깜깜한 밤이 오는 것보다 새로운 아침이 오는 게 더 싫다.
가볍게 떠지는 눈이 싫다.
아니 무거울 수 없어서, 무거워서는 안 돼서
가벼운 척 떠지는 눈이 싫다.
눈꺼풀은 언제나 육체적인 피곤을 이긴다.
마치 눈꺼풀이 도르래 끝에 달린 듯이
마음의 짐이 하나하나 올라갈 때마다
조금씩 조금씩 더 떠지고 밤이 돼도 감을 수 없다. 감기지 않는다.
억지로 한껏 당겨져 있으면서도 전혀 힘겹지 않은 척하는 모양이
어쩐지 지금의 내 모습과 닮아있다.
그러면서도 줄이 끊어지길 바라진 않는다.
줄이 끊어지면 눈은 감을 수 있겠지만
그건 내가 원하는 것이 아니다.
그렇게 간단한 문제가 아니다.
그 짐들이 눈물에 다 녹아서 사라진다면
그래서 더 이상 괜찮은 척할 필요 없이 시린 눈을 감을 수 있다면
지금 눈물을 흘리는 시간도 기꺼이 받아들일 텐데.
아침은 또 한 발자국만큼의 제자리걸음을 의미한다.
누군가는 한 발자국만큼 앞으로 나아갈 테니
정확히 말해서 아침은 한 걸음만큼의 뒤쳐짐을 뜻한다.
언젠가는 하루에 두세 발자국 나아갈 거라고,
때로는 뛰어가는 날도 있을 거라고 믿는다.
그런 자기 합리화와 자기세뇌가
지금 내가 가질 수 있는 유일한 원동력이라는 게 조금은 슬프지만
도태와 도약은 결국
보이지 않지만 거대하고, 간단하지만 어렵고, 조용하지만 강력한
나 자신과의 싸움에서 이기느냐 지느냐의 문제이다.
단지 그것일 뿐이다.
가끔 눈꺼풀이 무겁게 느껴지거나
혹은 아침의 무게가 싫지 않다면
그 싸움에서 이겼다고 할 수 있을까.
그때는 뛰어갈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