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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휘찬 May 04. 2023

불안의 증폭

지금 나는 어디쯤에 서 있는지 알지 못한다.

일단 이 길이 어디부터 어디까지인지 몰랐다.

그래서 내가 반쯤 왔는지, 아직 한참 남았는지 알 수가 없었다.

혹시나 길 밖을 벗어났는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불안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이 길은

시간의 끝은 있지만 공간상으론 끝은 없다는 걸 깨달았다.

그게 나의 불안을 증폭시킨다.


예전에는

누군가 결승점에 도착하지는 않았는지 걱정했었는데

이젠 누군가 이미 여유롭지 않은지 걱정이다.

어차피 결승점 따위는 없다.


내가 서 있는 이곳이 어디쯤인지 보다는 

지금이 언제인가가 중요하다.

한 발자국만큼의 거리보다는 그 순간이 중요하다.

몇 시간이 지났고,

얼마만큼의 시간이 더 남았는지 알아야만 한다.

남은 시간 동안 얼마나 더 갈 수 있을까.

계산하고 또 계산한다.

하지만

거리에 비해 시간의 계산은 덜 정직하게 느껴진다.

가끔 시간은 재빠르게 달려가버려서 사라지기도 하고

또 때로는 제자리에 서있는 척하기 때문이다.

정직하지 않은 시간을 허겁지겁 쫓아가다 보면

항상 허무함이 발 끝에 걸리고

넘어질 듯 넘어지지 않은 채로 주저앉는다.


시간과 공간이 똑같이 흐르지 않아서

가끔 어지럽고, 현기증이 났다.

분명히 내가 걸어간 만큼 거리는 줄었는데

시간은 몇 배나 더 빠르게 지나가있었다.

그래서 오늘도 멀미가 난다. 

이 울렁거림을 참다 보면

언젠가 시간의 길도 끝이 난다는 걸 안다.

그때 내가 서 있는 곳이 곧 결승점이라는 사실도 잘 알고 있다.

그 사실이 오히려 나를 괴롭힌다.


그렇게 

계산하는 머릿속에서

허무를 밟은 발바닥에서

울렁거리는 가슴에서

자꾸만 불안은 커져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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