쫄보의 마음을 버리는 것부터 소통의 시작
포르투갈어를 제대로 공부해 보겠다는 나의 야심 찬 계획은 봉디아로 시작해 봉디아로 끝났다. 출국 날짜가 점점 가까워질수록 포르투갈어에 대한 열정이 점차 희미해지는 건 당연한 수순. 나이가 드니 뭘 외우고 기억한다는 것이 욕심만으로는 되지 않는다는 걸. 늘 쓰던 한국어도 종종 까먹어서 "아, 그거 있잖아. 그거 그거." 이런 말을 입에 달고 사는 나다.
"여보, 나 포르투갈어 공부 못했는데..."
비행기를 뜨길 기다리며 내 계획의 실행 여부 따위는 전혀 궁금해하지 않는 남편을 향해 항변 아닌 항변을 한다. 말로 수십 가지의 계획을 늘어놓는 나, 실천에는 잼병인 나를 너무 잘 아는 남편으로부터 네가 포르투갈어로 물어봐도 알아듣지 못하잖아.라는 아주 현실적 대답이 돌아온다. 우문현답. 맞아, 내가 아무리 포르투갈어를 써도 소용이 없는 거였네. 라며 합리화를 하고 나자 마음이 한결 가벼워졌다.
그리고 이순신 장군이 남긴 "신에게는 아직 13척의 배가 남아있습니다"라는 말처럼, 나에게는 그간 짬짬이 공부한 영어 실력이 남아있으니까.
도착한 리스본 공항, 포르투갈어와 영어가 혼재되어 있는 표지판을 보며 지하철을 타는 곳까지 어찌어찌 도착했다. "지하철 표는 어떻게 끊는 거야?"라는 남편의 질문에 턱, 하고 말문이 막혔다. 분명히 미리 봤었는데. 누군가가 자세히 설명한 글이 있었는데.
내가 매표기계 앞에서 허둥지둥하며 휴대폰을 열고는 '리스본 지하ㅊ"이라고 쓰는 동안 남편은 지하철 직원을 향해 걸어갔다. 사진 속 매표기계와 현실 속 매표기계 사이에서 작은 한글로 빽빽하게 적힌 블로그의 글을 정독하는 나를 남편이 불렀다. 몇 번의 대화가 오고 간 뒤 현금을 건네고 받은 지하철 표 3장. 이렇게 표 끊기가 쉬울 줄이야.
나는 왜 직접 그들에게 다가가 물어보지 못했을까. 남편과 내가 문제를 해결하는 접근 방식의 차이도 있지만, 더 큰 이유는 용기가 없어서라고 솔직하게 고백한다. 궁금한 게 있으면 바로 묻고, 누구에게든 다가가 편안하게 말을 건네는 남편이 있다는 건 큰 복이다.
하지만 여행지에서 당당하게 자신의 의사를 표현하는 남편을 둔 나는 점점 소심해진다. 남편의 빠른 결정과 뛰어난 실행력은 결정 앞에서 주저하고 고민하는 시간이 긴 나에게 독이 될 때도 있다. 혹시나 내가 한 선택이 잘못될까 두려운 나는 남편의 그늘에서 편하게. 편하게. 그렇게 하면 욕먹을 일도 실패할 확률도 낮으니까 난 늘 그런 안전한 여행을 했다.
쫄보의 마음. 해외여행을 가게 되면 꽤 종종, 자주 나타난다. 숙소에 비치된 인터폰을 들기 직전, 식당에서 음식을 주문해야 하는 순간, 궁금한 것을 물어보고 싶은데 머릿속으로 단어들만 뱅글뱅글 돌아다니며 말을 마치고 나서도 찜찜한 기분. 내가 바짝 얼어서 딱딱한 말투로 대하는 반면 남편은 늘 젠틀한 미소와 말투로-나한테 좀 그러지- 외국인과 대화를 한다. 그렇다고 남편이 영어를 잘한다고 생각마시라. 그는 대학교 때 친 토익시험이 영어 공부의 끝인 사람이다.
하지만 이번 여행만큼은 이전의 소심한 나를 벗어나고 싶었다.
"새는 알에서 나오려고 투쟁한다. 알은 세계다. 태어나려고 하는 자는 한 세계를 깨뜨리지 않으면 안 된다."라는 데미안에 나오는 싱클레어의 심정으로 내가 얼마나 비장한 마음을 먹었는지. 비록 포르투갈어는 익히지 못했지만. 새로운 여행지에서 새로운 나를 찾는 것이 여행의 목적 중 하나 아니겠는가.
여행에서 그동안 구축해 온 소심한 나의 모습을 바꾸기란 쉽지 않지만, 이번 여행에서 만큼은 아무런 변화 없이 돌아가기는 싫었다. 그래서 쫄보의 마음을 버려보기로 했다. 안전하고 따뜻한 품에서 벗어나 거친 세상을 향해 부딪혀 보는 건 나이를 먹는 것과는 아무 상관이 없으니까. 그리고 아줌마가 되어보니 부끄러움은 한순간이고 남들이 나에게 큰 관심이 없다는 것을 알아버렸기에. 어찌 보면 지금이 알에서 깨어날 적기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불현듯 들었다.
그렇게 쫄보의 마음을 버리고 나니 조금씩 나의 소심함이 깨어지는 순간들을 맞이할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