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지만 어느새 내 손에는 스마트폰이 쥐어져 있다. 인스타를 잠시 켜서 어제 올린 피드의 반응을 살피고, 이를 닦으면서 네이버 뉴스에 연예판 기사를 기웃거리다 샤워부스까지 휴대폰을 갖고 들어가는 한심한 모습이란.
이런 나를, 오늘의 유튜브 알고리즘은 인정 중독과 관련된 영상으로까지 인도해 주었다.
영상을 본 뒤 내 나름의 자가 진단을 해보았다.
우선 나는 인스타그램과 페이스북을 한다.(자동 연결이긴 하지만) 피드를 개시하면 하루 이틀 정도는 내 피드에 얼마나 많은 댓글과 좋아요가 달렸는지 확인한다.
그리고 브런치에 내 글을 격주로 올린다. 글이 발행되면 하루 이틀 정도는 내 글에 얼마나 많은 좋아요가 달렸는지 확인한다.
난 인정에 중독된 걸까.
'적당한 인정 욕구는 우리에게 에너지를 주고 나와 사회를 건강하게 만들어준다'는 전문가의 말을 곱씹어본다. 인정 욕구가 무조건 나쁜 건 아니라는 말이구나. 안심이 된다.
대신 누군가 나의 게시물을 많은 사람이 좋아하면 기분이 좋아지지만 그다음에 관심을 못 받으면 기분이 쭉 떨어진다? 그렇다면 인정 중독 상태인 셈. 이런 현상이 지속되면 타인의 시선에 따라 자신의 행동을 결정할 수 있다고 경고했다. 타인의 인정에 목마른 자는 결국 불행한 삶을 살게 된다는 무시무시한 말도 뒤따라왔다.
나의 브런치 연재 첫 글이 어떻게 탄생되었는지 기억해 냈다. 동시를 쓰고 싶어서 제대로 알지도 못하고 무작정 들어간 한겨레 동시 수업. 매주 동시집 한 권을 읽고 리뷰를 쓰는 과제를 했는데 최선을 다해 쓴 나의 글이 수업 중 읽히지 않으면 속이 상했다. 앞에선 아무렇지 않은 척했지만 내 글이 읽히기를 위해 더욱 열심히 썼다. 나보다 더 잘 쓴 글을 읽으면 배가 아팠고 그들보다 더 잘 쓰기 위해 더 집중했다. 하지만 상황은 더 나빠져 내 마음에 쏙 들게 쓴 동시마저도 수강생들 앞에서 처참히 깨졌다. 수업은 다음 주면 끝이었다.
'너 도대체 무슨 생각으로 글을 쓰고 있었던 거야?'
사태를 파악했다. 누군가의 인정이 있어야 내 글이 가치가 있는 걸까. 분량의 글을 다 쓰면 찾아오는 성취감은 타인의 인정이 없으니 금방 사라져 버렸다. 밀려오는 좌절감과 허무함을 이겨내야 했다. 쓰고 싶고, 써야 하니까. 그럼 무얼 어떻게 써야 할까. 진짜 내가 쓰고 싶은 글은 도대체 뭘까.
동시를 좋아하면서 깨닫게 된 것은 생각보다 동시를 제대로 알고 있는 선생님이 없다는 점이었다.나 역시그랬으니까. 새로 발령받은학교에서 나를 통해 단 한 명이라도 동시를 좋아하게 된다면 그 선생님과 함께 동시 이야기를 하며 행복한 일 년을 보낼 수 있을 것 같았다. 누군지 모를 단 한 명의 선생님을 모니터 앞에 세워놓고 글을 썼다.이런 마음이 생겨나자글은 단숨에 써졌다. 편지와 같은 글, 아니면 호소문이라고 해도 좋을 그런 글이 완성되었다. 마감 시간을 넘겨 과제를 제출했지만 그냥 기분이 좋았다. 이 글이 수업에 읽히든 읽히지 않든 중요하지 않았다. 난 이미 단 한 명을 향해 내 진심을 전했으니까.
아이러니하게 이 글은 선생님으로부터 극찬을 받았다. 더 놀라운 점은 내가 생각한 지점을 글 속에서 정확하게 파악하셨다는 것이었다. 그래서 용기를 냈다. 브런치에 이런 방식의 글을 연재해도 되겠냐고.
이후 나의 글쓰기는 좀 다른 방향성을 가지게 되었다. 꾸며 쓰진 않았는지, 잘 모르면서 아는 척하진 않았는지 스스로 점검한다. 그리고 가장 중요한 것 하나. 내 마음이 움직이지 않으면, 진심을 담을 수 없으면 글을 쓰지 않는다.
나는 인정 중독일까, 인정 욕구가 강한 사람일까.
나는 SNS를 할 때 하트를 받기 위해 혹은 팔로우 수를 늘리기 위해 일부러 방문하거나 좋아요를 누르지 않는다. 대신 나의 피드를 방문한 사람의 피드를 최대한 정성껏 읽으려 노력한다. 꾸준히 자신의 역량을 키우는데 노력하는 사람에겐 존경을 담아 하트를 누르고 댓글을 남긴다.
브런치도 마찬가지다. 나의 글이 더 알려지기를 바라는 마음에 다른 사람의 글을 읽지도 않고 무작정 좋아요를 누르거나 구독하지 않는다. 대신 나와 소통하는 누군가 글을 쓰면 진심으로 읽고 답하려 한다. 그들의 생각을 존중할 수 있다는 건 그들 또한 나와 같은 심정으로 글을 쓰고 있다는 믿음 때문이다.
이전글을 올리고 평소와 다름없이 이틀 정도 조회수를 확인했다. 좀 더 개인적인 이야기를 쓰기도 했고, 이런 형식의 글은 또 처음이라 내심 좀 더 많은 사람들이 읽어주기를 바랐나 보다. 이 죽일 놈의 인정 욕구. 하지만 반응은 시원찮았고, 남편의 오만 원 응원도 별로 소용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뭐 당연한 결과 아닌가. 잠시 씁쓸하면 그만이었다. 적어도 내 글에 진심을 담았으니까 다시 글을 읽어도 나 스스로에게 부끄럽지 않았다. 그 진심을 알아주는 단 한 명이 있으면 된다. 그 한 명은 나이기도 하다.
이 연재를 계속할까 말까 망설이던 내가 모든 걸 내려놓고 두 번째 글을 쓰기로 결심한 후, 갑자기 두 배로 늘어난 조회수에 마음이 들뜬다. 그렇게 나는 흔들리고 또 흔들린다. 어쩌겠는가. 나를 믿고 진심을 다해 쓰는 방법밖에는 다른 방법이 없다는 것을 안다. 그렇게 조금씩 조금씩 앞으로 흔들리며 쓰다 보면 또 다른 내가 앞에서 기다리고 있을지 모르니까.
나를 조금 더 나은 사람으로 만들어 줄 것이라는 믿음과 그런 나를 바라봐 줄 단 한 사람을 향한 조금의 설렘과 기대를 갖고 오늘도 난 글을 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