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 시차에 적응한다는 것

한국의 시간과 포르투갈의 시간 그 어디쯤

by 김볕

우리나라와 포르투갈과의 시차는 9시간. (우리가 간 때는 1월이라 서머타임이 적용되지 않았다.) 한국이 토요일 아침 8시라면 리스본은 금요일 저녁 11시 인 셈이다. 숫자에 약한 나는 늘 손가락으로 세어가며 시차를 계산해야 하기에, 쉽게 낮과 밤이 바뀐다고 생각하기로 했다. 우리가 리스본에 도착한 시간이 저녁 7시쯤이니 그렇담 한국에서는 한참 자고 있을 새벽이었다.

이렇게 시차 차이가 많이 나는 건 처음이었기에 어디 주워들은 말 "아무리 잠이 와도 꾹 참고 그 나라 시간에 맞춰서 돌아다니다가 제시간에 자야 한다"는 걸 잘 기억해 뒀다 이번에 실천하기로 했다. 웃지 못할 해프닝으로 숙소에 늦게 들어간지라 예상보다 저녁 시간을 훌쩍 넘었지만, 이들이 저녁을 먹는다면 우리도 저녁을 먹어야 시차도 더 빨리 적응될 것만 같았다. (자고 있는 사람도 깨워서라도 먹이는 기내식과 틈틈이 제공하는 간식을 꾸역꾸역 다 먹고도 말이다.)


여행 처음 선택한 식당은 지하철 역에서 숙소로 걸어오면서 눈여겨봐 둔 홍콩식 국수 전문점. 배도 고프지 않으면서도 매우 신중하게 각자 요리를 하나씩 골랐고, 나는 거기에 동파육까지 시켰다. 아직 가보지도 못한 홍콩의 음식을 미리 보기하고 싶었던 것인지도, 아님 상해에서 먹은 동파육을 다시 보기 하고 싶었는지도 모르겠다. 그렇지만 아무리 생각해 봐도 시차 적응을 하지 못해 흐트러진 판단력이 가장 큰 이유이지 않을까.


여간해선 실패하기 힘든 볶음밥을 제외하고는 시킨 음식들이 입맛에 맞지 않아 반 이상 남은 음식을 두고 남편에게 물었다.

식당 안에 걸려있던 사진 중 하나. <화양연화>의 한 장면.

맞은편 벽에 걸린 홍콩 영화 포스터 속 양조위를 보면서. 우리 옆에서 우리와 똑같이 음식을 반 이상 남긴 중국인 여자 3명을 의식하면서. 당차게 시킨 돼지고기국수를 먹은 뒤 "음-"이라는 표현으로 입맛에 맞지 않는 음식을 맛있게 먹는 척할 줄 아는 아들 옆에서.


"여기가 도대체 어디야?"


나에겐 이 식당의 풍경이 홍콩과 중국, 한국과 포르투갈이 오묘하게 뒤엉킨 현실적이면서도 판타지적인 공간처럼 느껴졌다. 이 말을 하고 나니 웃음이 나왔다. 내가 웃으니 남편도 웃었다. 알게 모르게 우리 셋 장시간의 비행과 앞선 일들로 예민하게 날이 서 있었구나. 여기 리스본이며, 내일은 제대로 이곳을 느껴보자고. 내일부터 재미있을 거라고. 맛있는 곳 내가 알아볼게. 너 분명 이 식당 맛있다며. 아들에겐 근데 넌 그 국수 맛있다고 왜 거짓말했냐며. 장난 섞인 핀잔도 주고받으며 남은 긴장을 털어냈다.


생각보다 훨씬 비싼 음식값에도 웃으며 계산하고 나올 수 있는 여행의 첫날밤. 마침 금요일이라서 거리마다 많은 사람들로 북적북적했다. 근처에 있는 가까운 광장을 잠시 돌아보는데 비가 내리면서 날씨가 추워졌고, 얇게 입고 나온 탓에 달달 떠는 아들을 보고는 돌아가기를 서두르는 남편 따라 숙소로 들어왔다. 생각보다 침구는 포근했고, 비가 오는 리스본의 몽환적 분위기에 취해 잘 도착했다는 감사함. 이제 푹 자고 일어나서 일출을 볼 수 있을까의 기대를 안고 침대에 누웠다.


하지만 잠은 쉽사리 들지 않았다. 밖은 깜깜하지만 내 몸은 점점 깨어나 움직일 준비를 하고, 정신은 혼미하지만 잠이 들지 않는 상태. 이렇게 낮과 밤이 바뀌던 때가 언제였던가. 대학 시절 친구와 밤새 놀고도 다음 날 아침 수업에 빠진 적 없던 나이지 않았던가. 작년에 영국에서 하루 만에 난 시차적응이 끝났지.라고 말하며 의기양양한 아들은 책을 보다 일찍 잠에 든 것도 같기도 하고. (이날 밤이 정확히 기억나지 않는 것은 내 기억력 감퇴와는 상관없는 시차 때문이라고 생각하고 싶다.)


난 아주 천천히 시차에 적응했다. 새벽 4시부터 시작된 기상시간은 30분씩 늦춰졌다. 신기한 건 자다가도 눈이 번쩍 뜨인달까. 아마 정신보다 몸이 먼저 깨어난 것이겠지. 너 이렇게 누워 있으면 안 돼. 움직이란 말이야. 나의 바이오리듬은 생각보다 정확했고 눈을 떠서 옆을 보면 나보다 훨씬 일찍 깬 남편이 회사 이메일을 열어보며 일을 하는 새벽. 이 여유로운 시간에 난 책을 읽다가, 글을 쓰다가, 여행 계획을 세우다가도 카톡 창을 열어 보았다. 그때마다 한국은 바쁜 한낮의 오후라는 사실만으로도 이상하게도 기분이 좋아졌다. (리스본이 새벽 6시라면 한국은 오후 3시. 손가락을 펴서 계산해 보니 맞다.)


하지만 한국에 사는 사람들이 깊은 잠에 빠져있을 때엔 어김없이 나도 잠이 왔다. 아무리 늦게 자고 싶어도 이곳의 해가 지기 시작하면 몸이 점점 무거워졌다. 심지어 이튿날은 저녁 일정을 모두 포기할 정도로 심각하게 잠이 몰려왔다. 그날은 멋진 날씨 덕에 끝내주는 일몰을 볼 수 있었음에도 우리 셋다 해가 지기도 전에 자버렸으니까.(이후 날씨가 개떡같을 줄 알았다면 허벅지를 찔러서라도 자지 않았을텐데)


결국 내 몸과 포르투갈의 시간은 한국에 돌아가는 때가 되어서야 정확히 맞춰지지 않을까. 난 숫자에 약하니까 대충 계산해보면 그렇단 말이다. 그럼 뭐하나. 결국 돌아가야하는 것을. 한국에 돌아가면 다시 한국의 시간에 맞는 몸이 되기까지 또 시간이 걸리겠지. 늘 그랬듯 여행 뒤 밀려오는 피곤함과 나른함(거기에 한식 집착증까지)을 이겨내다 보면 언젠가는 일상에 최적화된 몸이 되기에, 남편은 늘 다시 돌아오지 않을 여행을 꿈꾸는지도 모르겠다.

keyword
월, 화, 수, 목, 금, 토, 일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