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영은 패거리가 정혜를 그냥 두지는 않았을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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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울에서 오셨을 텐데 어려운 걸음 하셨네요.
이미현은 약간 높은 톤의 목소리를 가지고 있었다. 짧은 커트 머리에 슬랙스 스웨터를 입었다. 160 정도의 키였다. 그 나이 또래로 보이는 얼굴이었다. 그녀는 그을린 듯한 피부에 살짝 두터운 입술과 높은 코가 인상적인 좀 이국적인 느낌의 외모였다. 어렸을 때 그로 인해 놀림을 받았을 듯했다. 걸음걸이가 조금 부 자연스러웠다. 살짝 다리를 절면서 걷고 있었다. 왼쪽다리는 사고였거나 장애를 타고났을 수도 있을 것이다.
― 제가 주로 다문화 가정 아이들을 상대하고 있어서 특유의 말투가 있어요. 거슬린다 싶을 때가 있을 텐데. 실례가 된다면 미리 양해의 말씀을 드립니다.
― 아닙니다. 현민이 대답했다.
― 제 일이 외근도 많고 사람들 만나서 이야기 듣는 일이라서요.
― 최실장이 상황은 설명해 드렸고 고민을 많이 하셨다고 들었습니다. 둘은 커피를 시키고 마주 앉았다. 현민은 직설적으로 사건에 대해서 묻지는 않았다. 자신이 어떤 의도를 가지고 만남을 요청했는지 이미 밝혔다. 피해를 당한 사람이라고 한다면 채근하지 않아도 자신의 상황에 대한 기억과 이야기는 자연스레 나오기 마련이다.
― 최영은이 죽었다는 이야기를 들었어요. 그 애는 위기에 처해도 어떻게 해서든 살아남을 것 같았는데 이번에는 달랐나 보네요. 영악하고 잔인한 애였어요. 기억은 그래요. 서울에서 돈 많은 재벌 집 남자를 만나 결혼할 거라는 소문이 돌았는데 형주로 돌아왔다는 얘기를 들으니 자신의 뜻대로 상황이 풀리지 않았군요
― 구체적으로 얘기해 주시면 좋습니다. 어떤 아이였습니까? 왜 그런 일이 생겼는지 짐작 가는 부분이라도 있는지요. 한정혜 사건부터 시작해 여기까지 오게 됐습니다.
― 일단 최영은에 대한 기억부터 말씀드리죠. 능력이 있는 아이였죠. 좋게 얘기하면 그런 것이고요. 지금의 기준으로 보면 사람을 자신의 의지대로 다루는 것도 능력이니까요. 오래전에는 가스라이팅이라는 말이 일반적이지 않았어요. 저는 장애가 있어요. 더군다나 어릴 때 제 피부색이 좀 검은 편이잖아요. 혼혈과 절름발이라는 놀림에서 자유롭지 못했어요. 초등학교 때야 그럴 수 있죠. 아이들의 사회성이 제대로 형성되지 않았을 때라서. 다문화센터에서 심리 상담을 하면서 여러 가지를 알게 됐어요. 기억과 상처를 돌아보게 돼요. 소수자의 시선을 알죠. 때문에 여러 문제와 맞닥뜨리는 아이들을 보게 되면 조금 더 집중해서 상담을 하게 돼요 이 아이의 내면을 괴롭히고 있는 것이 무엇인지 파악하기 위해서요. 혹시 저와 같은 상황에 처해 상처가 되지는 않는지.
― 어려운 시기를 보내셨을 텐데 잘 극복하신 모양입니다.
― 피해당사자나 차별을 당한 아이들의 심리를 더 정확하게 파악할 수 있으니 그런 장점은 있죠. 대충 얘기는 들으셨을 테니. 최은영하고는 중학교 때부터 같은 학교 같은 반이었어요. 물론 다 사는 곳이 그곳이니까요. 최영은은 고등학교에 들어가면서 자기의 왕국을 만들기 시작했어요. 뭐, 비유적으로 말하자면 그래요. 중학교 고학년 때부터 그런 기질이 있었죠.
― 대체 어느 정도 길래. 왜 제대로 통제가 이뤄지지 않았죠?
