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놈은 지능범이야. 유나바머도 동생이 신고 안했으면 안 잡혔을지도 몰라.
6
― 김선배 또 하나 일이 터졌습니다.
― 뭐야? 뭔데? 김선호는 염수길을 멍하니 보며 들고 있던 휴대폰을 만지작 거렸다.
― 무슨 일인데요. 염선배. 정주현이 궁금한 듯 물었다.
신효선이라고 하는 50대 여자에요. 반석동 자기집 마당 테이블에서 엎드려 죽은 채 발견됐는데 외상은 없대요. 봉산 대포차 조사하고 반석동 넘어오던 날 얘기했잖아요. 부검결과가 나왔어요. 청산가리가 몸에서 발견됐고 목이 돌아가 있었대요.
― 뭐? 그건 또 무슨 소리야.
― 죽은 후에 목을 꺾어 돌려놨다는 소리죠.
― 이게 무슨 소리야. 참... 대체 왜 그런 짓을 해. 주현이 너도 이제 죽었다고 생각해. 이제 특별수사반이 꾸려질 것 같아. 광수대가 오든 뭘 하든. 진짜. 집에 또 못 들어가고 마누라 닦달할 것 생각하면 내가 피가 말라.
염수길의 표정은 체육대회에서 점심으로 싸온 김밥을 빼앗긴 아이처럼 일그러지기 직전이었다. 그을린 갈색얼굴이 더 어두워보였다. 그의 눈은 퀭했다. 사건은 새로운 방향으로 흘러가고 있었다. 형주서에 수사전담반이 새롭게 설치된 것은 삼일 뒤였다. 사건이 발생한지 삼주 무렵이었다. 세 중 두 명이 같은 방식으로 살해됐고 같은 지역에서 사체가 발견되자 언론에서도 연쇄살인의 가능성을 염두 한 기사를 확정하고 있었다. ‘최악의 연쇄살인 형주에서 터지나?’ 시청자 게시판과 경찰 홈페이지에는 항의성 글들이 더 늘어나고 있었다. 대체 범인은 언제 잡는가? 경찰의 무능력에 대한 질타에 가까운 글들이었다. 범인을 예측하는 글들도 있었다유튜브 사이버레커로 불리는 이들은 물 만난 고기떼들이었다. 며칠 전 몇 명은 경찰서에 나타나 경찰서 모습을 촬영하고 사건에 대한 내용들을 실시간으로 생중계 하다시하며 조회수를 높이고 사건을 이슈화 했다. 민원인인척 들어와 경찰서 내에서 사건처리에 대한 비난을 퍼붓거나 수사진행상황을 실시간 중계하듯 방송해 노출을 유도했다.
사건의 범인에 대한 단서와 추리를 자신의 계정에 올리기도 해 애꾿은 사람이 피해를 보기도 했다. 경찰은 성명서까지 발표하며 상황을 진정시키려 하고 있었다. 또 다른 언론은 관련성이 전혀 없어 보이는 사람들이 연달아 살해되자 싸이코패스가 각성해 유희적인 살인을 보이고 있다고 보도하는 기사를 올렸다. 새로 부임한 형주 서장은 본청에 들러 회의를 진행한 모양이었다광수대가 투입될 예정이었으나 형주서에 특별 수사본부가 꾸려지고 정주서 형사들과 공조 연계수사로 방향이 정해진 모양이었다. 사건은 이제 전국구 연쇄 사건으로 부상했다. 대한민국을 들썩였던 강호순과 유영철 사건과 비교되고 있었다. 포털에는 연쇄 살인마는 누구인가라는 자극적 제목의 기사가 속속 웹을 채웠다. 새로 투입된 수사본부 형사들은 수사초기부터 사건을 원점에서 다시 조사한다며 분주하게 움직였다. 수사 인원도 보강되었다. 지역의 유사범죄 전과자들에 대한 조사가 대대적으로 이뤄지기 시작했다. 사건이 중요한 분기점에 접어드는 모양새였다.
― 수사진행 사항 보고 드리겠습니다.
수사팀 회의는 매일 이뤄졌다. 신현호 팀장은 사건을 연쇄살인으로 규정짓고 이상심리를 가진 사이코패스의 범행 쪽으로 수사를 이끌었다. 회의가 끝난 후 김선호와 정주현은 휴게실에서 커피를 마시고 있었다. 정주현은 벤치 위 재떨이에 담뱃재를 털고 커피를 부어 불을 껐다. 치이익 하는 소리와 함께 담뱃불이 꺼지는 소리가 들렸다.
