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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테리 Jun 03. 2021

오! 나의 심장 뛰는 신세계

꿈이 이루어졌다. 2021년 6월 12일. 토요일.

오전 7:07분.  나는 안락사했다.


'어? 오늘 저녁에 배떡에서 로제 떡볶이 시켜 먹으려고 했는데... 결국 그 핫하다는 로제 떡볶이 한번 못 먹어보고 눈을 감고 말았네... ' 근데 ...죽어서도 눈뜨자마자 먹는 거 타령이라니…. 나란 녀석... 정말 어쩔 수 없는 녀석인 건가…? ‘그런데, 이곳은 어디지? 뭔가 한없이 청량하고 끝없이 차오르는 상쾌함…. 걱정 따윈 아무리 머리를 쥐어짜도 도저히 안 떠오르는 낯설지만, 평생 낯익고 싶은 공간….’


내가 깨어나자 누군가 다가와 자신을 소개했다. 그는 이곳을 관리하는 문지기 요정 같은 뭐 암튼 그런 직책이었는데 설명을 해주는 목소리가 너무 아름다워 들을 때마다 나는 비명을 지를 뻔했다. 그의 설명에 따르면 이곳은 내가 살던 세계에서 다음 세계로 가는 중간 세계 같은 곳인데 평생 삶을 살아내는 동안 일정 포인트가 쌓이는데 같은 레벨의 포인트 적립이 이루어진 사람들끼리 속하게 되는 세계였다. 신이 인간을 창조한 이후 인간은 늘 말썽을 일으키며 시행착오의 연속이었는데 그나마 취향이 통하고 결 너비가 맞는 사람들끼리 묶어놓았을 때 가장 평온한 상태가 지속되더라는 것이었다.    


‘뭐야…. 그럼 난 죽은 게 아니라 그 긴 시간을 임상 실험당하고 이제야 분류가 된 거야? 여기서 또 삶을 살아내야 한다고?’     


난 볼멘소리로 그에게 따지듯 물었지만, 그녀는 나의 어깨를 토닥여주며 여기서는 살아내려 애쓰지 않아도 되는 공간이 될 거라며 따뜻하게 위로해주었다. 그래도 잘 살아냈으니까 이곳에 오게 된 거라고…. 착한 사람이 모여 있으면 그곳이 천국이고 악한 사람끼리 모아놓으면 그곳이 지옥이라고…. 여기는 꽤나 좋은 사람들이 오게 되는 곳이라고…. 그리고는 이곳을 소개해줄 테니 산책이나 한 바퀴 하자며 나를 일으켜 세웠다.    


나는 긴긴밤을 지나 이곳으로 왔기에 체내 수분이 고갈된 상태였다. 일단 물이 필요했다. 그녀의 손에 이끌려 따라가니 세상에…. 이렇게나 아름답게 물로만 이루어진 공간이 있다니…. 온통 실내장식도 물로만 되어 있었는데 그 물은 흐르지 않았다. 고체도 아닌 것이 어떻게…. 그러나 보는 순간 물인 것을 알 수 있는 천상 물이었다. 그곳의 이름은 '민 지은수'였다. 브리타 정수기 정도로는 감히 갖다 댈 수도 없는 물의 분자 하나하나까지 깨끗하게 정수된 더 이상 깨끗할 수 없는 물이었다. 마시는 순간 알 수 없는 강력한 에너지가 채워졌다. 유일한 단점은 뜨거운 물이나 차가운 물은 안 나오고 오직 미지근한 물만 가능한 것이었다. 조금 의아한 생각이 들어 그녀에게 물었더니 그녀가 대답하기를 이 공간의 주인은 아직 저쪽 세상 속에 살고 있는데 그 여인이 원체 미지근한 사람이라 그렇다고 하면서 공간은 사람을 닮게 되어 있다고 했다. 뭐, 한겨울에도 아아를 마시는 나로서는 조금 아쉽기는 했지만 크게 상관은 없었다. 찬물을 원할 땐 얼음을 넣으면 되고 뜨거운 물을 원할 땐 데우면 되니까…. 미지근한 것이 사실은 제일 좋은 상태라는 생각이 들었다. 원한다면 차가워질 수도 뜨거워질 수도 있으니까….


