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디어 대출 상환을 마쳤다.
이제 나를 미워하지 않게 되었다.
2020년 10월 30일 새벽 3시 국민은행에서 받은 신용대출을 전액 완제했다. 이자만 16만원에서, 10만원대로, 9만원으로, 7만원으로, 마지막엔 월 이자 18000원까지 목돈을 갚아 나갔다. 이제 나는 내가 밉지않다. 원망하지도 않는다. 내가 소비하고, 생활하고, 방황하고, 좌충우돌 했던 20대 중후반의 한 챕터를 잘 마무리 한 느낌이다.
신용카드도 모두 없앴고, 가계부를 쓰고 저축목표를 정하고 예산에 맞게 사는 방법을 연습중이다. 나를 잘 알 수록, 내가 어떤 걸 좋아하고 지금 무얼 하고 싶은지 자주 챙겨줄 수록 점점 더 쉬워진다. 대출 자유 축하로 뭔가 기념품을 사고 싶어서 동네 문방구도 들려보고 이리저리 고민해봤는데, 그냥 월 1만원 짜리 적금을 들었다. 뭔가 물건으로 바꾸는 것보다 '이름표'를 붙인 돈 그 자체가 더 가치있다.
한국에 들어가면 자축의 의미로 내 입맛에 딱 좋은 상큼하고 매콤한 똠양꿍 한 그릇을 먹고 싶다. 그리고 2021년 저축계획을 위한 적금가입하러 강남일대를 돌아다니고, 저녁에는 오랜만에 친구들과 만나 이야기를 할 것이다. 택시 안타고 막차타고 집에 잘 도착해서 씻고 스트레칭하고 명상하고 일기쓴 다음에 푹 잘 것이다.
+) 자가격리때 물건정리를 2주 동안 하려고 한다.
온라인 벼룩시장 & 지인 나눔 파티를 송년회 겸하여 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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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번째 목표를 이루었고, 이제 다시 시작
11월에는 다시 한번 푸른살림 재무상담의 '주제 코칭'을 신청했다. 1년동안 지출예산계획을 돌아보고, 재무목표 중에 1단계 였던 비상금 만들기와 대출상환하기를 성공했으니 그 다음을 계획하기 위해서다.
10월 말 부터 나의 꿈과 목표금액에 대해서 계속 고민했다. 5년 뒤, 10년 뒤,20년 뒤를 더 선명하게 상상해보려고 한다. 나는 정말 반우스개소리로 하는 것 처럼 무병장수하고 6개국어 하면서 지중해남부에 집사놓고 매일 책읽는 할머니가 꿈인가? 잘 모르겠다. 그 상상 속에는 가족이나 동료도 없었고, 언제 어디서 무슨 일을 하고 어떤 것을 이룰지에 대한 알맹이가 빠져 있었으니까. 분명한 건 가계부를 쓰면서 나의 성향을 좀 더 잘 알게되고, 커뮤니티 활동을 하면서 다양한 또래 일하는 여성들의 레퍼런스를 접하면서 새로운 가능성들이 많이 열렸다는 것.
그만큼 내 삶을 좌지우지 했던 우선순위도 많이 바꼈다. 왈이네 마음단련장에서 10월에 했었던 우선순위 파악 워크샵에서 더 이상 관계나 커리어가 내 삶의 중심에 있지도 않고, 그닥 에너지를 쓰고 싶지 않다는 것을 발견했다. 그만큼 학원이나 꾸밈비, 관계유지를 위한 여행(해외 롱디를 했으니)같은 항목들이 내 가계부에서 종적을 감췄다. 최근 6개월간 가장 돈을 많이 쓴 건
나의 건강을 위한 1)명상 2)헬스 3)건강한 식재료
내가 있는 공간의 여유를 위한 1) 이불 2) 조명
다른 사람과 연결되고 배우기 위한 1) 커뮤니티 2)코칭 3)세미나
순서대로 였다. 간헐적인 충동소비나 변동소비도 잘 연구해서 다음해 예산계획에 반영하고 싶다. 지금으로선 개인적 성장을 위한 경제적 여유/휴식/체력이 잘 어우러지는 삶의 방식을 짜는 것이 다음해 목표다.
