땡땡땡 치카닥치카닥 빵빵 후두두두둑 파다다닥
트램과 자동차, 미친듯한 바람에 나뭇잎이 부딪히는 소리에 눈을 떴다. 9시도 채 되지 않았는데 남편은 벌써 외출 준비를 마쳤다. 지난밤 실패한 유심을 재구매하기 위해 현지 통신사를 다녀오겠다며 혼자 길을 나섰다. 낯선 곳이라 걱정스러운 마음에 제발 무사히 빨리 돌아오길 바랐다. 잠시 후 남편은 무려 80기가 데이터를 확보해 돌아왔다. 데이터 부자가 되었다.
아침으로 라면을 끓였다. 숨길 수 없는 라면냄새에 아이들은 이미 기분이 좋다. 날씨를 확인해 보니 내일은 비가 올 예정이다. 비가 오면 가장 둘러보기 힘들 것 같은 칼턴 가든스(Carlton Gardens)를 오전에 둘러보는 것으로 일정을 바꿨다. 가든 바로 뒤에 왕립전시관과 멜버른 박물관도 있었지만 다 넘어가기로 했다. 나는 그냥 정원이 보고 싶을 뿐이었다.
도착한 첫날 멀뚱하니 서서 초록불이 되길 기다렸었지만 이틀 만에 신호등 버튼도 척척 누른다. 띠디 띠디딕 탁탁탁탁 째깍거리는 신호음은 여전히 신기하고 조금 시끄럽다. 숙소 바로 앞에 트램을 타고 가뿐하게 이동했다(멜버른 시내에 무료 트램존이 있다는 건 정말 멋지다).
월요일 아침 공원은 한산했고 햇살이 뜨거웠다. 서둘러 초록이 가득한 공원의 그늘로 뛰어들었다. 커다란 분수대 앞에 피어있는 이국적인 식물들의 모습도 멋있었다. 자세히 보니 한국에서도 본 적이 있는 꽃과 나무인데 이곳에서는 크기가 달랐다. 거대하게 자란 모습이 마치 우리는 땅이 넓어서 더 크게 자랄 수 있다고 말하는 것 같았다.
감탄사를 연발하며 정원을 가볍게 둘러보고 한국에서 들고 온 돗자리를 펼쳤다. 시원한 나무 그늘 아래 누워있으니 눈이 알아서 감기려고 한다.
"시원한 거 마시고 싶어요!"
"나도!"
"난 배고파요."
그새 배고파하는 삼 남매 먹이기 위해 남편과 근처 카페로 향했다. 우리를 위한 아이스커피와 아이들을 위한 과일 스무디, 유명하다는 피시 앤 칩스와 처음 보는 바나나빵이란 걸 사서 돌아왔다. 12시가 가까워지니 샌드위치와 음료 등 간단한 음식을 든 사람들이 공원으로 모여들었다. 다들 편안한 장소에 앉아 점심 식사를 하는 것 같았다.
"남편, 이런 데서 점심을 먹는 저 사람들이 정말 부럽다."
"저들에게는 일상일 텐데 뭐. 근데 이렇게 있으니 정말 좋긴 좋다."
나무가 만들어준 그늘 아래서 시원한 바람과 풀내음을 맡으며 내 다리를 베고 누운 아이들의 살결을 온전히 느꼈다.
이틀 만에 호주가, 멜버른이 더 좋아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