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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E KOO RN Oct 03. 2020

신입이 '죄'인가요?

한국과 미국의 신규 트레이닝

  얼마 전 동생과 통화를 하며 정말 화가 났다. 동생은 최근 모 국립 대학 병원 원무팀으로 입사했다. 동생은 이전 경력 없이 신입으로 입사한 경우이고, 수 년 혹은 수 십년의 경력이 있는 다른 동료들과 근무 중이다. 처음 하는 일이 당연히 오랜 경력이 있는 그들과 같을 수는 없다. 간혹 실수를 하기도 하고, 헤매기 마련이다. 그러기에 수습 교육 기간이라는 것도 존재하고, 모두가 나름의 인내심을 가지고 지켜보는 시간이 필요하다. 얘기를 들어보니 제대로 된 매뉴얼 도 없는 환경에서 일 하는데 모르는 것을 메모하면 메모한다고 혼나고 물어보면 물어본다고 혼나고 무엇을 해도 혼이 나는 상황의 연속이었다.


 그들의 근무 스케쥴도 정말 이해할 수 없었다. 간호사 처럼 교대 근무로 일하는데, 이브닝 다음 날 데이 출근을 하고 나이트 오프 후 바로 데이 근무 출근을 하는 이상한 스케쥴이었다. 내가 일했던 병원은 아예 프로그램 상 이브닝 다음 데이 근무를 넣지 못하게 되어있어서 그렇게 말도 안되는 스케쥴을 받아본 적은 없었다. 


 동생과 이야기 하며 나의 신규 시절이 생각났다. 흔히 선임들이 이야기 하는 "나때는 말이야..." 의 레파토리는 여전히 진행중이다. 이 레파토리의 끝은 난 더 힘들게도 당했으니 이 정도는 약과야 로 끝난다. 그들에게 진심으로 묻고 싶다. 그렇게 힘들게 태움 당했을 때 기억이 좋았는지, 그 좋지 못했던 기억을 왜 새로운 후임, 후배들한테 전달하고 있는 지 말이다. 또 어떤 이들은 혼나면서 배워야 기억이 오래 간다며 본인들의 행동을 정당화 하기도 한다. 미국과 한국에서 신규 트레이닝을 모두 경험한 나로서는 그 주장에 동의하기 힘들다. 




 미국에서 처음 일을 시작하며 난 3개월의 트레이닝 기간을 가졌다. 나를 지도했던 프리셉터는 중환자실 경력만 20년이 넘는 베테랑 간호사였다. 때로는 일을 마무리 하느라 데이 근무에 밤 9시가 넘어 퇴근하기도 했지만, 그 분을 통해 환자를 대하는 태도에 있어 많은 점을 본받을 수 있었다. 난 미국에서 간호 교육을 받지 않았기 때문에, 어떤 용어나 술기들은 굉장히 생소하기도 했다. 사소한 것들 조차도 질문하면 언제든 대답해 주셨고, 함께 관련 매뉴얼이나 정보를 찾아보기도 했다. 


2019 년 5월 플로리다 올란도, 중환자 간호 컨퍼런스 / 당시 일한지 한 달 좀 넘은 시기에 프리셉터가 제안하여 함께 갈 수 있었다.



  미국에서는 질문에 굉장히 관대한 편이다. 지금까지 일하며, 모르는 것을 질문하는 이에게 면박이나 싫은 소리를 하는 모습을 단 한 번도 본적이 없다. 물론 동료나 직장 환경에 따라 조금씩 다를 수 있겠지만, 전반적으로 신입 직원에게 오히려 질문을 권장하고 헷갈리거나 어려운 부분이 없는지 재차 확인한다. 일할 때 뿐만 아니라, 모임 혹은 학회에서도 마찬가지이다. 지금까지 크고 작은 학회 및 교육 행사에 참여했는데, 강연자의 강연이 끝나면 모두가 기다렸다는 듯이 질문을 쏟아낸다. 어떤 강연을 들어도 질의응답을 하는 시간이 꽤 길게 배정되는 편이고, 이해되지 않은 부분들을 확인하거나 새로운 제안을 하기도 한다. 수동적으로 받아들이는 한국식 문화에 익숙했던 나에게는 크게 느껴지는 차이점이었다.


 일을 시작하고 1년이 지났을 즈음 부터는 나도 간혹 신규 간호사나 간호학생을 지도하는 프리셉터 역할을 하게 되었다. 내가 예상치도 못한 질문을 받게 되면 오리엔티와 함께 찾아보거나 따로 알아보고 대답해 주는 과정에서 새롭게 배우는 점도 많았다. 간혹 어떤 오리엔티는 배우는 속도가 정말 느리거나 알려주었던 것을 수 십번 다시 보여주고 설명해 줘야 하는 경우도 있었는데, 그럴 때는 그저 다시 설명해주거나 필요한 것을 메모하게 도와주었을 뿐 그 이상의 이야기를 하지 않았다. 나 역시도 그렇게 배웠기에, 굳이 더 이상의 이야기를 덧 붙일 필요가 없었다. 


 본인이 메모하는 방식, 필요한 것을 정리하거나 업무를 처리 하는 방식은 옆에서 조언해 줄 수는 있지만 강요할 필요는 없다. 미국인들 대부분이 그런 사소한 부분까지 간섭하는 것을 굉장히 불쾌하게 느끼고 개인의 자유를 침해하는 행위로 생각한다. 출신 학교를 운운하거나 개인의 연애사 혹은 가족사항을 나눌 이유도 없다. 학교에서 공부를 어떻게 했는지가 지금 당장 업무에 있어 얼마만큼 상관관계가 있겠는가? 또 매뉴얼 혹은 병원 규정에 따라 일을 진행한다면 무엇을 먼저하고 나중에 하는 지는 크게 문제가 되지 않는다. 


 미국의 어떤 직장 환경은 아마도 더 고되고 신입에게 혹독할 수도 있다. 미국의 신규 간호사들도 우리와 마찬가지로 여러 이유로 번아웃을 경험한다. 대부분의 이유는 새로운 환경을 익히고 환자와 보호자를 대하는 과정에서 온다. 나의 동료가 나를 힘들게 하는 일은 한국과 비교했을 때, 상대적으로 훨씬 덜 한 것 같다. 

https://onlinelibrary.wiley.com/doi/abs/10.1111/jan.13215



 한국에서도 많은 직장의 업무 환경이 변화하고 있다는 것을 여러 매체 혹은 지인을 통해 전해 듣고 있다. 하지만 여전히 어떤 곳에서는 오래된 관습을 버리지 못하고 본인들이 그토록 힘들어 했던 문화를 고스란히 후배에게 전해주고 있다. 특히나 아픈 이들을 치료하는 병원에서 후배를 괴롭히고 본인 스스로도 괴로워하는 문화는 이제 사라져야 하지 않을 까? 눈만 뜨면 전 세게 어디서든 크고 작은 뉴스를 접할 수 있는 시대에 살고 있다. 더 이상 "나 때는 말이야.." 가 통하지 않는 세상임을 모두가 느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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