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리스마스 시즌이다. 도시 이곳저곳에서 열리는 크리스마스 마켓, 크리스마스 분위기로 화려하게 장식해 놓은 집들, 가게 앞을 장식하는 커다란 포인세티아 화분과 크리스마스트리를 지붕에 싣고 가는 차 등 일상의 곳곳에서 차분하지만 설레는 크리스마스 분위기를 느낄 수 있다. 텅텅 비어 있는 (사실 비어있진 않지만 왜 늘 먹을 것은 없는가!) 냉장고를 채우러 코스트코를 가서 음식들을 담다가도 크리스마스 쇼핑 분위기에 휩싸여 예쁘게 포장된 물건들을 하나 둘 쇼핑카트에 담고 만다.
9월에 시작한 학기가 마무리되는 12월이기도 하다. 아이 학교와 동시에 커뮤니티센터의 가을학기 강좌들도 등록했는데 어느덧 마지막 수업 즈음이라 선생님들께 선물을 준비하고 있다. 흔한 워터파크나 수영장에 아이를 한 번 데려가지 않았기에 우리 아이는 수영도 캐나다에 와서 처음으로 배우게 되었다. 수영레슨이 있는 날이면 학교 가기 전부터 수영복과 수영안경을 챙기는 나의 아이, 수영을 좋아하게 만들어준 수영 선생님들께도 아이가 쓴 간단한 카드와 선물을 챙겨 드리고 싶다. 수요일 저녁시간을 채워준 내 발레 선생님도 함께 떠올랐다. 아름다운 발레 음악에 맞춰 몸에 긴장을 주며 스트레칭을 하는 것도 좋았고, 아름다운 발레 선생님 몸과 자유롭고 가벼운 동작을 보는 것만으로도 좋았다. 참 좋았던 시간이었다.
가만히 앉아 선물 목록을 작성하고 있는데 한국에서 메시지 하나가 날아왔다. 미리 보기로 슬쩍 보니 형부가 보낸 메시지였다. 갑자기 무슨 일일까?
"혹시나 하는 마음에 검색해 봤는데 이런 게 있어서 함 보내봅니다~ 즐거운 시간 보내세요^^ "라는 메시지와 함께 팀홀튼스 기프트카드가 도착해 있었다. 한국에서 팀홀튼스 기프트 카드를 보낼 수 있다니 전혀 예상하지도 못했던 일이다. 아이 수영 끝나고 나면 집에 가는 길에 있는 팀홀튼스에 들러 늘 팀빗 박스 하나를 사서 가곤 했는데, 아이가 팀빗 박스를 들고 있는 사진을 찍어 가족 채팅방에 늘 보낸 적이 있는 게 생각이 났다. 캐나다 생활의 소소한 참새방앗간인 팀홀튼스에서 보내는 우리를 떠올리곤 기프트카드를 보내주다니. 오래전이라 잊고 있었지만, 내가 새로운 동네로 이사 갔을 때도 형부는 동네 지도를 찾아보며 가장 가까운 곳에 있는 커피전문점의 기프트카드를 보내줬었다. 아이를 유모차에 태워 낮잠을 재운 후 커피를 마시며 보내는 한두 시간이 하루의 유일한 외출이자 활동이었던 때라 형부의 선물은 더없이 필요한 응원이었다.
언니의 결혼생활은 10년이 훌쩍 넘었고, 나도 결혼한 지 어느덧 10년을 향해 가고 있다. 지금에서야 새롭게 알게 되는 남편의 모습이 있고, 아직 남편의 모든 것을 다 알고 있다고 확신할 수 없다. 얼마나 오랫동안 결혼 전 만났다고 한들, 결혼 후 알게 되는 것들이 많으니 결혼 전 함께하는 동안 내가 그 사람에 대해 알게 된 것이 부디 틀리지 않기를 바랄 뿐이다.
외형적인 요소인 외모, 직업, 학벌, 재산 등을 포함해 많은 조건들 가운데 우리 자매가 포기할 수 없었던 것은 '자상함'이 아닐까 한다. 아빠의 넘치는 사랑을 받고 자란 우리 자매라 마음이 따뜻한 사람이길 바랐다. 따뜻한 말을 하고 따뜻한 시선으로 주변을 보는 사람이길 바랐다. 아빠와 공통점이라고는 전혀 없는 것 같은 형부와 내 남편이지만, 단 하나의 공통점이 있다면 자상함이다. 그조차 다른 방식과 다른 온도의 자상함이지만.
내 아빠의 자상함은 우리 자매에게 스며들어 우리가 새롭게 가정을 꾸릴 배우자는 다정하고 따뜻한 사람이어야만 한다는 것을 당연하게 느끼게 만들었다. 다정한 사람과 시작한 결혼은 포근하고 안전하다. 그리고 내 아이와 내 조카들에게도, 다정함이 흐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