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곤 쉴레의 이중 자화상
감정의 자화상..
표면에 드러나는 얼굴 외에 누구도 모르는 나만 아는 나의 모습이란. 여러가지 형상들, 동물로도 일그러진 남자 혹은 또다른 여자의 모습으로도. 하루에도 수만 가지의 감정이 일어나고 사라지고를 반복하며 마음에 일렁이는 욕망과 좌절을 마주한다.
에곤 쉴레의 이중자화상과 삼중자화상에 드러나는 모습은 자신의 정체성에 대한 탐구이자 표현일까.
그의 자화상은 욕망과, 관능,실망, 고통 모든 것을 거부하지 않겠다는 오히려 더 비정상적인 현실에 대한 경고로 보인다. 하지만 충돌하지는 말자고 .
드러냄은 부끄러운것도 추한것도 아닌 더불어 사는 삶의 방식. 그냥 그대로 드러내고 민낯으로 살기다.
부유하듯 가벼운 그의 몸.
수많은 그의 자화상은 나르시시즘에 빠진 그를 생각하다가도 공격적이면서 솔직한 표현주의자로 보여진다. 나에게 빠지되 거리를 두고 바라볼 것, 내 감정이 일종의 상실감과 학대로 보여질지라도 상대에게 보여주는 것이다. 표현의 자유라는 것이 우리에게 얼마나 허용되었을까. 자유가 있어도 구속과 질타가 있는 현실. 내겐 외설이 아닌데 상스럽다 못박는 사회. 내 잣대에 한계를 긋는 자유를 빙자한 '규범'에 저항하는 표현, 행동, 언어, 그림 모두를 '창조'라고 말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