― 음. 학교라는 곳이 그렇잖아요. 뭐가 문제가 되고 시끄러운 것을 좋아하지 않는 거죠. 조직이니까. 더군다나 그곳은 사립이고 시끄러운 사태가 터지면 좋을 게 없죠. 문제가 되지 않으면 쉬쉬하고 넘어가는 분위였다고 할까? 그래서 문제가 더 심각한 것이었어요. 자정작용이 사라진 거예요. 이미현은 말을 계속했다.
― 최영은은 이뻤어요. 초등학교나 중학교 때부터 그 애를 좋아하는 남자애들도 많았고요. 선생님들한테도 귀여움을 독차지했으니까. 어떻게 하면 사람들의 관심을 끌지 잘 아는 아이 었어요. 나이답지 않게 영악한 측면도 있었고요. 자기편으로 사람들을 끌어당기는 재주나 능력 같은 거요. 수단과 목적으로 가리지 않고 자기편이 되지 않으면 괴롭히는 거죠. 아이들을 상담하면서 알게 된 것이지만 사람은 반응에 학습을 하게 돼요. 사람이든 동물이든 마찬가지죠. 같은 상황이 반복되면 좀 더 많은 경우의 수를 생각하고 상황을 자신에게 유리하게 만들어요. 모든 동물의 본질 같은 것이겠네요. 그걸 적절하게 제어해 주는 것이 교육의 목표이고 어른의 자세죠. 교정과 관련된 흥미로운 이론이 있어요. 범죄의 종류에 따라 처벌의 강도와 달라지는 것은 아시죠?
교도소에도 등급이 있듯이. 또한 어릴 때부터 중범죄를 저지르는 아이들은 교화가 되지 않아요. 사회공동체에 더 큰 피해를 주는 거죠. 영은이도 그때 적절하게 제어가 됐다면 상황은 달라졌을 수도 있죠. 그런데 대충 넘어간 것이 화근이었어요. 그때 학폭위도 그래서 문제가 있었고요. 그 당시 여왕의 권력을 위협하는 누군가가 나타났어요.
― 그게 뭐죠? 현민이 물었다.
― 2학년 여름방학 이후 한정혜가 전학을 온 거예요. 최영은은 그때부터 좀 다르게 변했어요. 뭐라 할까. 영악했던 측면이 훨씬 더 교묘해졌고요. 고등학교 2학년 때 정혜의 전학은 아이들의 관심을 끌었어요. 도도하고 차가웠고 뭔가 설명하기 힘든 차가운 느낌 쉽게 다가갈 수 없는 아우라 같은 게 있었죠. 차가운 미인스타일 있죠? 정혜가 딱 그런 타입이었어요. 최영은 입장에서는 자신이 받고 있던 관심이 순식간에 정혜에게 쏠린다고 생각했겠죠. 최영은은 화려함을 드러내고 과시하려 안달인 아이였죠. 그런데 정혜는 달랐어요. 정혜에게는 그런 면이 없었어요. 우아했죠. 그런 느낌이랄까. 그게 달랐어요. 그건 음....... 최영은이 가지고 있지 못한 것이었죠. 그녀는 잠시 기억을 회상하는 듯 보였다. 저도 오래 정혜를 본 것은 아니에요. 그녀는 커피를 마시고 말을 계속했다.
― 한정혜와 친하게 지낸 것은 아니었어요. 전학도 왔고 학교에 적응을 할 때니까. 전학 온 뒤에 모의고사를 봤는데 전국 권 등수의 성적을 받았을 거예요. 아직도 기억이 나요. 순식간에 모든 관심이 쏠렸죠. 최영은의 벌레 씹은 표정이 상상 되죠. 감추려 해도 표시는 나기 마련이거든요. 최영은의 왕국에 살고 있는 아이들이 몇 명 있었죠. 무엇 때문인지 이들 사이에 싸움이 있었나 봐요. 괴롭힐 대상을 찾고 있었는지도 몰라요. 그때 제가 그 제물이었을 거예요. 저 말고 한 명이 더 있었고요
― 학교생활이 힘들었겠네요. 학교 폭력이라면 신고는 해보셨나요? 현민은 안타까운 심정으로 말을 꺼냈다.
