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리콘밸리 스타트업의 강렬했던 첫 경험을 뒤로하고 그다음 행선지는 시애틀에 위치한 대기업인 아마존이었다.
아마존은 요즘 소위 가장 잘 나가는 미국 테크 회사 중의 하나이다.
온라인 커머스 사업을 필두로 전자책, 클라우드 컴퓨팅 서비스, 인터넷 방송 중계 서비스, 식료품 배달 서비스, 유기농 식품 전문 슈퍼마켓 체인점 등 광범위하게 덩치가 큰 사업들을 여러 개 보유하고 있는 글로벌 회사인데 특히나 요즘 행보를 보면 진짜 아마존의 왕국이라도 세울 기세로 사업 범위도 점점 늘어나고 있고 매해 무섭게 성장하고 있다.
고객 우선주의를 내세운 엄청난 비즈니스를 모델을 성공적으로 성장시켜나가면서 비즈니스적으론 엄청난 회사이지만 사실 막상 그 안으로 들어가 고객이 아닌 직원의 입장에서 회사를 보게 되면 밖에서 보이는 면과는 사뭇 다른 모습들을 볼 수가 있다.
우선 기업문화.
사실 아마존의 기업 문화는 예전부터 악명이 높았다.
엄청난 성장 뒤에는 그를 만들어 내는 직원들의 강도 높은 업무 환경이 있었다.
기본적으로 다른 회사들의 비해 업무 강도가 높고 그에 비해 직원 보상도 상대적으로 적다 보니 그에 따른 직원의 이동/이직이 잦은 편이었다.
2015년엔 뉴욕 타임스에서 악명 높은 아마존의 기업 문화를 비판하는 기사가 세상에 나오면서 인터넷을 떠들썩하게 했었다.
기사 내용이 조금은 과장된 면이 없지 않아 있었지만 대부분 회사에 몸을 담았던 직원들의 인터뷰를 통해서 사실을 기반으로 이 회사 문화의 현실적인 모습을 적나라하게 반영하고 있었다.
기사에 나온 전 직원들의 인터뷰를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Nearly every person I worked with, I saw cry at their desk.” - 내가 같이 일 했던 대부분의 직원들이 책상에서 울고 있는 걸 본 적이 있다.
“A lot of people who work there feel this tension: It’s the greatest place I hate to work,” - 많은 직원들이 이 회사를 가장 일하기 싫은 곳으로 생각을 한다.
“If you’re a good, you become a bot”, - 네가 일을 잘하면, 너는 로봇처럼 될 거야.
“I would see people practically combust.” - 실제로 하얗게 불태우며 재가되도록 일하는 사람들을 볼 거야
“The joke in the office was that when it came to work/life balance, work came first, life came second, and trying to find the balance came last.” - 사무실의 우스갯소리로 하는 말이 워라밸을 생각하면 일이 첫 번째, 삶은 두 번째, 그 발란스를 찾는 건 마지막이야 (발란스가 없다는 말)
공통적으로 회사의 혹독한 업무 환경과 잘못된 회사 문화를 비판하고 있다.
이 기사와 맞물려 어느 날 아마존 한 직원이 업무 스트레스로 본사 건물에서 뛰어내려 자살 시도를 한 사건도 있었다.
소위 잘 나가는 미국 테크 회사의 이면을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기사와 사건이었다.
아마존은 기업 시스템과 그 문화 속에 강도 높은 업무를 자연스레 녹여 이끌었고 비즈니스 적으로는 엄청난 실적을 내는 회사를 만들었지만 그에 따른 업무 스트레스는 직원들에게 고스란히 넘겨졌다.
겉에서 보기엔 고객 만족도 높은 양질의 서비스를 제공하고 회사는 나날이 성장하고 있었지만 속에서는 이를 지탱하기 위해서 직원들이 혹독한 업무 환경에서 희생당하고 있었다.
내가 아마존 본사에서 근무하면서 가장 많이 들었던 생각은 내가 큰 기계의 하나의 작디작은 톱니바퀴가 된 듯한 느낌이었다.
