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등산학교를 졸업하다
코로나 때 우연히 일을 쉬고 있던 나는 해외 법인 관리와 ‘통역’이라는 명목으로 헝가리로 출국 했다. 그리고 5년이 흘렀다. 헝가리에서 연말까지, 그리고 돌아온 서울에서 2년간 회사를 다니면서 편입한 건축공학과를 졸업하고, 부산에서 회사를 다니면서 서울의 대학원 생활을 2년간 지속했다. 부산으로 끌려내려가는 것이 무서워서 당장 그만두고 싶은 마음과, 동생도 그만둔 회사에 나까지 그만두면 어떻게 해야하는지 걱정, 현실적으로 경제생활을 계속해야 하는 사정, 언제든지 원하면 다시 나의 삶으로 돌아올 수 있다는 희미한 자신감으로 부산으로 내려갔다. 회사 본사가 부산에 있기도 하고, 그 회사가 아버지가 대표로 있기 때문에 사실상 아버지의 명령이기도 했었던 나의 부산행. 대학원은 서울에 걸쳐두고, 모든 클라이언트와 회의는 서울에 있는데, 일주일에 두 세번씩 서울과 부산을 오가던 지난 2년은 괴로웠다.
부산에서 나는 운동을 다시 시작했다. 운전을 배웠다. 달리기를 시작했다. 새로운 친구들을 사귀기 위해 애썼다. 상담을 다시 시작했다. 모험하는 여자들, 산과 책을 좋아하는 친구들을 적극적으로 찾아다니고 생태계를 가꿨다. 분명 고향이고, 가족도 있고, 동창들도 살고 있고, 사투리도 익숙하지만 나에게 고향은 부산이 아니었다. 달리다가 문득 보이는 바다가 좋고, 내가 좋아하는 카페가 있더라도…
더 이상 안될 것 같다.
근데 떨어지는 건 무서워.
손에 힘이 점점 없어진다.
무섭다. 힘들다.
나는 어쩌다 여기로 왔을까.
왜 한다고 했을까.
부산이 문제가 아니라 어디에도 중심을 두지 못하고 우왕좌왕 하며 힘을 빼고 있는게 핵심이라는 걸 깨달은 것도, 인수봉을 올라가다가 크랙에 매달려서 울면서 깨달았다. 올라가던지, 내려가던지. 하지만 내려가는 길은 없다. 한번 산에 올라서면 중간 탈출은 복잡하다. 정상에 올라서야지 결정할 수 있다. 어느 방향으로 내려갈 건지. 안전이 확보되지 않은 곳에서는 추락뿐이다. 나는 떨어질까봐 무섭고, 고지가 바로 눈 앞인데 손에서 힘은 점점 빠져나가고 발이 아파서 더 이상 한발자국도 옮길 수 없을 것 같아서 안간힘을 쓰면서 매달려있었다. 올라가야하는데 힘이 없어서, 떨어지기 무서워서 울면서. 주변 사람들도 영문을 몰랐다. 잘 가다가 왜 혼자서 울지? 다 왔는데.
나의 모든 결정과 움직임이 두려움에 기반한 반응이었다는 걸 깨닫고 나니, 왜 나는 세상을 믿지 않을까... 믿음과 사랑에 대해 생각하게 되었다. 클라이밍을 할 때 손을 놓아도 괜찮다. 홀드가 괜찮거나, 자리가 좋은 곳에서 쉴 수도 있고. 무엇보다 안전 시스템이 있으니 자일과 파트너를 믿고 매달려 있어도 괜찮다. 떨어지지 않는다. 위험한 곳도 아니었다. 할 수 있는 레벨의 할 수 있는 루트로 선생님들이 인도한 교육장이었으니까. 쉴 수 있는 곳에서는 쉬고, 숨을 고르고, 에너지를 아끼면서 끝까지 올라가기 위해서 내 속도와 컨디션을 고려해야 한다. 해야하니까 덤벼들고, 못할거라 생각했는데 생각보다 잘 해내서 거의 끝까지 가지만, 더 이상 갈 수 없어서 몸이 얼어버렸던 건 뭘까. 쉬지 않고 올라가야한다는 생각에 감전당한 사람 마냥 발작적으로, 강박적으로, 초 집중하여 올라가지만 에너지의 선순환은 일어나지 않는 상태. 매 순간 공포-투쟁 상태로 돌입하는 내가 나도 당황스러웠다.