― 경찰에 신고한 적이 있었죠. 그런데 당시는 학교 폭력이 사회적으로 주목받던 시기가 아니었어요. 좋게 넘어가자는 분위기였고 학폭위가 열렸는데 요식행위에 불과했죠. 학교에서는 교육청이나 언론에 알려지면 시끄럽고 책임추궁에 귀찮으니까. 공무원이 되니 알게 더라고요. 그들의 심정을. 유명한 사건이 있었어요. 이건 의심이에요. 제가 확인한 것은 아니니까요. 황정우 선생과 최영은과 모종의 관계가 있었을 것이라고 생각해요.
― 황정우 선생이요? 지금 젊은 야당의 유력정치인? 3학년 때는 담임을 안 했다던데. 모종의 관계라면.
― 네, 남녀사이의 관계를 모두 포함하겠죠. 현민은 깜짝 놀랐다. 생각해 본 적 없는 상황이었다.
― 최영은 말로는 황정우와 한정혜의 관계가 그렇다고 하던데요. 논술반 아이들 중 한정혜의 실력이 뛰어났다. 그래서 개별지도를 했다. 등등.
― 음...... 뭐 직접적인 증거는 없어요. 그런 느낌이 있는 거죠. 그때가 2학년 때였어요. 담임으로서 공정해야 한다는 그런 느낌보다는 최영은이 모든 것을 좌지우지하는 기분이 들 때가 있었던 것이죠. 담임이었던 황정우까지도. 소문도 한몫했고.
― 소문이요? 최영은은 한정혜와 황정우에 대한 이야기가 돌았다고 하던데요?
― 아뇨. 정반대죠.
― 정반대라고 하면 혹시.... 그녀는 씁쓸하게 웃었다.
― 당시 황정우가 저를 회유하더군요. 윤영근도 그랬고. 아직도 선생으로 근무하겠죠. 경찰도 뭐 다르지는 않았어요. 좋은 게 좋은 거다라는 말로 모두가 힘들어질 수 있다. 그런 얘기였어요. 선거를 앞두고 있었으니 학원 재벌로서 여러 이야기들이 나오는 게 좋지는 않았겠죠. 덧붙이면 최영은이 황정우와 관계가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을 것이라고 생각해요 그때 황정우 선생은 인기가 좋았죠. 아버지가 학교 이사장인가? 국회의원이고 학원재벌이죠. 황호민 의원이요. 그러니 그 앞에서는 아무도 제대로 얘기를 못했을 테죠. 그 사실은 나중에 알게 됐지만. 실제는 어떨지 모르니까. 문제가 커지는 게 달갑지 않았을 테죠. 아버지에 대한 반항아 같은 이미지가 있었던 같지는 실제 관계는 모르니까. 알음알음 소문이 돌기는 했지만요. 기존체제에 대한 저항을 강조하는 진취적인 모습과 당당함이 아이들에게 인기였죠. 황정우는 잘 모르는 것들을 쉽게 잘 설명해 줬어요. 교과목시간에요. 그녀는 커피를 마시고 말을 계속했다.
― 그 얘기는 다들 하는군요.
― 다들 그렇게 느끼는 것 같네요. 그의 수업능력은 좋았죠. 머리도 비상해 보였어요. 방송에도 잘 나오니까 그 부분이 대중성을 보여주는 부분이랄까. 어릴 때니까. 이 사회의 잘못과 실패는 기성세대의 책임이다. 그들이 만들어 놓은 한계를 깨야 한다. 황정우가 특히 그런 말을 잘했어요. 교사의 인기는 수업이죠. 기존의 나이 든 선생이 교과서 읽고 밑줄 치는 수업대신 젊고 수업 잘하고 목소리도 좋고. 아는 것도 많으니까. 수능도 잘 가르쳤던 기억이 있어요. 암튼 뭐 그랬죠. 여자아이들 중에 황정우선생님 팬이 많았어요. 안티는 소수였고요. 너무 느끼하다. 잘난척한다. 뭐 그렇게 생각하는 아이들도 있기는 했지만. 그런 반응은 주로 남자아이들이었죠. 사실 저는 후자였어요. 저는 그의 말에 공감은 했지만 가식적으로 보였거든요. 황정우는 잘 웃고 친절하고 여자아이들에게 인기가 좋을 수밖에요. 배 나오고 매일 교복처럼 똑같은 옷 입고 오고 지저분한 외모에 자기 관리도 못하는 선생과는 달랐어요. 생각해 보세요. 순댓국 냄새나 풍기는 할아버지 하고 산뜻하게 입고 향수도 뿌리는 30대 초반의 선생들하고. 코드가 잘 맞는 황정우랑은 비교가 불가능하죠.