벌컥벌컥 물을 마시고 나니 이번엔 배에서 신호가 왔다. 펑그리타임인가? 배가 막 고픈 것은 아니지만 눈을 떴으니 뭔가 먹고 싶어 졌다. 그녀는 물었다. 뭐가 먹고 싶냐고. 나는 이것저것을 떠올리다 내가 가장 좋아하는 것을 이곳에서의 첫 끼로 하고 싶다는 생각에 스시라고 대답했다. 그녀는 또 내 손을 잡아 쭉 당기니 어느새 스시 테이블로 옮겨졌다. 그곳의 이름은 ‘회, 사랑해’ 였는데 회사를 끔찍이 사랑하는 어떤 여인의 워딩('회사랑, 해')을 이곳의 파일을 분류하는 요정이 잘못 알아듣고 횟집으로 공간 설정을 해놓은 것이었다. 그래, 아무리 요정이라도 설마 사람이 회사를 사랑하리라고는 생각도 못 했겠지. 초밥을 한 점씩 삼킬 때마다 난 궁극의 천국을 맛보았다. 음식이 저기 혀 너머로 작별을 고할 때마다 애도해보긴 처음이었다. 수요 미식회에 나온 어정쩡한 맛집들하고는 비교 자체가 안 되는 정말 세상에는 없는 맛이었다. 이런 곳에서 계속 살 생각을 하니 내가 세상을 그렇게 못 살아낸 것만은 아니었다고 하는 안도감이 들었다.    


식사를 마치고 나오니 저 멀리 누군가 담배를 피우고 있었다. 아니, 이런 청정 지역에서 누가 담배를 피우고 있지? 하면서 다가가 얼굴을 보니, 내가 아는 사람이었다. 전에 글쓰기 모임에서 몇 번 본 적이 있는 이주용 님이었다. 반가운 마음에 인사했지만, 그는 나를 못 본 것처럼 마지막 담배 한 모금을 깊게 뿜어내고는 연기처럼 사라졌다. 영문을 몰라하는 나에게 그녀는 또 친절하게 설명해주었다. 그는 아직 저쪽 세상에 살고 있는데 그가 잠이 들면 가끔 그의 체내에 있는 온기에 그의 영혼들이 풀려 이쪽으로 건너오게 된다는 것이었다. 일종의 초능력 같은 것인데…. 처음엔 보자마자 내쫓으려고 했지만, 워낙 착하게 생기기도 했고 또 담배만 피우면 알아서 다시 건너가기에 이제는 그러려니 하며 암묵적 묵인을 해주게 되었다고. 그래도 아는 사람을 보니 반가웠다. 어쩐지 글이 심상치 않더라니. 초능력 자였구먼….    


식사를 했으니 이제는 커피타임인가? 묻기도 전에 그녀는 내 마음을 읽은 듯이 내 손을 잡아 위로 한번 날아올랐다. 전혀 새로운 공간이 눈에 들어왔다. 그곳의 이름은 하늘나라였다. 에티오피아산 원두보다 케냐 AA보다 만 배쯤은 더 매혹적인 향으로 나를 힐링하게 되는 커피 천국이었다. 대형 로스팅 기계가 천상의 향을 뿜 뿜 하고 곳곳에는 요정들이 드립 커피를 내려주고 있었다. 우와…. 죽어서야 살고 싶어 지다니…. 이곳에 온 지 반나절도 안 되어 나는 이곳에 완전히 취해버렸다.    


그렇게 황홀한 커피를 마시고 나오니 발걸음도 가벼워진 느낌이 들었다. 이러다 날 수도 있겠는데 하는 생각까지 들었다. 골목길에 들어서니 뭔가 힙해 보이는  곳이 있어 물었더니 이곳에 존재하는 유일한 술집이라고 했다. 원래는 없었는데 청원을 계속 넣어 얼마 전에 생겼다고... 술집의 이름은 '병연'이었다. 빛날 병에 잇닿을 연. 빛나는 인연이라는 뜻이었다. 이 공간의 모태가 되는 이가 웬만하면 첫눈에 반하는 성격이라서 이 공간에 들어서면 상대방에게 반하게 된다고 했다. 그래서 소개팅의 성지라고…. 여기서 소개팅하고 '공유정'이라는 정신을 공유하는 공간에서 정을 나누면 비로소 끝나지 않는 인연이 된다고. 이곳에서는 이별이라는 개념은 없다고…. 우와…. 다음에 목욕재계하고 가봐야지….


룰루랄라…. 이곳으로 오길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죽어서 처음으로 나를 칭찬해 주었다. 다음은 또 어떤 설레는 공간이 나를 기다리고 있을까?


ps. 부족한 글에 특별 출연해주신 거부쓰 멤버 여러분에게 감사의 말씀을 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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