물론 대기업에서 일하다 보면 큰 시스템의 작은 한 부분이 된 것 같은 느낌은 어쩔 수 없지만 내가 아마존에서 받았던 느낌은 소위 말해서 직원들을 갈아 넣어서 고객들을 위해 서비스를 만들고 제공하면서 거대한 공룡 회사를 운영해가는 듯하였다.
솔직히 회사 입장에서만 보면 시스템이 이보다 효율적일 수가 없었다.
특히나 미국 테크 업계처럼 직원들의 이직이 잦은 환경에선 어떻게 보면 직원 한 명 한 명을 언제든지 대체 가능한 자원으로 시스템을 구축을 해서 직원들의 자유로운 이동이 이루어지고 그리고 팀 내의 직원이 내일 당장 그만둔다고 해도 프로젝트 진행에는 크게 영향이 없을 그런 완벽(?)에 가까운 운영 시스템을 갖춰 놓은 것이다.
기계에서 톱니바퀴가 하나 빠져도 언제든지 비슷한 다른 톱니바퀴로 갈아 끼워서 기계가 문제없이 돌아갈 수 있을 정도의 수준이었다.
이는 위에서 인용한 기사에 나온 한 인터뷰와도 일치된다.
“If you’re a good, you become a bot”
직원 한 명 한 명이 로봇 혹은 그의 부품처럼 일하게 만들고 회사는 로봇들을 관리할 수 있는 효율적인 시스템을 만들어서 회사가 돌아가고 있었다.
이는 비단 물류창고에서 일을 하는 직원들 뿐만 아니라 이는 모든 직책의 전 직원들에 해당이 된다.
효율성만 보자면 이보다 좋을 수 없겠지만 문제는 직원들은 직장에서 일을 하는 사람이지 공장에서 일만 하는 로봇이 아니었다.
사람을 로봇처럼 관리하고 조종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회사의 시스템이 이러다 보니 직원들의 애사심이 다른 회사들에 비해 눈에 띄게 적었다.
직원을 로봇처럼 만들려는 시스템 때문인지는 몰라도 직원들도 로봇처럼 애사심을 가지고 회사를 다니기는 힘들어 보였다.
하지만 회사 문화가 아무리 악명이 높아도 혹은 아무리 직원들이 애사심이 없어도 회사 비즈니스가 잘 나가면 회사는 결코 쉽게 무너지지 않는다.
직원들이 아무리 힘들어하고 애사심 없어도 회사 이익에 가장 효율적인 방법으로 직원을 관리하고 있기 때문에 무너지기는커녕 오히려 더 승승장구하고 있었다.
현실은 회사를 떠나는 직원들 수보다 새로 입사하는 직원 수가 훨씬 많고 회사에서 보상만 잘해주면 힘들어도 참고 견디는 직원들이 더 많아서 직원들이 힘든 건 사실 회사 입장에선 크게 문제가 되지 않았다.
내일 당장 어느 팀 하나가 없어진다고 해도 문제없이 돌아갈 수 있을 정도로 지난 25년 동안 산전수전 다 겪은 아마존이라 회사의 문화 자체가 굉장히 튼튼하게 자리 잡고 있었다.
그리고 이러한 점들이 아마존의 장점이자 가장 무서운 점이었다.
A 사의 근간이 되는 14개의 지휘 원칙 (Leadership Principles) 중 하나인 절약정신(Frugality)이 있었다.
*Frugality: We try not to spend money on things that don’t matter to customers. Frugality breeds resourcefulness, self-sufficiency, and invention. There are no extra points for headcount, budget size, or fixed expenses.
철저하게 고객만을 위하는 고객을 위한 게 아니면 돈을 안 쓰겠다는 원칙을 세워놨다.
회사 입장에선 아주 훌륭한 리더십 원칙이다.
하지만 회사에서 일을 하는 직원에 입장에서 보면 고약하기 짝이 없다.
항상 고객을 우선으로 하는 정신은 알겠는데 그에 비해 직원들은 너무 뒷전이다.
굉장히 단적인 예로 회사 구내식당을 구비 해 놓고 주변 식당과 비슷한 가격으로 직원들을 상대로 식당 비즈니스를 돌리고 있는 느낌까지 받았다.
