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강테리 Sep 08. 2021

그냥, ... 간지나잖아!!

글을 왜 쓰세요?” 심오하고도 난처한 질문을 받았다.

그제야 자문해본다.

“나 왜 지금 글 쓰고 있는 거지?”

자본주의 논리에 입각해 대입해보면 시간=돈이다.

그렇다면 글을 쓰는 시간에 비례해 돈이 들어와야 한다. 그런데 아무리 기다려도 입금되지 않는다. 내 글은 돈이 되는 글이 아니기 때문이다. 오히려 글을 쓰기 위해 글 쓰는 플랫폼에 규칙적으로 돈을 지불하고 있다.


이성적으로는 명백하게 미친 짓이다. 자라나는 새싹은 돈을 들여 키워주는 게 맞지만 난, 이미 다 자란 싹이다. 물을 아무리 많이 줘도 다 컸다. 더 자랄 여지가 없다. 어른이 되면 아웃컴보다 인컴에 집중해야 한다. 남을 계발해줘도 시원찮을 판에 아직까지 자기계발이라니…. 이런….

글을 왜 쓰지? 에 대한 자문이 어느덧 자기학대로 이어지고 있다. 이쯤 하기로 한다.


<1984>의 저자, 조지오웰은 인간이 글을 쓰려는 이유에 대해 깔끔하게 정리했다.


첫째, 잘난 체하고 싶은 순전한 이기심
둘째, 멋진 문장을 쓰고 싶은 미학적 열정
셋째, 진실을 기록하려는 역사적 충동
넷째, 정치적 목적

내가 글에 질척대고 있는 이유도 위의 4가지 범주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 것 같다. 그러나, 이렇게 끝내버리기엔 다소 황망하므로 조금 더 탐구해 보기로 한다. 어렸을 때부터 글 쓰는 것을 좋아했다. 독후감을 쓸 때마다 상장이 하나, 둘 쌓여갔고 형편없는 내신등급과는 별개로 논술은 늘 전교 3위권에 들었으니 스스로에 대한 만족감을 느낀 것도
한몫했었던 것 같다. 본격적으로 글을 끄적거리기 시작한 것은 고등학교 때였다. 당시 나의  감수성에 불을 지른 작가가 있었다. 톨스토이나 헤르만 헤세 같은 세계적인 대문호는 아니었지만 내게는 거의 동급이었던 시인.

원 태연이었다.

“네가 그릴 수 있는 한 최대한 크게 원을 한번 그려봐. 그걸 뺀 만큼 너를 사랑해.”

“너는 가끔가다 내 생각을 하지. 나는 가끔가다 딴생각을 해.”

그의 전율 돋는 사랑에 대한 표현들은 시대를 불문하고 연인 사이라면 한번은 거쳐 가야 하는 시험대.

“ 나, 얼마만큼 사랑해?” 하면 “하늘만큼 땅만큼”이라 대답하는 천편일률적인 진부함에서 벗어나 얼마든지 개인의 역량에 따라 달콤하고 creative한 우문현답을 할 수 있다는 사실을 증명해낸 것이기도 했다. 그처럼 되고 싶었다. 당시 나의 꿈은 돈 많은 로맨티시스트였다. 귀가 녹아내리는 표현들을 발명해내고 싶었다. 수많은 꿈 리스트에 작사가를 추가했다. 그리고는 영감을 강제 소환해 글을 끄적였다. 습작 노트는 어느새 5-6권으로 불어나 있었다. 친한 친구들 몇 명이서 돌려보며 감상평을 적어주곤 했던 내 노트는 의도치 않게 논술 맛집으로 소문 나는 바람에 반장, 부반
장까지 노트를 빌려 가 읽었다. 그런데, 이런 빌드업은 한순간에 깨지고 말았다. 내 동생이 연애편지를 쓸 용도로 내 노트를 전부 들고 나갔다가 책가방을 잃어버리는 바람에 내 3년에 걸친 작업물들은 허공으로 사라졌다. 분명, 지금 다시 본다면 헛웃음 밖에 안 나올 똥글이었겠지만 당시 나에게는 자식과도 같은 아이들이었기에 상실감이 생각보다 컸다. 그 이후 얼마간 절필했다.


그러다, 다시 글에 재미를 붙인 것은 싸이월드의 등장 때문이었다. 비록, 페북과 인별그램의 등장으로 짧은 전성기를 누리고 추억 속에 묻히긴 했지만 나는 여전히 최고의 SNS는 싸이월드였다고 생각한다. 지금의 SNS는 광고가 너무 많고 풀빌라가 너무 많고 비키니가 너무 많고
오마카세 맛집이 너무 많고 다이어트 효소  파는 인플루언서가 너무 많다. 그때는 광고보다 사고를 할 수 있었다. 대문 글에는 시시각각 바뀌는 내 심경을 표현할 수 있었고 일촌이 돼야지만 쓸 수 있는 자격이 주어지는 일촌평은 주변 사람들이 나를 어떻게 생각하는지에 대한 작은 힌트가 되어주었으며 방명록의 발자취는 학창 시절 수업 시간에 선생님 몰래 쪽지로 잡다한 이야기들을 주고받던 추억을 이어가게 해주었다. 무엇보다, 사진과 글을 같이 업로드 할 수 있다는 점이 매력적이었다. (지금은 당연한 얘기지만 그때는 나름 혁신이었다) 인터넷에 예쁜
사진들을 보면 감수성이 몽글몽글해졌고 그 사진에 어울릴만한 글을 썼다. 그러면 댓글로 일촌들이 칭찬을 해준다. 그렇다…. 나는 칭찬에 목마른 사람이었다. 그래서 글을 썼다. 사랑하면 사랑하는대로…. 이별하면 이별하는 대로…. 그러나, 이내 시들해졌다. 내 글을 무단으로
퍼가 자신이 쓴 글인 것처럼 재 업로드를 하는 몇몇 사람들 때문에 내가 타인의 글을 베낀 거라 생각하는 사람들도 있었다. 대단한 글은 아니었지만 내 글에 대한 애정은 있었기에 그런 상황들이 싫었다. 그래서 또 한동안 휴면기에 들어갔다.


