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안 데크에는 이미 많은 사람들이 자리를 잡고 있었다. 해질 무렵이라 바람이 더욱 차게 느껴졌다. 주섬주섬 가방에서 점퍼를 꺼내 입고 모자까지 덮었지만 추웠다. 우리는 서로 바짝 붙어 앉아 조금이라도 추위를 이겨보려 노력했다. 사진을 찍어도 안되고, 큰 소리를 내서도 안된다는 안내를 듣는 동안 해가 저물어 저물어 갔다. 펭귄을 위해 조명도 최소한으로 켜놓아 저 멀리 바다는 새카맣게 보였다. 저런 어둠을 뚫고 펭귄을 어떻게 집을 찾아오나 신통방통했다.
설명은 당연히 전부 영어로 한다. 스피커도 최소 크기인지 잘 안 들린다.
시간을 흘러 도착예정시간을 넘겼지만 펭귄은 한 마리도 오지 않았다. 펭귄들이 시계를 보며 집에 오는 것도 아닌데 어떻게 시간 맞춰 오겠냐는 남편의 말이 틀린 건 아니지만 마음이 조급해지는 건 어쩔 수 없었다. 9시가 넘자 사람들의 웅성임이 느껴졌다. 그렇다 드디어 펭귄이 온 것이다. 다급히 해안을 훑어본다.
실제론 저거보다 작고 흐미하게 보인다. 사진을 찍을 수 없는 게 아쉬울 따름이었다.
한 마리, 두 마리 드디어 펭귄들이 모습을 드러냈다. 호들갑을 떨 정도로 정말 작았다. 점처럼 보이는 펭귄들은 기념품점에서 보았던 인형과 크기가 거의 흡사할 것 같았다. '자, 이제 어서 행진을 시작해!'라고 외쳤지만 이 녀석들 너무 느리다. 나의 한탄에 남편은 크기가 작으니 보폭이 좁을 수밖에 없고, 거기에 모래밭이니 빨리 움직일 수는 없는 거라며 논리적으로 설명을 해준다. 지난밤 왔다던 866마리는 다 어디 가고 겨우 열 마리가 서다 가다 하는 모습만 보고 주차장으로 이동해야 했다.
그런데 이게 웬일인가! 나가는 길 쪽 나무 데크 옆으로 펭귄들이 보였다. 센터에서 해안으로 나오는 길에 보였던 모든 구역이 바로 펭귄들의 집(동굴)이었던 것이다. 심지어 굴 앞에서 엄마아빠 펭귄을 기다리는 솜털 보송한 새끼펭귄들도 볼 수 있었다. 아쉬움 맘에 가다 서다를 반복하다 겨우 시간에 맞춰 버스로 돌아왔다.
이제 버스에 앉아서 멜버른 시내로 돌아만 가면 일정이 끝이 난다. 눈 뜨면 시내겠거니 하고 잠이 들었는데 어딘지로 모를 도로 한 구석에 버스가 멈췄다. 잠시 기다려 달라더니 무려 50분을 대기한 후에야 겨우 출발했고, 새벽 1시 멜버른 시내에 하차했다. 그 시간에 트램이 다닐 리 만무하니 숙소까지는 걸어서 이동해야 했다. 진짜 춥고 피곤했지만 무사히 도착했다는 안도감이 때문인지 짜증 내는 사람은 없었다. 선선한 바람을 맞으며 함께 걸었다. 이런 일이 아니었으면 언제 멜버른에서 새벽 산책을 할 수 있었겠냐며 서로 키득거렸다. 뜻하지 않은 경험은 고생이 아니라 잊지 못할 추억으로 저장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