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동생과의 튀르키예 여행
'가족'과 '해외여행' 따로따로 보면 참 좋은 단어인데 왜 이 두 단어를 합친 '가족 해외여행'은 께름칙할까? 그래도 나만 이 합성어를 싫어하는 건 아닌 것 같아 조금은 위안이 된다. 인터넷에 '부모님 해외여행 15 계명'이라는 이름으로 돌아다니는 금지 문장만 봐도 정말 많은 이들이 '가족 해외여행'에 스트레스를 받고 있단 걸 알 수 있다. 하지만 난 '부모님 해외여행 15 계명'을 보고도 남동생이라 튀르키예 여행 가는 거니까 괜찮겠지라고 생각했다.
무슨 자신감으로 남동생과 4주간 튀르키예 여행을 떠났을까? 남동생도 결국 가족인 것을 왜 그때의 나는 그렇게 순진했을까? 친구랑 여행을 가거나 차라리 직장 동료와 출장을 갈걸. 그들은 내가 계획한 일정에 대해 쉽게 자기 기분이 상했음을 드러내지 않는다. (물론 수직 관계가 있다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사회적 약속이기도 하고 여행을 기획한 이를 위한 배려이기도 하다. 하지만 가족이란 무릇 '여행 중 발생한 불편으로 기분이 상했음'을 티 낼 수 있는 권리를 지닌 사람 아니겠는가. 평소에 데면데면하다 보니 남동생을 가족으로 잘 인식 못하고 있었는데, 이번 여행을 통해 내가 이 새끼와 완벽히 가족 관계임을 뼈저리게 느낄 수 있었다.
가족 욕 해 봐야 내 얼굴에 침 뱉기다. 나도 안다. 그렇지만 목에 가래가 껴서 답답해 죽겠고 뱉을 데가 내 얼굴 밖에 없는 걸 어쩌겠는가. 내 얼굴에라도 침 뱉어야지.
동양과 서양의 교차로 현 이스탄불, 구 콘스탄티노플에 도착했을 때 심장이 두근거렸었다. 내가 밟고 있는 이 땅 위에서 파란만장한 역사가 펼쳐졌고, 내 눈앞에 그 유물들 중 일부가 남아 있다는 게 너무 벅찼다. 아야 소피아, 블루 모스코, 돌마바흐체 궁전 등 위대한 건축물들과 오스만 제국의 번영을 보여주는 화려한 보석들에 문자 그대로 눈이 돌아갔었다. 누구도 비껴갈 수 없는 시간이란 흐름 속에서 살아남은 유적들이 얼마나 눈이 부시던지 보는 내내 황홀했다.
하지만 같은 배에서 태어난 필자의 남동생은 영혼을 한국에 두고 온 것 같았다. 필자는 코다리 조림을 참 좋아하는데, 정말 코다리의 눈이 그 새끼의 눈보다 초롱초롱했던 것 같다. 코다리보다 못한 눈깔로 언제 숙소에 돌아갈지만 재고 있는 동생을 보고 있자니 내 흥도 같이 식어버렸다. 분명히 가슴속에서 차올랐던 튀르키예 유적과 예술에 대한 존경은 말끔히 사라지고, 코다리가 얼었다 녹았다를 반복하고 있는 덕장만 떠올랐다.
튀르키예 음식은 또 어찌나 싫어하는지. 맛없다며 똥 씹는 표정을 지으면서 또 먹기는 다 먹는다. 입에 안 맞는다고 투덜거리면서 자기가 음식점을 알아보는 건 또 아니다. 한국에서 다운 받아온 웹소설과 웹툰, 유튜브 보기만 바쁠 뿐이다. 그렇다고 카톡 답장을 잘하냐? 것도 아니다. 폰은 붙잡고 있는데 답장을 안 하길래 확인해 보니 나와의 개인 톡방 알람을 아예 꺼놨다. 한국이면 그럴 수 있다. 나도 한국에서는 그러니까. 하지만은 지금은 외국에서 4주간 장기여행을 하고 있는 중인데, 내가 무슨 일이 생겨서 급하게 연락한 거면 어떻게 하려고 알람을 꺼둔 걸까. 자기도 잘못했다 생각하는지 내 눈치를 슬 보는데 '아, 그냥 좀 한국으로 꺼져 주면 좋겠다'.
걔 숙박비도 내가 내고, 비행기 표도 결국에는 내가 냈다. (엄마가 냈다고 하기에는 매달 부모님께 드리는 용돈 30만원 4개월 동안 안 드리기로 하면서 내 신용카드로 긁었으니까) 근데 저딴 얼굴을 보고 있어야 한다니. 무슨 저주 같다. 진짜 혼자 여행 다니는 게 훨씬 훨씬 훨씬 좋았을 것 같다. 속에 천불이 나고 뒤집어질 것 같지만 '난 어른이니까' 참을 수 있을 것이다. 아마도.
물론 못 참겠어서 이딴 글을 쓰고 브런치 독자님들께 보여드리고 있는 중이지만 말이다. 이딴 글을 읽게 해 드려 독자님들께 죄송할 뿐이다. 그렇지만 사람 하나 구한다 생각하고 제 얼굴에 침 뱉는 필자의 원맨쇼를 안쓰럽게 봐주시길 바란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뭐가 됐든 저 시키는 내 동생이고, 마음에 안 들어도 누나가 짠 일정 같이 소화하는 착한 놈이긴 하다. 집에 콕 박혀서 좋아하는 유튜브 영상이랑 OTT 시청하는 게 취미인 애다 보니 하루에 아마 7000보 보다 적게 걸을 것이다. 그러던 애가 15000보 이상 씩 걸으려다 보니 얼마나 힘들었겠는가? 거기다 음식도 입맛에 안 맞으니 보통 고생이 아닐 것 같긴 하다. 그래도 이왕 튀르키예까지 온 김에 같이 좋은 거 많이 보고 맛있는 거 많이 먹고 돌아갈 수 있으면 좋겠다. 그리고 밤에는 아무래도 여자 혼자 돌아다니기 위험한데 같이 다녀줘서 정말 고맙다. 오늘 이런 똥글을 쓴 것도 결국 다 추억이 되겠지.
어떠려나 이 정도면 얼굴에 뱉은 침이 좀 닦였으려나?
남동생과의 4주간 튀르키예 여행이 무사히 끝날 수 있길 저 빛나는 보스포루스 해협 빌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