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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테리 May 30. 2021

너를 위한 도시락엔 내가 없었다.

 쌈박한 쌈밥, 횡성한우 불고기정식, 전주식 한상, 이천쌀밥정식…. 편의점 도시락 메뉴들이다. 종류도 많아지고 퀄리티도 좋아졌다. 몇 년 전까지만 해도 편의점 도시락은 대충 한 끼 때우는 이미지가 강했는데 요즘은 편의점이 캐주얼 레스토랑 화 되어가고 있다. 하지만 편의점 도시락이 아무리 업그레이드된다고 할지라도 도시락계의 영원한 최강자는 어렸을 적 엄마가 싸주던 보온도시락이다.


4교시가 끝나는 종소리가 반가웠다. 우리는 그제야 처음으로 얼굴에 미소가 번졌다. 책상을 앞뒤로 붙이고는 옹기종기 모여 앉아 각자의 도시락을 펼쳐 보였다. 남의 떡이 커 보였던 건 그 시점 즈음이었던 것 같다. 왜 그렇게 남의 반찬이 맛있던지…. 여러 명이 모여 앉은 만큼 반찬도 다양했다. 비엔나소시지, 돈가스, 떡갈비, 불고기, 김치 볶음, 계란말이, 어묵볶음, 장조림, 옛날 햄, LA갈비, 동그랑땡, 제육볶음, 감자조림, 게맛살…. 등등의 산해진미들은 현란한 포크 질 몇 번 교차하면 유튜브 편집처럼 깨끗하게 비워졌다. 동작이 민첩한 몇몇 친구들은 자기 도시락을 진즉에 해치우고 팔도 맛집을 탐방하는 미식가처럼, 반 곳곳을 누비고 다니며 반찬 약탈을 하기도 했는데 우리는 그 정도는 내어줄 수 있는 마음이 너그러운 아이들이었다.


가끔, 늦잠을 잤을 땐 왜 일찍 안 깨웠냐며 애먼 엄마한테 짜증을 내고 도시락도 안 가지고 등교할 때도 있었는데 엄마는 그 짜증을 학교에 도시락을 가져다주는 걸로 받아치곤 하셨다. 그때는 몰랐다. 그 도시락이 어떤 의미의 도시락이었는지를….


대학을 가고 나서는 더는 엄마의 도시락을 먹을 일이 없어졌다. 물론 집에서 밥을 먹기는 했지만, 그보다는 친구들과의 외식이 잦아졌다. 세상에는 엄마보다 요리를 잘하는 사람들이 많다는 것을 본격적으로 깨달았다. 맛집을 다닐수록 엄마 요리를 비평하기 시작했다. 요리에 요자도 몰랐던 내가 마치 래든 곰지…. 아니 고든 램지처럼 엄마의 손맛을 평가절하했다. 그럼에도 엄마는 늘 내가 저녁을 먹고 들어오는지를 확인하고 심야식당 주인아주머니처럼 부엌 불을 끄지 않으셨다.


엄마표 도시락의 빈자리는 여친 표 도시락이 대신했다. 이상하게도 난 여친한테 감동받았던 순간을 떠올려보면 늘 도시락에 관한 것이다. 극단 선배 공연을 같이 보러 가는데 선배 주라면서 샌드위치를 한가득 만들어 왔던 j, 밤샘 촬영할 때 동료들이랑 먹으라며 손수 한 닭백숙을 배달해 주었던 s, 선배들이랑 골프 칠 때 먹으라며 각종 주전부리를 소포장해 내 이름이 적힌 스티커까지 붙여주었던 k…. 그때마다 애정 지수가 가파르게 상승했다. 이젠 다른 이의 도시락을 싸고 있겠지만 새삼 그때의 도시락이 너무 고맙다.


그때는 몰랐다. 그 도시락을 어떤 마음으로 준비했었는지를…. 요리를 1도 몰랐다. 알고 싶은 생각도 없었다. 내게 음식이란 건 으레 누군가 해주는 것이다. 유일하게 할 줄 아는 요리, 라면이 있기는 했지만, 그마저도 귀찮아했던 초절정 왕자님 코스프레를 하던 시절이 있었다.


그런데, 어느 날부터인가 알 수 없는 유튜브 알고리즘에 의해 요리하는 유튜브 방송을 몇 개 보게 되었는데 다음 날 깨어보니 내가 칼질을 하고 있었다. 백종원 선생님의 영향도 컸다. 그전까지는 요리는 셰프가 되어야 할 수 있는 것이라는 생각이 무의식 중에 있었는데 백 선생님은 ‘요리는 누구나 할 수 있는 것’이라는 생각으로 바꾸어 주셨다. 그렇게 나는 요리가 취미인 남자가 되었다.


여전히 칼질은 서툴고 잠깐 딴생각하면 냄비가 타 있지만 분명한 것은 요리가 취미라는 것이다. 유튜브 시청으로 생긴 알량한 자신감으로 교회 목사님과 봉사해주시는 분들을 위해 도시락을 싸 갖다 드린 적이 두어 번 있다. 일주일 내내 여기저기 돌며 장을 보고 전날 저녁부터 재료 손질을 하고 잠깐 새우잠을 자고 일어나 요리를 만들어나갔다. 외웠다고 생각한 부분도 막상 실전에 돌입하면 머릿속이 하얘졌다. 그럴 때마다 방송을 돌려가며 다시 보고 다시 보고 불 조절 신경 써가며 조리고 볶고 모양내고 담아내고…. 그 모든 과정에 나는 없었다. 오직 이 도시락을 먹을 대상만 있었다.


나를 위하는 이기적인 마음은 온데간데없이 사라지고 이 음식을 먹을, 상대방을 위하는 마음으로 채워졌다. 맛있게 먹길 바라고, 먹고 힘냈으면 좋겠고, 먹고 더 건강해졌으면 좋겠고, 건강한 몸으로 더 잘 되었으면 좋겠고…. 그런 의미에서 요리는 또 하나의 수행이었다. 온통 축복하는 마음뿐이었다.


나의 도시락을 싸주시던 엄마의 마음이 그랬을 것을 생각하니 엄청난 시차를 두고 눈시울이 붉어졌다. 약간의 아쉬운 맛을 MSG를 넣지 않아 그렇다고 둘러대곤 하셨지만 이미 엄마표 MSG가 들어가 있었다.


(M-마음의 S-사랑이 G-가득)


하마터면 모르고 지나갈 뻔했다. 많은 시간과 넘치는 마음을 나를 위해 써주었던 그 소중하고 감사한 순간들을 당연하게 생각하며 지나칠 뻔했다. 좀 더 고마워할 걸. 좀 더 격하게 기뻐할 걸.


내가 요리를 해보고 나서야 요리에 담겨 있던 그때는 보이지 않았던 것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그 어떤 토핑보다 귀했던 나를 위한 순도 100%의 마음이 담겨 있었음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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