대다수의 실리콘밸리 테크 회사가 직원들에게 무료 점심을 제공해주는 것과는 상당히 대조적이다.
회사에서 주는 직원 혜택이라곤 시내 교통 버스 카드 하나와 회사 온라인 웹사이트에서 1년 동안 11만 원가량 ($100) 할인을 받을 수 있는 게 직원 혜택의 전부였다.
그마저 $100 혜택을 받으려면 $1000을 회사 웹사이트에서 써야 받을 수 있는 10% 할인 조건부 혜택이라 직원 혜택을 통해서도 직원들로 하여금 회사 서비스에 돈을 쓰게 만들었다.
정말이지 지독한 절약 정신이다.
이런 절약 정신의 연장 선상에서 미국의 많은 테크 회사에서 주어지는 주식 혜택인 4년 치 RSU (Restricted Stock Unit)도 보통 매년 25%씩 나눠주는 거와는 다르게 첫해: 5%, 둘째 해: 15%, 셋째 해 & 넷째 해: 6개월마다 20% 이런 식으로 차등 지급을 해서 이를 이용해 직원들을 최대한 오래 붙잡아 두려는 꼼수 아닌 꼼수를 부리고 있었다.
* RSU (Restricted Stock Unit): 회사에서 미래의 일정한 기간 (vestiing period)에 정해진 주식 수량을 증여해주는 것으로 쉽게 말하면 회사에서 주식으로 받는 보상이다.
직원 입장에선 3-4년 차에 한꺼번에 들어오는 RSU를 받기 위해서라도 싫어도 억지로라도 2년 이상 남게 돼서 회사가 RSU로 심어둔 장치가 확실히 먹히고 있었다.
그 외에도 아마존 절약 정신의 상징적인 도어 데스크 (Door Desk) 스토리는 지금 생각해도 어이가 없다.
아마존 창업 시기에 비용 절감을 위해서 집의 문짝으로 책상을 만들어서 쓰던 창업자의 정신을 이어받아서 대기업이 된 지금도 전 직원들이 도어 데스크를 쓰면서 그때의 절약정신을 아직도 유지한다는 것 강조하고 있다.
여기서 웃긴 점은 사실 원목 도어의 가격이 워낙 비싸서 도어 데스크는 사실상 웬만한 책상을 사는 것보다 훨씬 비용이 더 든다는 것이다.
최근 엄청나게 오른 주식으로 다행히 직원들에게 충분히 보상이 가게 돼서 불만이 줄어들었지만 항상 고객 우선 주의만 강조하고 사실상 한 명 한 명 회사에 엄청난 돈을 벌어다 주는 직원들에게 절약정신을 발휘해서 이런 대우 해 준다는 게 아이러니하게 느껴졌다.
엔지니어들을 가장 힘들게 했던 것은 다른 것보다 온콜 듀티(On-call Duty)였다.
온콜 듀티는 24시간 긴급 대기조와 비슷하게 운영이 되는데 내가 일할 당시엔 병원의 의사들처럼 엔지니어들에게 Pager(호출기)를 지급하고 담당 서비스의 문제가 생기면 시스템이 밤낮 주말 안 가리고 호출이 간다.
만약 온콜인 사람이 일정 시간 내로 응답이 없으면 직속 상사에게로 재호출이 간다.
마찬가지로 또 그 상사가 응답이 일정 시간 내로 없으면 그 위로 한 단계씩 올라간다.
새벽에 온콜 호출에 응답을 안 하면 내 바로 위 상사부터 한참 위 간부들까지 다 호출이 갈 수 있는 상황이 생길 수도 있었다.
그러다 보니 온콜이 주는 정신적 압박이 엄청났다.
온콜인 날에는 자다가도 언제라도 호출이 오면 일어나서 신속하게 호출에 응답을 하고 문제 처리를 하기 전까진 잠에 들지 못한다.
팀에 따라 온콜의 호출 빈도가 천차만별이었는데 온콜 업무량이 심한 팀은 온콜 스트레스 때문에 1년도 채 버티지 못하고 팀을 옮기거나 회사를 떠나는 경우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었다.
