 정도로 글을 잘 쓰는 게 아니란 걸 안다. 그래도 믿는 구석이 있다. 내가 읽은 글쓰기 책들에서 지극히 평범한 사람도 작가가 될 수 있다고 했다. 그리고 그 가능성을 실현하기 위해서 저자들은 이구동성으로 성실하게 글을 써야 한다고 말했다. 그러면 분명 실력이 늘 거라고 했다. 오케이, 꾸준히 쓰면 실력이 는다는거죠? 그럼 일단 성실하게 글을 써보겠습니다.
솔직히 고백하자면, 이 글을 쓰게 된 건 글쓰기 권태기 때문이다. 블로그에 글을 올리는데, 조회 수나 유입 경로가 은근히 신경 쓰이면서 조금씩 자신을 검열하고 있었다. 솔직하지 못하니 글쓰기가 이전만큼 재미있지 않았다. 그러다 오늘은 글 쓰지 말까도 생각을 했다. 그리고 생각을 고쳐먹었다. 나에게 글쓰기는 키가 작지만 귀엽고 예쁜 풀꽃이다. 나팔꽃, 채송화, 코스모스같이 작은 꽃들을 심으면서 내 꽃밭을 다채롭게 가꿔 볼 거다. 그렇게 해도 계절별로 알록달록한 꽃을 얼마든지 마주할 수 있을 거다. 꼭 멀쩡하게 잘 자라고 있는 꽃나무를 뽑아내고 새나무를 심는 것만이 정답은 아니다. 그러니깐 포기하지 말고 글을 성실히 쓰자고 다짐하는 글이다.
어른이 되고 안정적인 직장을 얻었다고 해서 진로 고민은 사라지는 게 아니었다. 대학만 가면 모든 문제가 해결될 줄로만 철석같이 믿고 있는 청소년들에게는 절망적인 소식이겠지만, 진로 고민은 평생 하게 된다. 그나마 희소식이라면 그 막막함의 정도는 시간이 흐르면서 줄어들 가능성이 있다. 인생 경험이 쌓이면서 그래도 굶어 죽지는 않을 거라는 나에 대한 믿음과 대한민국 사회 보장 제도에 대한 믿음 덕분이다.
그러니 10년 뒤에 뭐 하면서 먹고살지 고민하고 있는 2012년의 박소연에게 하는 말. 10년 뒤에 뭐해 먹고살지는 9년 11개월 뒤의 박소연이 고민할 문제니깐 네가 지금 할 일이 아니야. 네가 백날 고민한다고 해서 달라질 건 없어. 그럼 지금 뭐 해야 하냐고? 지금 니가 할 수 있는, 그리고 하고 싶은 일을 성실하게 하면 돼. 재능이 없다고? 재능 별거 아니야. 포기하지 않고 성실하게, 꾸준히 하는 게 그게 재능이야.
그러니까 지금의 박소연아. 노인이 되었을 때 후회니 어쩌니 이런 말만 하지 말고 지금 꾸준히 성실하게 글을 쓰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