처음에는 내가 부산 때문에 힘든지 알았다. 배타적이고 보수적인 분위기, 생각하고 사는 모습이 다른 또래 집단에서 겉도는 느낌, 부모가 안배해 준 '먹고사는 방법' 말고는 별다른 옵션이 보이지 않는 것 같은 답답함, 체념, 억울함... 반면에 서울에서 만나는 업계 선배나 동료들과, 다른 업종에서 계속 커리어를 이어가는 친구들, 독서과 운동으로 알게된 친구들의 삶은 앞으로만 뻗어나가는 것 같은데서 느끼는 미묘한 박탈감. 어디에도 속하지 못하고, 어디에도 인정받지 못하고, 어중간한 채로 시간만 낭비하는 것 같아 초조함까지 느껴졌다.
남의 탓, 지역 탓, 업계 탓.. 무엇이든 외부에서 문제를 찾고, 해결하려고 애쓰면 가짜로 병을 치유하는 격이다. 문제를 해결하려고 용쓰면서 몸부림쳤던 흔적과 상처는 그대로 남고, 또 다른 문제를 만나게 된다. 불안정하고, 불만족스러운 느낌은 사람을 서서히 갉아먹고 일상의 모든 영역에 침투해버린다. 전보다 더 무서운 힘으로 병이 나를 덥치고, 이제는 외부가 아니라 내부에 축적되어 그냥 삶이 변해버린다. 나병환자나 다름없다. 상처가 곪고 곪은 상처들이 흘러내려 온 몸을 잠식하고, 더 이상 밝은 곳으로 나갈 수 없는 것 처럼 느껴진다. 내가 나로 살아있을 수 없는, 내가 나를 못알아보는, 터무니없고 허무하고 맥빠지는 타락한 삶의 나락이 이어진다.
살아보겠다고 산에 다녔고, 나를 오해하지 않는 좋은 친구들을 만나고 공부를 이어나가기 위해 일부러 시간을 냈다. 그리고 등산학교에 갔다. 5주 동안 매 주말마다 1박 2일 산에서 교육을 받으면서 벽을 참 많이도 만났다. 평일에 부산의 회사에서, 서울의 업무 미팅에서, 각종 업계 행사에서, 뇌를 태워버리는 대학원 세미나 수업에서 닳고 닳아서 영혼까지 희미해진 상태에서 고강도 훈련은 힘들었다. 어찌된건지 체력은 주를 거듭날 수록 떨어지는 것 같고, 수업이 끝나고 자정에 심야버스를 타고 부산으로 내려가서 아침에 다시 출근을 하고, 다시 오후에 서울로 출장을 오고... 어떻게 지나갔는지도 모를만큼. 길에서 골아떨어져서 실려다닌 샘이다.
등산학교 수업은 매 주 고비를 맞닥뜨리게 하니, 그 다음주가 오면 더 무서웠다. 저번주는 어찌어찌 요행으로 지나왔지만 내가 이번 주는 할 수 있을까. 왜 한다고 했을까. 나를 원망하고, 무거운 가방을 다시 싸서 수업을 들으러 갔다. 암벽 수업은 버거웠지만 끝까지 해냈다. 바위 중턱에서 꺼이꺼이 울고, 속으로 울음을 삼키고, 나는 할 수 있어를 스스로에게 외치면서, 어르고 달래고 멱살을 잡고 머리끄댕이를 당겨서 끝까지 올라갔다.
인수봉 정상에 올라가면 새가 활공하는 모습이 보인다. 윤이 나고 아름다운 감청색 깃털을 아래로 내려다 보는 데 아름다웠다. 같은 산에 자주 오니 보이는 계절의 변화도 눈물겨웠다. 시간이 지나간다는 것이 감사하게 느껴졌다. 현기증이 났다. 지옥같던 부산에서 모든 것을 강탈당하고 날개가 꺾여서 기어다니던 내가, 이제 내 주변에 아무런 벽이 없는 정상에 올라와서 끝없이 멀리 내려다 볼 수 있다는 사실이. 몇 년간 비할 데 없는 불안정감, 해야하는 일의 감옥에 몸을 갈아넣으며 완전히 파괴되었다고 생각했는데. 추락하는 듯한 착각을 느끼고, 부산에 내던져져 내 몸이 산산조각으로 흩어져서 다시는 찾을 수 없다고 생각했는데. 병에 걸려서 다시는 회복할 힘이 없다고 생각했는데. 내 안에서 어떤 용기가 흘러나와서 인생이 레몬을 으깨면 레모네이드를 만들면 된다는 마법을 발견했을까.
당신은 이미 지나간 일이지만 커다란 슬픔을 많이 겪었습니다. 그리고 당신은 이 지나감마저도 괴롭고 역겨웠다고 하십니다. 그러나 잘 생각해보십시오. 이 커다란 슬픔은 오히려 당신의 한가운데를 뚫고 간 것이 아닌가를. 당신의 내부에서 많은 것이 변화하지 않았는가를. 서러워하는 동안에 당신 자신이 어딘가에서, 당신의 본질 어딘가에서 변화하지 않았는가를. <젊은 시인에게 쓰는 편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