내가 속한 팀은 다행히 그 정도로 심한 수준은 아니었지만 나는 운이 나쁘게도 이 회사에서 근무한 4년 중에 3년 동안은 크리스마스 온콜 로테이션에 걸려서 매해 크리스마스는 호출기와 랩탑을 항상 옆에 두고 긴장 상태에서 연휴를 보냈던 안 좋은 기억도 있다.
한 번은 이런 일도 있었다.
어느 날은 주말에 시스템에 아무런 문제가 없는데 갑자기 호출이 온 것이다.
호출 관련된 이메일을 봤더니 CEO가 직접 이메일을 보내서 위에서부터 내려오기 시작해서 담당 엔지니어인 나한테까지 온 것이었다.
무슨 일인가 봤더니 CEO 딸이 주말에 회사 서비스를 쓰다가 안 되는 걸 발견하고 아빠한테 말해서 CEO가 담당 부서 간부에게 이메일을 보낸 걸 시작으로 조직도 상에서 한참 위에서부터 여러 단계의 담당자를 거쳐서 가장 하단에 있는 엔지니어인 나에게 오게 된 것이었다.
부서장들은 CEO로부터 직접 리포트된 문제였기 때문에 만사 제쳐 놓고 문제 해결을 하려고 했고 주말에 난 호출당해서 몇 시간 동안 문제 해결을 위해 진땀을 흘려야 했다.
물론 CEO는 이메일 보내고 그 후는 신경도 안 썼을 테지만…
지금은 없어졌지만 내가 아마존을 다닐 당시에 Stack Ranking Performance Review System을 적용하고 있었다.
1980년대에 General Electric의 CEO 였던 Jack Welch가 쓰면서 유명해진 리뷰 시스템인데 매년 있는 인사고과에서 직원들의 성과 (Performance)를 레벨별로 줄을 세우고 잘한 직원, 못한 직원을 가린다.
잘 한 사람은 당연히 승진이나 보너스가 주어지고 못 한 사람에겐 그에 해당하는 징계가 내려진다.
징계에 해당되는 Performance Improvement Plan (PIP)이 있었는데 PIP을 받으면 일단 승진은 물론이고 1년에 한 번 주어지는 보너스나 연봉 인상도 못 받는다.
거의 해고 직전의 수준의 경고이다.
이런 방식의 인사고과 시스템에서는 팀 내에서 경쟁을 통해서 누군가는 PIP을 받아야 했기 때문에 직원들의 불만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사실 줄을 세워서 인사고과를 하기 때문에 평가를 받는 입장에선 고역이 따로 없다.
그리고 무엇보다 문제는 직원의 한해 고과를 평가하는 과정에서 매니저의 주관적인 견해가 너무 많이 들어간다는 점이다.
현실적으로 매니저가 직원들 하나하나 하는 일을 자세히 알기는 힘들다.
때문에 매니저와 관계가 좋은 직원들이 유리한 위치에 서게 된다.
동료 평가를 받기는 하지만 최종 고과를 매니저가 결정을 하기 때문에 매니저의 파워가 막강하다.
동등하고 공평한 평가가 이루어지기 위해선 평가 시스템이 제대로 갖춰져 있어야 하는데 문제는 평가 시스템이 자리 잡지 않은 상태에서 줄 세우기 고가 평가가 이루어지고 있었다는 것이다.
이에 따라서 ‘사회생활'을 잘하는 사람이 좋은 평가를 받게 되는 한마디로 객관적이고 공평한 평가가 이루어지기 힘든 상황이 생겼다.
그리고 개인적으로 이 시스템에 최악으로 생각하는 점은 직원들로 하여금 실수를 두려워하게 만드는 점이다.
특히나 엔지니어들에겐 최악의 환경이다.
실수를 해서 시스템에 문제를 일으킨다면 이 문제로 회사에 어떤 영향을 끼쳤는지 돈으로 환산해서 보고서가 들어가게 되고 이는 인사고과 평가에 반영이 된다.
