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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혜진킴 Aug 01. 2020

7월:갚는 돈도 내돈이다.

대출있다고 못난 사람 아니에요. 나쁜 사람은 더더욱 아니고요. 

단단한 일상을 만들어 나가는 리츄얼 만들기, 그리고 한 숨을 쉴 때마다 귀하게 여기는 법을 연습했다.


재난지원금을 심리상담에 썼다. 

작년 집단 심리상담부터 해서, 꾸준히 심리상담을 받고 있다. 매주 받는지라 재정적으로 부담이 있어 저축을 늘리지 않고, 한국에 있으면 으레 다녔을 피트니스 센터나 요가 프로그램에 갈 돈을 모아서 쓴다고 생각한다. 마음챙김도 돈이 있어야 할 수 있다니. 심리상담비를 낼 수 있는 돈을 벌 수 있어서 진짜 기뻤다. 


심리상담을 하면 패닉 하는 일이 좀 적어진다. 선생님과 매주 화요일 새벽 6시에 온라인으로 상담을 하면서, 삶의 여러 가지 변화에 좀 더 유연해질 수 있었다. 내가 어떤 사람인지, 어떤 힘든 일을 이겨낸 사람인지 되돌아볼 수 있었다. 가장 좋은 건 다른 사람을 보는 내 시각이 좀 더 자비로워졌다는 것. 


이번 달은 혼자서 하는 멍상이나 저녁 요가 스트레칭이 드문드문했다. 대신 친구들과 월요일 수영, 화목 필라테스를 시작했다. 저번 달부터 나에게 친구들이 생겼다. 다른 회사에서 일하는 또래고, 언니 동생이 되었다. 운동도 같이하고 가끔 번개로 맛있는 것도 먹고, 정말 행복하다. 


돌이켜보면 회사를 다녀서 좋았던 건 그때 만났던 친구들 인연이었다. 의미 있고 임팩트 있는 일을 하는 걸 1순위로 여긴다고 생각했는데, '동료'도 참 크다. 임팩트 있는 일은 내가 덤비게, 새로운 일을 시작하게 하고, 동료는 그 일을 하면서 흔들릴 때마다 계속 앞으로 나아가게 해 준다. 


같은 회사 동료들이 아니지만 업계에서 다양한 직군에 일을 하고 있고, 사는 지역도 삶도 각양각색이라 커리어나 인생 이야기를 하면 정말 재밌다. 회사 밖 동료가 최고야! 조직 내에서는 절대 불가능해 보이고, 너무 스트레스받는 일이지만 한 사람만이라도 조직 외부나 동종 업계 타 직군, 타 업계 동종 직군과 이야기를 해보면 의외로 간단하게 풀리기도 한다. 관점의 전환! 


월 이자 16만 원을 이자 7만 원으로 줄였다. 


5년 원금균등상환 대출을 1년 일시상환 대출 상품으로 갈아탔다. 이율은 6.7%에서 5.6%로 큰 차이는 없지만 퇴사 직전에 월세 보증금 확보를 위해 천만 원을 더 빌리기 위해 어쩔 수 없이 선택했다. 기존 대출은 정부지원 새 희망홀씨 상품이었기 때문에 예외적으로 5년이 가능했으니 그만큼 오래 빌릴 수 있는 대출은 어렵다고 예상했지만, 직장인 신용대출도 안될줄 몰랐다. 


3%대로 빌릴 수 있을 거라 예상했는데, 현직장 4대보험 납부기간 1년을 못 채워서 쓸 수가 없어 국민은행의 기본 신용대출 상품을 썼다. 1년 일시상환만 가능했다. 5년 동안 갱신은 가능하지만 매해 재심사를 받아야 한다고 해서, 새로 직장을 구하지 않으면 1년 안에 한꺼번에 모두 갚아야 하는 최악의 상황에 처할 수도 있었다. 무서웠지만 별다른 수가 없었다. 