― 제가 전학을 가기 며칠 전 여자애 중에 한 명이 대박사건이라면서 누군가 학교에서 와서 얘기를 한 것 같아요. 자기가 황정우 선생님 하고 최영은이 만나는 것을 봤다나? 정주 시에 유명한 산정유원지가 있어요. 순식간에 소문이 나죠. 소문은 부풀려지는 거 아시죠?
― 걔네들 패거리에 걸려들면 학교 생활이 괴로워요. 지속적은 괴롭힘은 다행이죠. 상처가 안 나게 때리는 것도 비일비재했어요. 왜 적극적으로 대응하지 못하냐? 그렇게 말하는 것도 당연한데 당시에는 그게 쉽지 않았어요. 지금 생각하면 좀 우습기는 하지만 어쨌든 어린애들이니까. 친구관계와 학교 생활이 힘들어지는 거예요. 어쩌겠어요. 몸도 불편하고 공부를 잘하는 것도 아니고 타깃이 된 거죠. 한정혜가 전학을 와 관심이 집중되니 뭔가 화풀이할 대상을 찾고 있는데 제가 걸려든 것이라고 생각해요. 그전부터 저는 그 애들한테 별로 협조적이지 않았거든요. 괴롭히는 아이가 한두 명 더 있었는데 지들 나름대로 한 명을 더 마련하고 싶었나 보죠. 그날은 야외 수련회가 있는 날이었어요. 삼악산 수련장에 간 날이었죠. 거기서 오주희가 죽었어요.
― 네? 죽음이 또 있었어요?
― 그 사건도 꾀나 알려졌던 이야기예요. 주희는 평소에도 최영은 패거리와 사이가 좋지 않았어요. 소문을 누가 냈는지 알아내서 몇 번 주희가 점심시간이나 종례 후 싸움이 붙거나 괴롭힘을 당했나 봐요. 얼굴표정이 좋지 않을 때가 많았죠. 결정타는 체험학습 이틀 전이었어요. 같이 묵을 방과 조를 선정해야 하는데 주희로서도 피하고 싶었겠죠. 최영은하고 같은 조와 방이 됐나 봐요. 체험학습 가기 전날 종례시간에 황정우 샘이 주희하고 방 바꿔 줄 사람 이렇게 말을 해버렸어요. 어이없죠. 심각한 표정으로 이미현은 말했다. 이일도 제가 황정우와 최영은이 뭔가 관계가 있다고 생각한 계기예요. 이런 상황을 모르지 않는 황정우가 왜 저렇게 말을 했을까? 아이들 간의 관계를 재미있게 지켜보는 절대자나 관찰자가 되고 싶었는지도 모르죠.
― 그런 일이 있었나요? 어떻게 발생한 일입니까?
― 지금은 아무도 얘기하지 않지만. 체험학습을 하러 삼악산 휴양림 숙소 9층에서 주희가 난간에서 떨어져 사망한 거죠. 경찰조사결과 스스로 베란다에서 뛰어내려 목숨을 끊은 것으로 사건이 마무리 됐는데 솔직히 누가 알겠어요. 그 방에는 최은영과 걔들 패거리 3명만 있었죠. 그중 한 명이 강수연이었나 그랬어요. 진실은 그들만 알 거예요. 웃긴 게 그 사건 어떻게 종결됐는지 아세요? 상해혐의만 인정해 강수연만 가정법원으로 송치됐어요. 선생도 누구도 책임지는 사람도 없었고요. 지금도 경찰은 잘 안 믿어요. 그때 그들은 제 역할을 제대로 하지 않았거든요. 이미현은 단호한 태도로 말했다. 사건이 있을 당시에 선생들은 숙소에서 술을 마시고 있었고 다른 애들 몇 명도 몰래 술을 가져와 마셨나 봐요. 선생들한테 술도 따라주고. 주희 사건이 커지지 않도록 그 숙소에 있던 애들의 진술서를 선생들이 입을 맞춰가면서 불러줘서 쓰도록 했다고 하더라고요. 전학 간 이후에 들은 얘기예요. 애들 얘기로는 윤영근 선생이 그것을 주도했다고. 윤영근은 학교법인비리 문제로 시끄러운 시기에 자리를 지켰고 정년을 앞두고 있죠.
