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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테리 Mar 27. 2023

지금은 그 날이 그 날이지만...

<나도 한때는 뭔 데이를 챙기던 남자>

‘발렌타인 데이’에 관한 아주 오래된 기억이 있다. 


중학교 3학년 때 난 한 소녀를 짝사랑했다.

그저 바라볼 뿐, 좀처럼 가까이 다가설 기회가 없었던 나로서는 그날이 반가웠고

감사했다. 


이름도 뭔가 로맨틱한 느낌의 발렌타인... 

뭔가 고백을 대행해주는 듯한 

숭고한 인류애까지 느껴졌다. 


초콜릿의 달콤함이 그녀의 혀끝을 지나 

심장에 안착하는 횟수가 적립될수록 조금씩 가까워져 

그녀의 생일도 알아낼 수 있었다. 


중학교 3학년 같은 반, 짝꿍이 된 그 후로 

고등학교 3학년대 까지 4년 동안, 우리는 1년에 4번을 만났다. 


2/14일, 3/14일, 11/29일, 12/7일. 

화이트데이, 발렌타인 데이, 그녀의 생일, 내 생일. 


만나는 시간은 많지 않았지만 만날 수 있는 날이 명확해서 좋았다.

더 예쁜 초콜릿 바구니를 찾으러 팬시샵을 뒤지고 

어떤 문장이 그녀를 더 기쁘게 할까 고민하며 편지를 쓰는 시간이 좋았다. 

그리고, 마음을 전하는 법에 대해 알지 못하던 풋내기 시절에 

마음을 전해도 된다고 공식적으로 인증받은 그런 날이 있어 좋았다.     


확실히, 세상은 덜 알 때가 더 행복한 것 같다. 

발렌타인데이, 화이트데이, 빼빼로데이 뭐 이런 것들이 

자본주의가 만들어낸 상술의 기획템이라는 것을 알게 된 후로는 

가슴이 뛰질 않는다. 

묘하게, 이런 시니컬함의 배경에는 연인의 부재라는 시점이 겹치기는 하지만, 

확실히 기분 탓만은 아닐 것이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초콜릿 회사, 

사탕 회사 ceo를 배불려 주는 그런 날이 아니라,

지쳐 있는 누군가가 위로를 받고, 

힘이 들어 죽을 것 같은 누군가가 다시 힘을 내고, 

쓰러져 있는 누군가가 다시 일어설 수 있도록 

그들을 임파워 할 수 있는 날이다.


존재에 대해 일깨워 주는 ‘Being Day’가 있다면 어떨까? 


“당신은 나에게 어떤 존재입니다.”


이렇게 사람들에게 연결콜 할 수 있는 날이 있다면 어떨까?  

혹은 일명 ‘컨시드 데이’ 나와 연결되어 있는 누군가에게 그 사람의 특화된 것에 대해 인정을 해주는 날이다. 


“항상 이른 아침에 묵상을 하고 하나님께 기도드리는 너의 신실함을 인정해!” 라거나 


“너도 많이 피곤할텐데 항상 나와 아이들을 위해 헌신해줘서 고맙고 그런 너의 사랑을 인정해!” 


뭐 이런 식으로 대화하는 날이 정해져 있다면 

인구 감소를 걱정하고 있는 현시점의 인류에 어느 정도는 기여할 수 있지 않을까? 


또 어떤 날이 있다면 세상을 좀 더 이롭게 하고 좀 더 재미있게 만들 수 있을까?     

뭔가 기발한 날이 있을 수 있을 것 같은데... 

나른한 오후의 시간대라 떠오르지 않는 것일까?

나른한 오후의 나이대라 떠오르지 않는 것일까?... 


모르겠다. 졸립다... 

한숨 자고 나면 그때의 발렌타인데이로 돌아갈 수 있는 그런 날이 있다면 참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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