돈을 메꾸기 위해 부모님 몰래 대출했던 대학생 시절 부터 나는 대출에 대해 잘 몰랐다. 어쨌든 원금을 갚아나가지 않으면 안 된다는 걸 이제 깨닫았다. 제일 처음 대출을 받았을 때 1년 뒤에는 그 정도 돈은 있겠지라고 안일하게 생각했다. 그렇게 갚지 않은 원금은 갈아타고, 갈아타면서 눈덩이처럼 늘어났다. 


계산을 따져보면 한 달에 얼마씩 모아야 만기 때 갚을 수 있는지 눈에 빤히 보이는데 그냥 눈을 감고 이자만 내고 있었던 내가 안타깝다. 지금 경제활동을 하고 있지 않고 대책이 없는데 미래의 나는 괜찮을 것이라고 여긴 것도 참 부끄럽다. 여러 곳에 흩어져있던 대출을 하나로 묶어서 5년 만기 대출을 받으면서 월 16만 원 이자와 원금을 일정 비율로 갚아나갔다. 10개월이 지났는데 개미만큼 줄어든 원금을 보면서, 5년 동안 어떻게 이 짓을 할지 걱정도 많이 됐다. 


해외 파견직으로 일정 기간 계약직으로 일을 하니, 한국에서 벌 때 보다 오히려 더 순자산을 늘리기 좋다. 코로나로 여행을 다닐 수도 없고, 업무 특성상 외모나 꾸밈, 옷에 돈을 써야 하는 환경도 아니라 으레 직장이 바뀔 때마다 사무실 분위기에 맞게 쇼핑을 하던 습관도 버렸다. 점심과 저녁은 회사에서 지원해주고, 딱히 커피를 마시러 나갈 수도 없고, 온라인으로 보는 콘텐츠나 커뮤니티 활동 말고 외부 활동이나 외식도 없다. 온라인 쇼핑을 하지도 않는다. 


변동지출이 크게 줄고, 일정한 루틴이 생기니 충동적으로 구매하는 물건이나 친구들을 만나거나 스트레스를 풀면서 크게 쓰는 시발 비용도 발생하지 않는다. 쓰는 돈은 줄고, 계약직으로 와서 기존 경력을 인정받아 월급을 수령하니 목돈을 상환할 수 있었다. 



대출에 대한 생각이 달라졌다. 


잘못된 생각 1. 중도상환 수수료가 생기니 그냥 갚는 만큼만, 대출 기간 동안 유지한다. 


이자만 내는 일시상환 대출을 했기 때문에 목돈을 갚을수록 이자가 줄어드는 게 눈으로 보이고, '이자만' 통장에서 나가니 생돈이 어떻게 사라지는지 체감할 수 있다. 가만히 있어도 생기는 수익은 하나도 없는데 이자는 물어야 하니 빨리 갚는 게 이득이라는 걸 정말 뼈저리게 느끼고 있다. 


한 달에 50만 원씩 넣는 적금이 4.6%이고 자유 적금은 2.5%인데, 대출 이자 5.7% 비율이 훨씬 크다. 돈을 모으는 것보단 무조건 갚는 게 이득이다. 중도상환 수수료가 몇만 원이 붙어도 미소가 지어진다. 이만큼 더 나에게 이득이 되는 선택을 했고, 지금 2만 원 내는 게 매달 10만 원씩 이자 나가는 것보다 훨씬 낫다는 걸 이제 아니까. 


이번 달에 얼마 정도 목돈을 상환하면 그다음 달 이자가 몇천 원이라도 줄어있는 게 뿌듯하다. 매달 40만 원 이상 써야 0.3프로 이자 우대를 해주는데 따져보면 이자 몇 천 원을 아끼겠다고 안 써도 될 40만 원을 쓰는 건 이치에 맞지 않는다. 


