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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이비 Aug 11. 2023

이혼 후 겪는 경제적 어려움

화려한 돌싱녀는 드라마에만 있는거야 

돌싱. 돌아온 싱글. 

이혼해도 괜찮다, 그리고 돌싱이 오히려 편하고 화려하다라는 

이미지가 덧칠해진지는 그리 오래 되지 않았다. 


내가 이혼한 해는 약 8-9년 전이니까. 

세상이 많이 바뀌었다고 해도, 

스마트폰이 나온지 얼추 4년 정도밖에 안되던 시기였으니, 

실생활에서 접하는 이혼에 대한 사회적 시선은 그리 곱지 않았다. 


솔직히, 나는 이혼하면 불행 끝 행복 시작만 있는 줄 알았다. 


결혼 생활 내내 힘들었으므로, 

이혼을 하면 마치 인생의 새 장이 갑자기 확 열릴 것만 같은 

기대감에 부풀었던 것도 사실이었다. 



하지만, 나한테 남아있던 건, 

무직. 이혼녀. 빚. 

이 세 개 뿐이었다. 

거기에 사회적 편견과 인간관계 단절은 덤이었고. 


자꾸 나이를 얘기해서 미안하지만, 

당시 나는 만나이로 겨우 스물 여닐곱이었다. 

아무리 포장을 하려고 해도, 

그 때의 나한테는 이 상황이 너무 버거웠다. 


명문대 출신에 잘 나가는 대기업을 다녔었지만 

다 소용 없었다. 


대기업은 이미 너무 높은 업무 강도로 그만 둔 상태였고, 

퇴사 당시는 이혼할 거라고는 상상하지도 못했으니, 

'너무 힘들어하니 그만둬도 괜찮아. 내가 먹여 살릴께'라는 

전 남편의 말이 든든했던 것도 사실이었다. 

순진했었다. 

더이상 설명할 필요도 없이, 

어쩄든 이혼할 때 나는 무직 대학원생이었다.


대학원도 다행히, 이혼 후 아무것도 없을 내가 

무너지는 게 너무 싫어서 

이혼 준비를 하며 준비했던 거였는데, 

붙어서 정말 다행이었다. 

공부할 거라도 없었고, 물리적으로 몸이 강의실에 있지 않았다면 

정말 훨씬 더 힘들었을 거라고 생각한다. 



결혼하느라 모아놨던 돈은 혼수 비용 등에 보태느라 다 썼고, 

이혼 직후엔 정말 돈이 없었다.


합의금으로 2000만원을 받았다.

그 중 전 남편과의 생활비 포함 

두 달 정도의 카드값 

약 300만원을 내고, 

내 수중에 남은 건 1700만원이었다.


나는 몇 달에 걸친 이혼 과정에서 

정신적으로 피폐해진데다

지방 부모님 집에 내려와 있어서

과외도 못하고 있는 상황이었으므로,

생활비 조로 엄마한테 지고 있었던 빚 200을 갚으니 

1500만원이 남았다. 


여기서 서울 예전 신혼집에서 부모님 집으로 짐을 옮기는 

이사 비용 등 기타 잡비를 처리하고 나니 1300만원 정도 남았었다. 

나는 어떻게든 돈 벌 방법을 다시 찾아야만 했다.


이혼 준비 과정에서 합격해 놓은 서울에 있는 대학원에 가야했고, 

그러려면 월세 방을 구할 보증금이라도 있어야 했고, 

생활비와 학비를 감당해야 했다. 


다시 서울에 올라갈 때까지 3개월 정도 남은 상황에서, 

최대한 절약하는 수밖에 없었다. 



화려한 싱글은 개뿔. 

이혼하고 나니 현실이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래. 잘나가는 화려한 돌싱은 드라마에만 있는 거였다. 


정말 이혼 후에도 화려하고 싶다면, 

경제적으로 독립해있어야 했던 거였다. 

돈을 벌고 있어야 했고, 회사를 그만두면 안됐던 것이었다. 

물론 회사를 그만둘 때는 이혼할 줄은 꿈에도 몰랐지만. 


만 나이 스물 여섯 남짓의 나는

어찌저찌 대학원 생활을 위해 

다시 월세방을 구해 서울에 올라왔고, 

각종 알바를 하면서 학업을 잘 마쳤다. 


그 얘기는 다음 시리즈에서 자세히 풀겠지만, 

솔직히 힘들었고, 만만치 않았다. 


나보다 더 어려운 상황에 있는 사람들도 많을 거라고 생각한다. 

나는 다행히 과외도 하고, 

조교도 하고, 알바도 하고 하면서 

나 하나 먹여살리는 건 가능했지만, 

이혼하고 나서 

생각처럼 일자리가 많거나 사회가 바로 환영해주지 않을 수도 있다. 

특히나 아이를 양육해야 하는 입장이거나, 

경력이 단절된 경우는 더 힘들 수 있다. 



그래서 알려주고 싶었다. 

이혼도 준비해야 하는 거라고. 

이혼도 준비가 돼 있을 때 화려한 싱글의 삶을 누릴 수 있는 거라고. 


지금 상황이 힘들면 이런 저런 게 다 안보인다. 

하지만, 그럴수록 냉철하게 준비했어야 하는 거였다. 

나는 어쩌면 너무 순진하게, 무턱대고 그냥 이혼만 했다. 


갑갑한 현실이 견딜 수 없어서, 

일단 밖으로 뛰쳐 나왔는데. 

그 다음엔 온전히 내 몫이었다. 


그래서 개고생했다, 나는.

여러분은 부디. 

이혼을 할거라면 미리미리 경제적으로 준비해서 

나보다 덜 힘들길 바란다. 

절대로 먼저, 회사를 그만두거나 나를 벼랑끝의 상황에 

몰아넣지는 않기를 바란다. 

조금 더 똑똑하게 준비해서 이혼해야만, 

그래야만 이혼이 좀 덜 힘들어질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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