― 이해가 되지 않네요. 현민의 말에 이미현은 씁쓸한 미소를 지었다.
― 한정혜도 전학 온 지 얼마 되지 않은 이후 이들에게 괴롭힘을 당한 것인가요? 이후에 들은 이야기는 없나요? 정혜랑 오래 같이 있지 않아서 정확한 것은 모르겠네요. 전학을 간 이후에는 친하게 지내던 몇 명하다고 연락을 잘 안 하게 됐고. 원래 처음 전학을 오면 분위기 파악하고 견제하잖아요. 정혜랑 친해질 시간이 많이 없었어요. 잘난 척을 하거나 하지 않고 원래 여자들이 자신의 장점에 대해서 더 잘 알죠.
―혹시 민소희씨하고는 연락을 하십니까?
―누구요? 민소희? 민 누구였던 것 같은데 잘 모르겠어요. 친하지는 않았어요. 저하고 비슷하게 괴롭힘을 당하는 아이가 있었죠. 아. 최영은의 어머니가 자살을 했다는 얘기는 들었어요. 불륜 때문에.
―음.. 그렇군요. 민소희 씨도 황정우 선생과 관련해 좋지 않은 평을 하는 것 같은데. 비슷한 부분이 있군요.
― 보는 것은 다 비슷하니. 자신이 최영은의 입장이 아니라면요.
― 그럼. 미현 씨의 기억으로는 정혜는 좋은 아이였다?
― 아무리 전학을 왔더라도. 공부를 잘하고 외모도 눈에 띄고 하면 좀 뭐랄까. 자신감을 넘어 잘난 척도 할 수 있고 할 수 있다고 봐요. 그런데 정혜는 그런 아이가 아니었어요. 같은 조를 한 적이 있었는데 그때 조금 성향을 알게 됐죠. 몇 달 동안 최영은이 정혜 눈치를 보는 것 같았어요. 최영은 패거리가 정혜를 그냥 두지는 않았을 거예요. 그들이 해왔던 것을 생각하면. 이후에 무슨 일이 생겼는지는 모르겠고요. 지난 일이기는 하지만 최영은은 대가를 치러야 할 거예요. 자신들이 한 일에 대해서. 하지만 죽은 것은 안 되기는 했어요. 어쨌든 누군가의 목숨을 강제로 뺏는 거잖아요. 저를 포함한 몇 명은 진짜 영혼까지 괴롭힘을 당했다고 볼 수 있죠. 그런데 이거 방송에 나가나요?
―방송은 모르겠습니다. 일단 사건의 진상과 사실 확인이 우선이라 아직 결정된 것은 없습니다. 현민은 담담하게 대답했다.
―어디까지 얘기해야 하는지 모르겠는데 <사건 25시> 기자님이라고 해서 말씀드린 거예요. 생각하기도 싫은 기억이었거든요. 경찰이 엄마한테 전화를 했다고 하더라고요. 저한테도 얘기를 해달라고 하던데 전 거절했어요. 제대로 일도 안 하다가 왜 이제 와서 새삼스레 뭔가를 하려고 하는지. 현민은 인사를 마치고 멀리 사라져 가는 이미현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방송 보도에 대해서는 따로 전화를 해 허락을 구하겠다고 말했다. 혹시 개인채널에서 사건과 관련된 내용을 다룰 수 있고 가명으로 진행한다고 양해를 구했다. 최영은이 학폭의 가해자인 것은 맞다. 이미현의 진술로는 그때까지는 한정혜가 어떤 특별한 괴롭힘을 당했다는 것은 아니었던 것 같다. 물론 그들 사이에 어떤 일이 있었는지는 모를 일이다. 그렇다면 정혜는 왜? 이미현이 굳이 거짓을 말할 이유는 없다. 학폭위가 열리고 그가 전학을 간 것이기에. 최영은과 한정혜에게 사건이 있었다면 그것은 2학년 후반기 그리고 3학년 이후였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