어떤 사람에겐 너무 당연한 결정일 수도 있지만 내가 이렇게 이성적으로 건강한 판단을 스스로 내릴 수 있다는 게 너무 뿌듯하다. 


잘못된 생각 2. 빚이 있으면 인생 망한다. 


대출은 어렵고 부끄럽고 내가 짊어지고 가야 할 짐이라는 죄책감과 수치에서 드디어 벗어날 수 있게 되었다. 어찌 되었든 간에 이 돈도 내 능력으로 잡힌 부채라는 '자산'이고, 당시 수입이 없거나 적을 때 내가 하고 싶은 것들을 하면서 20대 중후반을 즐길 수 있게 하고, 다양한 경험을 쌓아 지금의 나를 만들어준 교육 값이니까. 나에 대한 투자고, 나에 대한 사랑에서 나온 선택의 결과다. 내가 경제에 대해 무지하다고 스스로를 여겼던 2년 전의 생각에서 성장한 것이다. 


돈은 나쁘고, 지금 나와 우리 가족은 (남들처럼) 잘 살지도 못하고 돈이 없다. 게다가 제일 돈을 못 벌고 변변찮은 직업도 없는 미술을 하고 있으니 평생 돈을 벌지 못할 것이라고 굳게 믿고 있었다. 잘못된 신념이었다. '빚'을 지면 무서운 사람들이 쫓아오고, 나를 손가락질할 것이라는 공포도 근거가 없었다. 


나의 생각은 이렇게 바뀌었다. 


돈은 내가 이 세상에서 살아가기 위해 꼭 필요한 좋은 것이다. 돈은 중요하다. 돈은 내가 하고 싶은 일, 좋아하는 일, 내가 원하는 일을 할 수 있도록 도와준다. 내가 힘든 일이 있을 때 도움을 요청할 수 있고, 부모님의 건강이나 노후를 위해 돈을 저축하거나 부담을 느껴야 하지 않는 것만으로도 이미 나는 가족의 지원을 크게 받고 있다. 감사함을 느낀다. 미술일을 하든 무슨 일을 하던 나의 쓰임과 의미를 찾는 것은 스스로 선택할 수 있다. 내가 나의 가치를 믿지 않으면, 정말 그때 가치가 없게 된다. 


대출을 나의 자산으로 부르기 시작하면서 진짜 변화가 시작되었다. 이름표 하나만 바꿨을 뿐인데 많은 것이 바뀐다. 우선 나를 더 사랑하고 지지할 수 있게 되었다. 내가 돈을 쓰는 습관, 돈과 경제, 부에 대한 나의 가치관, 돈과 월급에 대한 나의 관계가 모두 긍정적으로 변화했다. 


현재 나의 여정은 어디에 있나. 


-비상금 100만 원을 3개월 생활비를 모은 비상금으로 바꾸고 있다. 

-고정 지출, 고정 적금을 빼고 변동지출을 많이 줄일 수 있는 상황이라 이 기회에 월급의 60%로 원금을 갚고 있다. 

-신용카드를 아직 없애진 않았는데, 공제나 대출 이자 혜택 등 변변찮은 이유만 생각난다. 다시 절제 없는 소비생활과 광란의 할부 세계로 갈까 봐 스스로 무섭다. 신용카드를 가지고 있어서 더 조심한다고나 할까. 폭탄을 보는 느낌이라 마음 편하게 그냥 해지 해 버려야겠다. 

-예산안을 짤 때 돈을 쓰는 비율이나 항목 간 예산을 지키는 게 조금씩 익숙해지는 느낌이다. 거의 수지가 맞는다! 마음을 챙기면서, 나를 돌보는 데 돈을 쓰는 게 좋다. 





>>> Best 소비 Top 3

헝가리어 수업 5회 37,448원 

헝가리어를 조금만 배워도 행동반경이 넓어지고, 많은 사람들과 이야기할 수 있다. 1달만 배웠는데도 간단한 의사소통은 할 수 있어서 너무 좋다!


