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 이야기>와 <아무르>를 빌려, 너에게
*두 영화의 결말을 포함합니다.
J에게.
내게 오래된 질문이 있어. 두 사람이 만나서 끝까지 함께 산다는 게 가능할까? 그것도 행복하게? 주위에 좋은 답들도 많이 있지만, 왜인지 나는 행복한 마지막이 잘 그려지지 않았어. 나처럼 이기적인 애가 결혼을 한다면 어디까지 갈 수 있을까. 내 결혼의 마지막은 어떤 모습일까. 그런 것에 확신이 없었던 것 같아. 고맙게도 지금은 나와 함께 미래를 그려주는 네가 있으니까 이제는 용기를 내서 우리 결혼의 마지막 장면도 같이 그려보고 싶단 생각이 들어.
여기, 관계의 마지막을 맞이한 두 쌍의 부부가 있어. <결혼 이야기>의 찰리와 니콜은 아직 젊은 부부야. 둘은 헨리라는 아들과 함께 뉴욕에서 살고 있어. 두 사람은 뉴욕의 한 극단에서 감독과 배우로 함께 일하면서 꿈을 키워왔지. 찰리는 재능 있고 매력적인 사람이지만, 자기 세계에 갇혀서 주변을 잘 못 봐. 니콜은 촉망받던 배우 커리어를 포기하고 찰리와 헨리를 위해 헌신하고 있지만, 종종 약물과 술에 의존해. 이혼상담을 진행하던 중에 니콜이 드라마 촬영을 위해 고향인 LA로 떠나는데, 결국 그녀가 다시 뉴욕으로 돌아오는 일은 없게 돼.
<아무르>의 안느와 조르주는 나이 든 부부야. 두 사람 모두 음악가 출신이지. 지금은 은퇴했지만 여전히 연주회를 함께 다니기도 하고 연주자로 활동하는 제자가 안부를 물으러 찾아오기도 해. 외출을 할 때도 책을 읽을 때도 둘은 함께야. 서로를 바라보는 애틋한 눈동자만 보아도 두 사람의 결혼 생활이 어땠을지 짐작이 가. 그런데 이야기는 사실 안느가 이미 숨을 거둔 상태에서 시작해. 우리는 안느의 알츠하이머병 증세가 처음 나타나던 때로 돌아가서 두 사람이 마지막을 맞는 지점까지 함께 가게 돼.
결말이 지어진 두 결혼 생활을 따라간다는 게 조금 이상하지 않아? 심지어 두 영화는 이들의 행복했던 한 때는 거의 비춰주지 않고, 부부 관계의 막바지만을 가까이서 관찰하듯이 보여주고 있어.
니콜과 찰리는 처음엔 변호사 없이 원만하게 정리하기로 합의했었어. 하지만 각자의 거처가 LA와 뉴욕으로 나뉘게 되고, 헨리의 양육권이 걸리고, 결국 변호사가 개입하고부터 걷잡을 수 없게 돼. 니콜의 변호사에게 밀려 헨리를 다시 뉴욕으로 데려올 수 없게 되자 찰리는 자기 외도에 반성할 줄도 모르는 사람이 되지. 대화로 풀어보자며 마주 앉은 자리에서도 둘은 서로를 증오하는 말들을 쏟아내. 하지만 그런 순간에도 두 사람의 눈동자는 다른 말을 하고 있었다는 걸 너도 눈치챘을 거야. 그건 너무 슬픈 눈이었으니까.
조르주는 안느의 상태가 점점 나빠지는데도 그녀를 극진하게 보살펴. 가끔 도움을 주는 이웃들이 그의 정성에 경의를 표할 정도야. 하지만 자신 역시 고령의 몸인 조르주도 지쳐갈 수밖에 없었을 거야. 안느를 병원에 보내지 않은 건 그녀와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서였지만, 혼자 힘으로 모든 상황을 버티고 있는 조르주가 나는 내내 위태로워 보였어. 무엇보다 힘든 건 점점 스스로를 잃어가는 안느를 바로 옆에서 지켜봐야 한다는 것이었겠지. 물 마시기를 거부하는 안느에게 자기도 모르게 손찌검을 하고 나서, 그가 자신을 용서할 수 있었을까.
미안해.
나도 미안해.