시스템의 중요성
한달에 이자 16만원 내는 것도 힘들어하던 내가 목돈을 갚을 수 있게 된건 시스템이 있었기 때문이다. 수입과 지출 기록, 매월 말 결산으로 자산부채변동표를 매번 업데이트 하면서 내가 벌어들이는 돈이 어디에 가서 쓰이는지 '흐름'에 눈을 뜰 수 있었다. 그래서 생활 환경과 임금 조건이 바꼈을 때 곧바로 지출의 증가나 낭비로 이어지지 않고, 목돈을 그대로 묶어서 제 1순위인 3개월 생활비 비상금 만들기 -> 대출 상환에 계획적으로 배치할 수 있었다.
매번 자산부채가 플러스로 올라오는 흐름을 보면서, 그리고 손으로 그린 내 목표 구슬을 하나하나 꿰면서 힘을 냈다. 적극적으로 나에게 힘내라고 메시지를 쓰고, 일기에도 언급하면서 칭찬을 해주었다. 대출을 갚는건 그 대출을 만들었던 생활 습관이나 사고방식을 '멈춰'야 시작할 수 있다.
아니, 그보다 갚겠다는 생각을 하기가 어렵다. 그러려면 인정 부터 해야한다. 인정하는 것 자체가 제일 힘들다. 비난하지 않고, '그래, 그렇구나' 있는 그대로 바라보는 시선이 필요하다. 인정해야지, 책임질 수 있다. 인정해야지, '난 안될 사람이야'라는 끊임없는 자기비하와 눈을 감고 쓰는 자기학대적 소비행동에서 벗어날 수 있다. 나의 경우엔 애써 외면하려고 했던 여러 문제의 복합체가 소비 부채였고, 대출을 다 갚고나서야 돈문제가 다가 아니었다는 걸 명확하게 느낄 수 있다.
한국에 가면 자가격리기간 동안 옷장과 집안 물건 정리를 제일 먼저 할 예정이다. 내가 원했던 나와 진짜 나 사이의 관계가 더 솔직해질 수 있도록, 아닌 것들은 놓아주어야 겠다. 대출은 마이너스라는 인식이 강해서 그런지 얼마를 쏟아부어도 허탈하다. 물건을 살 때 처럼 손에 잡히거나, 택배 박스로 도착하지 않는다.
그래서 매번 돈을 갚을 때 마다 과거의 나에게 괜찮다고 말해주었다. 괜찮아, 내가 책임질게. 지금의 너가 있기 때문에, 지금의 내가 이렇게 나를 도와줄 수 있는거니까. 계속해서 사랑한다고 이야기해주고 싶었다. 나를 사랑하기 때문에, 그러나 돈을 나를 위해 쓰는 법을 몰랐기 때문에 얻은 경험자산이니까. 나를 위해서 다 쓴 돈이니까. 어떤 나였던 괜찮다고 말해주고 싶다. 이제 정말 나를 미워하지 않아도 된다는 사실에 마음이 놓인다. 나를 더 열심히 응원하면서 살아야 겠다.
나는 나를 무조건 지지해. 혜진아 고마워.
Best 소비 Top 3
1.푸른살림 재무상담 주제코칭 165000원
작년 10월에 들었던 재무상담으로 정말 많은 것이 바뀌었다. 1년 동안 변화를 다시 한번 짚어보고, 다음을 계획하기 위해서 따로 부탁을 드렸다. 정말 뿌듯하다.
2.원모어백 최진영작가 일력 18000원
매일 아침 회사에서 일력 뜯는 재미로 아침을 시작했다. 나에겐 리추얼. 2021년 프리오더 성공해서 행복!
3.일상직물 차렵이불 192000원
단골공장에서 작년에 사고 1년 동안 정말 행복했던 이불. 이 이불 하나만 있으면 잠도 솔솔오고, 햇살에 포근히 안겨서 쉬는 느낌이다. 이사하면서 버렸기 때문에 꼭 필요했었는데 마침 구입해서 좋았다.
Worst 소비 3
1.나이키 세일상품에 세일20% 충동구매 300000원
물건은 나쁘지 않은데 괜히 세일 구경하다가, 할인코드 쓰려고 소비한 나 자신 반성해
2.추워서 패닉 바잉한 (땀나는) 울트라 히트텍 & 방수바지 137000원
정말 사무실은 안추운데 북극 가는 차림으로 구입했다... 이럴 필요까지는 없는데.
3.텐바이텐 19주년 기념 문구류 여러가지 190000원
20%세일을 보면 눈이 돌아가나보다. 예전 부터 사고 싶었던 제품들이긴 하지만, 가뜩이나 문구상품 많은데.. 살면서 다 쓰려면 몇년동안 문구를 안사야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