이민경 작가 몸 글 온라인 50,000원 

회사 업무시간이랑 겹쳐서 1,2교시는 못 들었지만 주말까지 해서 모든 강의 수강 완료! 여자들은 창작자가 되기보단 1등 수강생이 되려고 하고, Input을 더 넣고 완벽히 공부하는 데 에너지를 쓰느라 정작 자신의 것을 내놓지 않는다는 말에 눈이 번쩍 뜨였다. 남자들이 원작이 될 작품을 어설프더라도 그냥 쓰는데, 여자들은 그 많은 공부를 하면서 '번역'자의 자리를 자처한다고. 


미생물 텀블벅 202,000원 

김수민 작가의 텀블벅 프로젝트를 후원했다! 미생물 주얼리 한정판과 4년 동안 모은 작품집, 그리고 티셔츠와 스티커까지 들어 있는 5명 한정 패키지다. 텀블벅을 함께 하자고 작년부터 이야기했는데 결국 혼자서 뚝딱뚝딱 결정하고, 여러 사람과 협업하면서 프로젝트를 이끌고 있는 수민. 아티스트로서도 동료 여성으로서도 존경할 수밖에 없다. 


Worst 최악의 소비 Top 3

갈렌 레더 375,101원 

3만 7천 원 아니고 진짜 37만 원이다.... 김규림 작가님 팬이긴 한데, 갑자기 가죽 노트와 포트폴리오에 끌려서 후다닥 주문했다. 만년필 써본 적도 없는데 사고 말이야. 샀어도 주문제작이라 이제 배송을 시작했고, 관세 때문에 터키 -> 미국 배대지 -> 한국으로 돌려서 받는다. 유럽에서 바로 가면 관부가세가 너무 많이 나와서.. 배송비와 세금까지 따지면, 그리고 11월 한국 갔을 때나 만져 볼 수 있는 문방구에 이렇게 탕진하다니. 처음엔 두근두근 거리고 너무 잘 산 소비였다고 생각했는데, 실제로 사용하고 있는 물건도 아니고 또 '너무 예뻐서' 못쓸 걸 생각하니 스트레스가 가득하다. 


텀블벅 공간 413 펀딩 28,000원 

해당 행사에 못 갔던 아쉬움에 도록에 펀딩 했다. 막상 결제되던 날 화들짝 놀랐다. 단순히 그 내용이 궁금했을 뿐인데 2만 8천원을 쓰다니... 그 행사는 무료였는데 말이다. 그리고 대부분의 미술 도록은 가지고 있어도 쓸 데가 없다. 요즘 미술계 사람들이 무슨 생각하고 사는지 진짜 내가 궁금한지, 그게 무슨 의미가 있을지 회의적이다. 이미 결제되서 취소도 할 수 없고, 동료들을 응원한다고 해도 나를 동료로는 생각할까? 라는 의문이 든다.


독일 아마존 폼롤러 17,000원

트위터 보고 아마존에서 폼롤러, 치석제거기, 속눈썹(???)과 속눈썹 풀(????)을 샀더니 12만원이 나왔다. 하루종일 찜찜해서 결국 자려고 누웠다가 일어나서 취소했다. 이미 출발한 '폼롤러'만 12유로 주고 구입. 내가 미국에서 직구해서 가지고 있는, 한국의 집에 있는 폼롤러의 반에도 못미치는 퀄리티였다. 필라테스 선생님 결혼식 가는건 좋은데 또 꾸밈비용이나 과도한 메이크업 용품에 돈을 쓰려고 하는 나를 발견하면서 울적해졌다. 근데 또 필사적으로 안꾸며야하나? 이런 생각도 들고 마음이 복잡하다. 꾸밈 비용 기준을 '쓸모'라는 기능, 그리고 '기쁨'이라는 나의 정체성과 진짜 이유, 욕망에 비춰보고 다시 고민해봐야 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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