팀 매니저들은 인사평가 시에 이런 실수들은 이용해서 직원들 줄 세우기를 하게 되면서 주변 직원들과 경쟁을 해야 하는 상황 속에서 실수가 두려워서 새로운 시도를 못 하게 되는 것이다.
이는 엔지니어로서 제대로 된 ‘개발'을 할 수가 없게 만든다.
창의적이고 혁신적인 프로덕트 개발을 위해선 실수도 하나의 과정이 되어야 하는데 실수를 두려워 하기 시작하면 안정적인 일만 찾게 되고 새로운 시도와 도전을 억압하는 환경이 생기게 되는 것이다.
그리고 이런 식으로 직원들끼리 경쟁을 시키고 압박을 줘서 생산성을 늘리려는 발상 자체가 구시대적이고 오히려 생산성을 낮추는 결과를 가져오기 마련이다.
이런 시스템에서는 승진하는 것은 의외로 간단하다.
줄을 세웠을 때 같은 레벨에서 가장 우위에 서 있으면 된다.
둘 중의 하나이다.
남들보다 일을 더 해서 팀과 프로젝트의 공헌도를 높이고 자기 스스로의 역량을 모두에게 증명하거나 승진 프로젝트를 하나 잘 잡아서 제 시간 내에 실행을 하는 것이다.
승진 프로젝트가 되려면 가시성이 좋아야 하고 주변에서도 충분히 인정을 받을 수 있는 프로젝트여야 한다.
예상했겠지 나 문제는 개인의 승진만을 위한 프로젝트들이 생겨나기 시작하면서 나타났다.
굳이 만들 필요가 없는 것도 승진에 필요한 요소를 채우기 위해 억지로 만들어서 끼어 넣는 경우도 있었다.
단기적으로는 잘 안 보여도 당연히 장기적으로 안 좋을 수밖에 없다.
회사 성장을 위한 프로젝트가 아니라 개인의 위해서 끼워 맞추기 식으로 만들어서 하는 프로젝트가 장기적으로 좋을 리 없다.
아마존뿐만 아니라 많은 회사에서 Stack Ranking Performance Review System을 도입해서 오래간 시행 했었는데 항상 비슷한 문제점들이 이슈가 됐고 요즘엔 회사들이 대체적으로 지양하는 편이다.
다행히도 내가 아마존을 나온 몇 년 후엔 아마존에서도 없어졌다고는 하지만 오랫동안 자리하고 있던 시스템이라 그 영향으로 하루아침에 문화가 바뀌지는 않는 듯하다.
2011년 9월 아마존에서 대대적인 발표가 있었다.
아마존에서 처음으로 저가용 안드로이드 태블릿 디바이스를 내놓은 것이었다.
이는 공룡 기업 아마존이 이제껏 하지 않았던 새로운 영역으로의 진출이었다.
그런데 재미있는 것은 이후의 이야기들이다.
아마존이 내놓은 태블릿이 시장에서 이른바 대박을 냈다.
그 당시 $500이 웃도는 대부분인 태블릿 PC 시장에 $199짜리 초저가 태블릿 PC를 시장에 던져 놓은 것이다.
저가 태블릿 PC 전략은 성공적이었고 예상을 훨씬 뛰어넘는 성적을 내면서 하드웨어를 뒷받침해줘야 하는 소프트웨어 팀 발등에 불이 떨어졌다.
싼값에 태블릿 PC를 팔아서 앱스토어나 자체 콘텐츠 플랫폼으로 이윤을 남기려고 계획을 하고 있었지만 처음 시장에 내놓은 태블릿이 이 정도까지 대박이 날지 예상을 못 하고 아직 앱스토어나 자체 콘텐츠 플랫폼 개발이 제대로 자리를 잡고 있지 못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앱 스토어는커녕 다른 것들도 얼마나 준비가 안 됐었냐 하면 CEO가 제품 예정 날짜를 무리하게 발표를 하는 바람에 태블릿이 처음 고객들에게 배달되기 직전까지 버그를 고치는 작업을 하다가 고객이 태블릿을 처음 전원을 켜자마자 실행되는 게 버그 픽스들을 한 번에 내보내는 시스템 업그레이드였다.
