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좋은 이야기가 되기 위해

<러덜리스>가 흔들리는 방식

by 정재광

*영화의 주요 내용을 포함합니다.



가뭇없이 길을 잃은 때가 있었다. 전공까지 바꿔가며 글쓰기에 매달린 지 몇 해가 지나도록 성과가 없었다. 그보다 더 답답했던 건 내 관점이 불분명하다는 점이었다. 닥치는 대로 책을 읽고 영화를 보기도 했지만, 좋은 건 좋았고 별로인 건 별로였다. 기준을 대지 못하니 나도 나를 믿을 수가 없었다. 수업과 세미나에서 자주 이야기에 대해 토론했지만 나는 점점 할 말이 없어져 갔다.


영화 수입배급사에서 일하던 친구가 있었다. 학벌도 좋고 똑똑한 친구였는데 왜 거기서 일했었는지 모르겠다. 만나면 상사 욕, 회사 욕, 영화판 욕으로 이어지는 레퍼토리가 고정이었다. 자기가 고른 영화는 늘 수입 작품 후보에서 떨어진다고 했다. ‘이거 진짜 좋은데, 진짜 좋은 이야긴데’ 하면서 분해 했었다. 친구가 말하는 좋은 이야기가 뭘지, 궁금했지만 물어보지는 않았다. 그러다 녀석이 밀어붙인 영화가 드디어 수입되었다. 나는 시사회장으로 오라는 명령을 받았다.


다운로드.jpeg 러덜리스 (2014)


테러 사건으로 인해 아들을 잃은 아버지(샘)가 극심한 낙담으로 인생의 바닥을 친다. 그러다 아들이 남긴 음악을 발견하고는 삶의 의욕을 되찾는다. 그 과정에서 좋은 친구들을 만난다. 우리가 익히 만나 온 이야기 같았다. 이것은 좋은 이야기일까? 심지어 영화 스스로 그걸 자신하는 것 같지 않았다. 다만 이 영화는 그걸 찾기 위해서 반대의 사정으로 들어갔다.


그건 테러의 가해자와 피해자를 뒤집어 보는 일이었다.


거기서 발생하는 윤리적 질문에 답하자면 영화는 쉽게 단순해질지도 모른다. 그걸 잠시 접어두고 인물 한 사람 한 사람을 중심으로 영화를 톺아보면 이렇다. 남겨진 음악의 가사에서 유추할 수 있는 아들의 불안정한 심리 상태, 사건으로 인해 이혼한 그의 부모 두 사람의 입장, 불우한 삶을 보내다 우연히 인생을 걸고 싶은 음악을 만난 뮤지션, 그리고 죽은 아들로 인해 계속해서 상처 받고 있는 그의 여자친구. 그들이 각자 자신의 상황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했는지, 또 서로에게 어떤 태도를 가져야 했는지를 생각하면, 영화의 질문은 그렇게 간단하지 않다.


영화가 정말 하고 싶었던 말은 이런 질문들 밖에 있는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예컨대 다소 무거운 질문들을 던지는데도 불구하고 영화 전반의 정서가 유머라는 점 말이다. 샘은 누구보다 절망적인 상황에서도 거의 유머를 잃지 않는데, 그게 가능한 건 그가 삶 자체와 거리를 두고 있기 때문으로 보였다. -물론 이것은 일종의 생존 방식이기도 했을 것이다.- 동시에 이것은 이 영화가 이야기 안팎의 많은 질문들에 거리를 두고 있는 것 같은 태도와도 맥이 닿는다. 알다시피, 대상에 너무 가까이 있을 때도 너무 멀리 있을 때도, 우리는 그것에 대해 말하기를 조심해야 한다.


그런 면에서 영화의 시선은 악기점 주인인 델과 가장 가까워 보인다. 샘은 자기가 누구인지 알고 있었다는 델의 말에 “그럼 사정을 알고 있겠군.” 하고 말한다. 그러자 델이 대답한다.


난 사정은 모르지. 뉴스로만 들었을 뿐이니까.


rudderless-billy-crudup-anton-yelchin.jpg 러덜리스 (2014)


다시, 좋은 이야기란 무엇일까. 진실을 담고 있는 이야기라고 하면 적어도 틀린 말은 아닐 것이다. 진실은 어디 있을까? 여전히 잘은 모르겠지만, 그게 한 가지로 정해져 있거나 하나의 입장에서만 존재하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조금 더 좋은 이야기가 되기 위해, 답이나 집처럼 단단한 것을 정해놓지 않고, 샘이 살고 있는 요트처럼 이리저리 부유하도록 그대로 두어도 좋지 않을까. 설령 그것이 방향을 잃고 헤매는 ‘러덜리스(rudderless)’일지라도 말이다.


박봉과 과로에 시달려 가며 친구가 그 회사에서 일했던 이유를, 말한 적은 없지만 사실 우리 둘 다 잘 알고 있었다. 녀석은 영화를 너무나 좋아했다. 언제나 좋은 이야기를 찾아 헤맸다. 당장 그만두고 싶다고 말하면서도 자기가 마음을 준 영화를 사람들에게 소개하고 싶어 했다. 물론 그런 것도 옛날 일이 되었고, 이제는 만나는 일도 연락하는 일도 드물어졌다. 친구의 영화는 어디쯤에서 흔들리고 있을까. 잘은 모르지만 좋은 이야기가 되어가고 있을 거라고 이만큼의 거리를 두고 믿어보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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