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침내 끈끈해진 추석
새로운 집은 아직 짐이 가득이다. 이제야 누울자리 정도만 마련되었을 뿐이다. 이 짐들을 언제 다 정리할고.
추석이 코 앞이었을 때 우리는 또 한 번 분리를 겪었고, 비로소 우리끼리만 남았다. 작아질 데로 작아진 우리의 추석. 애초부터 이 모습이 옳았을 지도 모른다.
어제는 전화가 한 통 왔다. 이 전화를 끝으로 드디어 지난 곳과는 잘 마무리되었다. 고작 스물셋밖에 안 된 꼬맹이 하나로 인해 겪으셔야 했던 마음 고생에 대해 내게 설명 주셨고, 나는 진심으로 사과드렸다. 문제 삼지 않을 거니 괜찮다, 라는 말씀을 해 주셨다. 나는 참 지금도 내 상황이 가장 크고 힘든 만큼 어리다. 우리는 말을 하고 살아야 하는구나. 이렇게 이전과는 남은 것 하나 없이 잘 마무리되었다. 고생했다.
잠시 머물 새로운 집으로 이사 온 후 변화라면 변화이다. 짐에 휩쓸려 자리는 좁아졌지만, 마음 쓰고 있던 부분들이 사라지기 시작한다. 이 사실 자체로 명확해졌다. 할머니 집에서 나오길 참 잘했다.
추석이다. 나의 추석은 점점 더 좁아지더니 마침내 세 모녀만 남았다. 도리는 모든 상황이 낯설다는 듯한 표정으로 이 공간을 살핀다. 도리에게 미안할 뿐이다.
매 해 추석만 되면 선생님, 교수님, 친한 친구들에게 안부 연락을 건넸다. 단 한 순간도 귀찮았던 적이 없지만, 올 해는 다르다. 조금 지친다. 다들 내게 소중한 사람들이지만, 그렇기에 한 번쯤은 쉬어 가는 나의 안부 연락 쯤을 이해해 주리라 믿는다. 나는 나의 가족과 나의 안부를 챙기는 것만으로도 올 해는 충분하기에.
커다란 발코니가 있는 꼭대기 집. 잠시 머무른다고 할지라도 그 잠시 동안 이곳은 집이다. 마음 편히 누워서 잘 수 있는 곳. 다정하고 좋은 기억들만 가득 안고 갈 수 있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