이후 아마존 CEO는 그해 말 임원 회의에서 당초 2년의 기간 동안 계획했던 프로젝트들을 1년 안에 해 낼 것을 지시하였다.
그 과정에서 다른 지역 지사 오피스에서 시작하고 키우던 앱스토어 프로젝트는 본사로 넘어왔고 2년 치 프로젝트를 1년 안에 끝내기 위해서 회사 내의 여러 팀에서 엔지니어들을 끌어다가 앱스토어 팀을 급조하게 되었다.
이 과정에서 자발적으로 원해서 이 팀에 온 사람들도 있었지만 반강제로 등 떠밀려 듯이 오게 된 동료들도 있었다.
당연히 이렇게 급하게 사람들을 끌어다가 여러 개의 새로운 팀을 만들고 프로젝트를 단기간으로 진행하다 보니까 사실 제대로 돌아갈 리가 없었다.
나도 이렇게 급조된 앱스토어 팀에 합류하게 되었는데 팀을 옮기고 나서 거의 첫 2달 동안은 팀 매니저들도 우리 팀이 무슨 일을 해야 하는지 모를 정도였다.
당연히 대부분 앱스토어 관련 경력이 없었고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지 갈피를 못 잡고 있을 정도로 혼동스러웠다.
우리 팀의 매니저는 윗선에서 계획이 잡힐 때까지 아무 앱이라도 하나 만들어 보면서 시간을 떼어 라고 할 정도였다.
그 후에 또 한 번은 이런 일도 있었다.
당시 테스트를 담당한 QA 팀들이 본사가 아닌 인도와 캘리포니아주 오렌지 카운티에 있었는데 QA 팀의 테스트를 거쳐서 통과를 해서 릴리스를 한 태블릿 안에 탑재된 소프트웨어에 큰 문제가 발견되어서 난리가 난 적이 있었다.
소프트웨어 서비스를 만들다가 보면 문제가 생기는 일을 다반사이지만 그와는 별개로 문제 조사를 진행하면서 알고 보니 계약직을 중심으로 구성된 QA팀에서는 한 달 이상 그 팀에서 일한 직원이 없을 정도로 팀 운영이 잘 안 되고 있었고 당연히 제대로 된 테스트 프로세스가 전혀 안 잡혀 있어 보고 체계 조차 갖춰져 있지 않고 있었다.
아마존이 원래 온라인 서비스 중심의 회사다 보니 하드웨어 개발이 생소해서 태블릿 PC의 맞는 개발 프로세스가 제대로 갖춰지는 데는 그 후에도 시간이 좀 더 걸렸다.
하지만 이 와중에도 아마존의 저력이 여실히 드러났다.
이런 큰 소란 속에서 프로젝트들은 겉으론 문제없어 보이게 잘 진행이 되고 있었다.
놀랍게도 내부적으로 아무리 문제가 있어도 전반적인 프로젝트 자체는 큰 문제는 없이 잘 진행이 되고 있었고 결과적으로 포장을 잘해서 비즈니스 적으로는 무난하게 성적을 내고 있었다.
하지만 아마존 규모의 대기업에서 이런 식으로 신규 팀이 구성이 되고 운영이 된다는 사실에 대해서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주먹구구식 방법뿐만 아니라 허점도 너무나도 많았다.
나는 아마존에 다니는 내내 풍선이 점점 커지는데 구멍이 생기면 테이프로 막아가면서 크고 있다는 기분이 들었다.
그래서 언젠간 터질 것 같다는 생각을 지울 수가 없었다.
어떻게 보면 미국 테크 회사의 현실이라고 볼 수도 있고, 또 어떻게 보면 테크 회사들만의 가진 강점이라고 볼 수도 있겠지만 겉에서 보이는 회사의 이미지와 내부에서 바라보는 회사의 모습이 이렇게 다르다는 사실에 실망스럽기도 하면서 다른 한편으론 또 한 번 놀랐다.
물론 내가 생각했던 그 풍선을 아직도 터지지 않았다.
터지기는커녕 풍선이 아니라 훨씬 더 커져서 견고한 성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