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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리 Sep 04. 2024

18. 정오의 뜀박질

칼턴 가든스에서 여유를 한껏 느끼고 미리 예약해 둔 필립아일랜드 투어버스를 타기 위해 트램시간에 맞춰 이동했다. 바로 앞 트램정거장에서 35번 트램을 타면 한 번에 갈 수 있는 곳이었다. 태양빛이 뜨거웠지만 저 멀리 들어오는 트램을 보며 곧 시원해지겠구나 생각하니 참을만했다. 그런데 자세히 보니 번호가 달랐다. 다음에 들어오는 것도 기다리던 35번이 아니었다. 지금쯤 타야 제시간에 도착하는데 뭔가 잘못되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정거장에 있는 실시간 위치 정보를 알려주는 큐알코드를 찍어보니 한참이나 먼 거리에 35번 트램이 있다는 게 확인되었다. 이게 지하철처럼 시간 맞춰오는 게 아니었나 보다. 마냥 기다리다간 투어를 놓칠 게 뻔했다. 계획이 틀어질 위기에 처하자 남편 얼굴에 짜증이 스멀스멀 올라오는 게 보였다. 이대로 펭귄을 놓칠 수는 없었다. 목적지까지는 도보 30분! 남편에게 걷든 뛰는 일단 집결장소방향으로 이동하자고 했다. 아이들도 뛰는 건 자신 있다 말했다. 그 말에 남편은 지도로 가는 길을 확인한 후 외쳤다.

"뛰어!"

정오의 해는 정말 뜨거웠다.


호주 멜버른 시티맵 출처_https://blog.naver.com/tourismvic/223228758084


10분여를 뛰어 거리 절반을 가로질러 다른 트램을 겨우 타고 내려서 또 뛰었다. 겨우 시간에 맞춰 버스를 탈 수 있었다. 버스가 출발을 하고 가이드 겸 기사분의 현란한 영어 설명이 이어졌다. 간간히 다른 승객들의 웃음소리도 들리지만 내 귀에는 아무 소리도 들어오지 않는다. 다들 가쁜 숨을 고르다 잠이 들었다.


버스가 멈추고 첫 번째 코스인 문릿생츄어리(Moonlit sanctuary)에 도착했다. 비몽사몽간에 주어진 관람시간이 1시간이라는 말은 알아들었다. 정신을 차리고 보호구역으로 들어갔다. 시멘트나 아스팔트가 아닌 흙과 나무데크로만 이루진 관람로가 눈의 띄었다. 사람들을 신경 쓰지 않고 돌아다니는 새들이 신기했다. 생소한 느낌도 잠시뿐 뜨거운 햇볕에 녹아내릴 것 같았다. 우람한 팔근육의 캥거루와 왈라비도, 엉덩이만 보여준 코알라도 다 그늘 속에 누워있었다. 대부분의 동물들이 야행성이라 그런지 생츄어리는 참 조용했다. 버스를 타고 이동하기 전에 아이스바를 하나씩 사서 먹었다. 하늘은 진짜 최고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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