이런 대화가 두 영화 모두에 나와. 연인끼리 제때 사과하는 건 중요하다고 너도 강조했었지? 가까운 만큼 상처 줄 수밖에 없는 사이에서 이 말을 주고받는 건 관계를 중간 점검하는 절차가 아닐까 싶기도 해. 어느 때부터 말을 잃은 안느는 조르주의 사과에도 응답을 할 수 없게 되고, 찰리와 니콜은 소송의 언어로만 대화를 하게 된다는 게, 둘 사이에 오가는 '미안해'가 더이상 없다는 게 이미 무거운 선고처럼 느껴지기도 했어.
두 부부의 결말이 서로 바뀌었다면 어땠을까? 니콜과 찰리가 <아무르>의 부부처럼 한때의 갈등을 이겨내고 서로 사랑하는 마음을 확인해가면서 갈 수 있는 만큼 가봤다면 어땠을까? 그랬다면 오히려 한 사람의 손에 한 사람이 죽게 되는 비극까지 생겼을까? 반대의 경우는 어떨까? 안느와 조르주가 진작에 헤어졌다면, 서로의 가장 추한 면을 보이지 않고 아름다운 기억을 간직한 채 각자의 길을 축복해줬다면 어땠을까? 그랬다면 서로에 대한 해소되지 않은 사랑이 남아 오랫동안 아파했을까?
어느 결혼이 더 행복한 걸까? 어느 결말이 더 끔찍한 걸까? 아니, 이런 질문이 잘못된 걸까?
언젠가 네가 너와 경쟁해줘서 고맙다고 말했었지. 평생 옆에서 경쟁해달라고. 나도 동감이야. 배려하고 양보하는 마음 때문에 서로 참아주기만 하는 사이는 되지 않았으면 좋겠어. (니콜처럼) 가정을 위해 헌신하느라 자기 삶이 무너진 걸 뒤늦게 발견하지 않길 바라. 그러다가 (찰리처럼) 마음에 없는 모진 말을 쏟아내고 그런 자신에게 놀라 주저앉게 될지도 모르니까. 혹시 네가 (안느처럼) 몸의 어느 부위가 고장 나 마음대로 가누지 못하게 되었을 때는, 내가 (조르주처럼) 힘닿는 대로 널 도와줄 수 있도록 해줘. 그때만은 고집부리는 걸 포기해줘. 네가 혼자 하고 싶을 거라는 걸 알아. 내게 폐 끼치고 싶지 않을 걸 알아. 하지만 상대에게 온몸을 내맡겨야 할 때도 있다는 걸 꼭 기억해줘.
그보다는 우리도 서로의 장점을 담은 편지를 써주자. 이혼상담을 안 하더라도 말이야. 비둘기를 잡았다가 놓아주었다는 사소한 일까지 적어준다면 좋겠어.
조르주: 내 이미지가 어떤데?
안느: 가끔 고약하긴 한데, 정말 착해.
조르주: 한 잔 더 줄까?
이제 두 부부와 인사할 차례야. 처음의 질문에 대답을 찾기가 어려워서 이렇게 빙빙 돌아왔어. 두 연인의 모습을 아무리 잘 들여다봐도 거기서 우리의 마지막을 찾기 힘들 거라는 건 알아. 그건 우리 둘이서 만들어가야 할 장면이겠지. 그래도 두 영화의 마지막 장면은 안고 가고 싶어. 니콜이 헨리를 맡기고 돌아서다가 찰리의 신발끈을 매주는 장면. 그리고 상상 속의 건강한 안느가 조르주의 외투를 챙겨주는 장면. 그런 장면이 우리의 마지막이면 좋겠어.
거기까지 손 꼭 잡고, 함께 가면 좋겠어.
날 너무 꼭 안는 사람
깊은 상처를 주는 사람
내 자리를 뺏고
단잠을 방해하는 사람
그리고 살아간다는 걸 알아차리게 하지
살아간다는 걸
날 너무 필요로 하는 사람
날 너무 잘 아는 사람
충격으로 날 마비시키고
지옥을 경험하게 하는 삶
그리고 살아가도록 날 도와주지
내가 살아가게 하지
내가 살아가게 하지
날 헷갈리게 해
찬사로 날 가지고 놀고
날 이용하지
내 삶을 변화시켜
하지만 혼자는 혼자일 뿐
살아가는 게 아니야
넘치는 사랑을 주는 사람
관심을 요구하는 사람
내가 이겨나가게 해주는 사람
난 늘 그 자리에 있을 거야
너만큼 겁은 나지만 같이 살아가야지
살아가자
살아가자
살아가자
- "Being Alive" from 뮤지컬 <Compan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