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나는 어디쯤에 서 있는지 알지 못한다.
일단 이 길이 어디부터 어디까지인지 몰랐다.
그래서 내가 반쯤 왔는지, 아직 한참 남았는지 알 수가 없었다.
혹시나 길 밖을 벗어났는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불안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이 길은
시간의 끝은 있지만 공간상으론 끝은 없다는 걸 깨달았다.
그게 나의 불안을 증폭시킨다.
예전에는
누군가 결승점에 도착하지는 않았는지 걱정했었는데
이젠 누군가 이미 여유롭지 않은지 걱정이다.
어차피 결승점 따위는 없다.
내가 서 있는 이곳이 어디쯤인지 보다는
지금이 언제인가가 중요하다.
한 발자국만큼의 거리보다는 그 순간이 중요하다.
몇 시간이 지났고,
얼마만큼의 시간이 더 남았는지 알아야만 한다.
남은 시간 동안 얼마나 더 갈 수 있을까.
계산하고 또 계산한다.
하지만
거리에 비해 시간의 계산은 덜 정직하게 느껴진다.
가끔 시간은 재빠르게 달려가버려서 사라지기도 하고
또 때로는 제자리에 서있는 척하기 때문이다.
정직하지 않은 시간을 허겁지겁 쫓아가다 보면
항상 허무함이 발 끝에 걸리고
넘어질 듯 넘어지지 않은 채로 주저앉는다.
시간과 공간이 똑같이 흐르지 않아서
가끔 어지럽고, 현기증이 났다.
분명히 내가 걸어간 만큼 거리는 줄었는데
시간은 몇 배나 더 빠르게 지나가있었다.
그래서 오늘도 멀미가 난다.
이 울렁거림을 참다 보면
언젠가 시간의 길도 끝이 난다는 걸 안다.
그때 내가 서 있는 곳이 곧 결승점이라는 사실도 잘 알고 있다.
그 사실이 오히려 나를 괴롭힌다.
그렇게
계산하는 머릿속에서
허무를 밟은 발바닥에서
울렁거리는 가슴에서
자꾸만 불안은 커져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