다시, 글을 쓰게 된 것은 골프에 빠지면서부터였던 것 같다. 당시, 골프 장비에 관한 조언을 구하기 위해 가입했던 네이버 카페는 골프 카페 중에서는 우리나라 최다인 5만 회원을 보유한 대형카페였었고 그만큼 글도 많이 게시되는 곳이었다. 카페 활동을 하면서 라운드 후기나 골프에 관한 내 생각들을 글로 종종 올렸었는데 반응이 꽤 뜨거웠다. 개중에는 글에 페이소스가 있다며 극찬을 해준 무협 글의 고수도 있었고 어떤 형님은 전업 작가를 한번 해보라며 무라카미 하루키의 책 ‘직업으로서의 소설가’를 선물로 건네주었던 적도 있었다. 많은 일이 있었다. 뜨겁게 사랑했던 골프로부터 멀어지고 2년여간 회사원 생활도 해보고….


무작정 퇴사한 다음엔 싸이월드, 카카오스토리에 썼던 글들을 추려 ‘한때 가까웠던 사이’라는 책을 한 권 출간하기도 했다. 큰 기대는 안 했지만 작은 기대에도 못 미칠 만큼 책은 많이 팔리지 않았다. 내 글이 무엇이 문제일까? 내 글은 왜 대중성이 없는 것일까? 돈이 되는 글을 쓰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 걸까? 이런저런 생각의 알고리즘을 어떻게 눈치챈 건지 각종 SNS엔 나를 저격하는 것 같은 글쓰기 플랫폼 광고들이 현란하게 나를 유혹해왔다. 생각이 많아지는 새벽 2시, 나는 오늘만 사는 놈처럼 닥치는 대로 결제를 시작했다. ‘퇴근 후 글쓰기’ , ‘거기서부터 글쓰기’, ‘사적인 글쓰기’, ‘브런치 작가 도전하기’, ‘에세이 스탠드’…. 수없이 많은 플랫폼 저마다의 제목으로 내게 다가왔고 나는 대부분 그 결제의 유혹을 수락했다.


그렇게 결제의 힘으로 써 내려간 지도 어언 8개월. 표면적으로 달라진 것은 없다. 딱히, 필력의 놀라운 변화도 없는 것 같다. 그런데, 난 왜 여전히 글이라는 놈을 놓아주지 못하는 걸까? 진짜 좋아하는 것에 대한 이유는 ‘그냥’으로 귀결된다. 진짜 좋은 것은 ‘그래서’보다는 ‘그럼에도 불구하고’의 이유가 더 많은 까닭이다. 글 쓰는 시간이 내게 힐링이 되어주는 시간이라…. 말보다는 글이 더 진실에 가깝고 말은 기분 따라 바뀌기도 하고 쉽게 잊히기도 하지만, 글은 기록으로 남고 기록은 기억을 재생시켜주기 때문에…. 글을 선호하는 것도 있지만 돈이 안 되는 소모적인 행위임에도 불구하고 내가 글을 쓰는 것은 언젠가 내 안에서 분출될지 모르는 ‘한 줄의 아름다움’을 기대해서인지도 모르겠다. 좋은 글에는 분명 좋은 인생이 담겨 있다고 믿으니까….


1920년대 뉴욕의 어느 공원
겨울의 끝자락에서 봄을 향해 가던 어느 날.

찬 바닥에 깔린 신문지,

‘저는 맹인입니다.’라는 글씨가 적힌 팻말과 동전통을 앞에 놓고  한 거지 노인이 구걸을 하고 있었다. 대도시의 공원이라 이리저리 나들이 온 사람들은 많았으나
노인에게 적선하는 사람은 기껏해야 한두 명뿐….

‘또각또각’ 점점 다가오는 구두 소리. 한참 동안 노인을 바라보던 한 남자가 잠시 머물다 떠났다. 그가 떠난 이후 얼마의 시간이 지나지 않아 갑자기 이상한 일이 벌어진다. 노인의 동전통에 끝없이 떨어지는 동전 소리...
그냥 스치듯 지나던 사람들이 적선을 하기 시작했다. 무엇이 사람들의 무관심을 돌려놓은 걸까?

노인에게 다가간 그 남자는 적선을 하지 않았지만 노인 앞에 놓인 팻말의 문구를 다음과 같이 바꾸어 놓은 것이었다.

“바야흐로 봄은 오는데 나는 그 봄을 볼 수가 없습니다.”


캬아….여차여차 가타부타 많은 이유들이 있겠지만 저 글이면 대략 한가지 이유로 압축될 수
도 있을 것 같다.


음... 내가 글을 쓰는 이유는... “그냥…. 간지나잖아!!”

작가의 이전글 내기할때 나는 다른 사람이 된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