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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그냥예정 Aug 19. 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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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 나는 뛰지 않았지

꽈당-. 어릴적 나는 종종 넘어졌다. 평평한 길을 걷다가도 꽈당. 대리석 바닥 위를 걷다가도 꽈당. 거슬릴 무언가가 전혀 없는 곳에서도 나는 어김없이 넘어졌다. 지금도 그때를 생각해 보면 그 이유를 모르겠다. 어쩌면 바람이 내게 장난이라도 쳤던 걸까.



엄마는 몇 번이고 다시 나를 일으켜 세웠다. 왜 자꾸 넘어지는 걸까. 조금 큰 엄마의 목소리가 들렸다. 넘어질수록 바지에는 흙이 묻었다. 내가 옷을 더럽혀서 엄마가 화 났나, 싶으면서도 엄마의 손은 나의 옷매무새를 정리해 주고 있었다. 옷이 얼추 정리되었을 때 쯤 엄마는 내 손을 잡았다. 넘어지려 할 때 금세 잡아 줄 수 있도록.



엄마는 내게 말했다. 천천히 걸어도 돼, 하나도 안 급해. 그래, 나는 급하게 걸었나보다. 뭐가 그리 급해서 내 키에 안 맞는 보폭을 얻고자 했을까. 넘어지는 빈도가 줄어 들더니 이내 겨울 미끄러운 눈길에서도 도통 넘어지지 않았다.



급하게 걸으면 오히려 넘어진다는 걸 무릎에 상처를 얻어 가면서 배웠거늘 왜 나는 스물셋에 도달했으면서도 다시 그때로 돌아간 것만 같을까.



나는 무엇이 급해서 나의 이력서를 완성하고, 포트폴리오를 정리하고, 지원서를 넣었을까. 학교도 아직 마치지 않은 나는 이제 고작 스물셋이다. 아무도 나를 재촉하지 않았다. 누가 나를 재촉했는가, 누가 나를 지금 누릴 수 있는 잠을 미루게 했는가. 나 자신이었다. 내가 나를 재촉하고야 말았다.



멍-. 모니터가 이렇게나 거대했던가. 할 일이 있는데도 할 일을 할 수 없고, 할 수 있는 게 없었다. 아직 한 달 채 지나지 않았는데도 이런 생각이 드는 게 맞는 건지 의문이 꼬리를 물기 시작했다. 알람이 울리고 아침에 일어나 거울 속 내 얼굴과 마주한다. 내가 아니다. 말이 그토록 많았던 나의 목소리는 줄어들었고, 내 눈 밑에는 기어이 그늘이 찾아왔다. 이게 뭐야, 누가 나를 이렇게 만든 거야. 어릴적에 멍은 내 무릎 위에만 자리했지만, 도통 길 위에서 넘어지지 않는 스물셋의 나에게 멍은 기어이 보이지 않는 곳에 자리하고야 말았다.



비상 계단에 털썩 주저 앉았다. 그냥 앉고 싶었다. 아무도 없는 곳. 유일하게 내가 무얼 하는지 아무도 알지 못하는 곳. 가만히 앉아 하얀 벽을 보고 있으면 눈물이 주륵 흘렀다. 모르겠다. 나는 여기 앉아 왜 이유 없이 눈물이 흐르는지. 이유가 있었지만, 섞이고 섞였던 터라 정의하기란 어려웠다. 그냥, 이유 없이 울음이 나왔다고 말하는 게 오히려 편했다.



우산을 챙겨 오지 못한 탓이다. 나를 향한 말들을 애써 받아내며 인사도 드리지 못하고 나오고야 말았다. 짐을 한가득 들고 집으로 가는 버스를 기다렸다. 눈이 부시도록 날이 참 맑았다. 날씨가 좋다는 생각을 근래에 한 적이 있던가. 곧 도착한 버스에 내 몸을 실었다. 건물을 지나고 나니 참았던 눈물이 터졌다. 나는 엉엉 소리 내어 울지 않는다. 그저 계속 얼굴 위로 울음이 흘렀다. 나는 그렇게 참 맑은 날 집으로 향했다.



집에 도착하니 엄마는 평소처럼 나를 반겨 주었다. 왔어? 배고프지. 그래, 나는 지금 이 시간에 집 속에 존재한다. 나를 살아가게 하는 모든 존재들이 존재하는 나의 세계 속에 있다. 엄마는 내 얼굴을 도통 보려고 하지 않았다. 주섬주섬 짐을 내려 놓던 중 눈이 마주쳤다. 엄마 얼굴을 보니 참았던 소리가 터졌다. 나는 자주 넘어져서 무릎에 상처가 가득했던 어릴적의 나로 돌아갔다. 엄마도 무던히 참았던 눈물을 보이며 나를 안아 주었다. 모든 게 녹아내리는 기분이었다.



나는 조급했고, 그에 대한 결과는 깊은 상처를 안은 내 모습이었다. 나만 안고 있으면 괜찮겠지, 했던 상처는 내가 감당할 수 없을 만큼 무럭무럭 자라서 마침내 가족이 알아차리게 만들었다. 나는 다시 스물셋의 나로 돌아와서 천천히 걷는 법을 다시 터득해야지.



천천히 걸어도 돼, 예정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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