― 저들이 하는 것도 이미 다 우리가 조사한 거잖아요더 나올 구석이 없어요. 생각해 보면. 당일 현장에 있는 모든 인원 다 뒤졌고 전과자들 확인했어요. 샅샅이 뒤졌다니까요. 근데 안 나오는 건 동종전과자는 아닌 거예요. 김선호도 커피를 마시며 멍하니 하늘을 올려다 보았다. 이틀간 면도를 하지 못해 손으로 턱을 쓰다듬자 까칠한 희끗한 수염이 만져졌다. 김선호의 전화가 울린 것은 그 때였다. 감식팀의 정현모 경위였다. ‘아무래도 이상한 사건’이라고 그는 몇 주전 문자를 보냈지만 김선호는 사건은 곧 해결될 것이라고 답장을 했다.
― 뺑이 치고 있는 것은 잘 해결돼 가나? 특별수사본부와 공조수사는 흔하지 않은 일이지.
그는 인사도 없이 김선호의 심정을 알겠다는 듯 다짜고짜 말을 꺼냈다.
― 죽지 못해 살고 있습니다. 이게 대체 어떻게 굴러가는 것인지 아직도 이해가 안돼요. 연쇄 살인이 웬 말이랍니까? 조만간 또 터질까봐 조마조마합니다.
― 곧 해결할 것이라고 장담하던 사람이 왜 죽는소리야. 김 반장한테 내가 재미있는 얘기 하나 해주려고 전화했어. 이상하지만 재미있는 사건이 될 것 같군. 검시팀 보고서에는 담지 못한 거야. 다들 미쳤다고 할 테니까.
― 선배가 농담하실 분은 아니고 재미 없으면 내가 쫒아갑니다.
― 사실 피살된 두 명은 칼에 찔린 자상과 자창이 있었는데 서로 같지만 다른 방식으로 살해된 것처럼 보여사람이 한 행동 같아 보이지 않거든. 아무리 감정이 없는 싸이코 패스라고 하더라도. 저렇게 반복적으로 사람을 찌른다고? 같지만 다른 거지.
― 자세하게 말씀해 주세요. 이 선에서 해결해야지 아니면 무슨 망신입니까.
― 최영은 국과수 보고서도 받았지? 정주시 사망사건도 비슷해. 무작위로 수 십번 씩 찌른 자창자국이 있어. 그런데 이상한 게 그 찔린 패턴이 사실은 모두 같다고 생각하면 어떨까?
― 다르다면서요? 대체 같지만 다른 것은 뭐란 말입니까?
― 자 생각해봐. 정주시 봉산에서 발견된 사체 있잖아. 사체는 복부에 수 십건의 다발성 자창이 발견됐어. 그 짧은 시간에 수십 번의 칼질이 가능할까? 아무리 새벽시간이라고 하더라도. 그가 그 시간에 거길 나갈 이유가 없어. 아니면 새벽에 들어오는 것을 누가 불러서 유인했겠지. 그럼 가까운 사이였거나 그 새벽에 같이 뭔가를 얘기할 수 있는 사이이거나. 최영은 사건은 어때? 밖에서 굿판이 벌어졌고 수많은 사람들이 굿에 빠져 있는 상태에서 짧은 순간에 대담하게도 20번 이상을 찔렀어. 무방비 상태에서 비명도 못 질렀을 거야. 1분도 안 걸려 숨이 끊어졌거든. 보통 사람이 이정도로 빠른 시간에 수 십번의 흉기로 사람을 찌르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다는 거야 내말은. 비명도 못 지르게 순식간에 보낸 거지.
― 그럼 뭐란 말입니까? 사람이 살해한 게 아니다?
― 혹시 기계 같은 것이 아닐까? 한동안 김선호는 멍하니 생각을 정리했다. 침묵이 흘렀다.
― 기계 장치라?
― 왜 그런 것 있잖아. 프로그램을 설정해 놓으면 반복 행위를 하는 로봇 같은. 김선호는 큰 소리로 웃음을 지었다. 김선호는 너무 어이가 없어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떠오르지를 않았다. ― 너무 초현실주의적인 것 아니에요? 제 관심을 끄는데 성공하셨습니다. 제가 한잔 살게요. 이젠 인공지능 로봇이 살인사건에 등장하다니너무 SF적 인 것 아닌가요?
― 누군가 잘 설계한 사건이야. 오랫동안 공을 들인. 단순하게 여기서 끝 날일은 아니라고 봐. 이 놈은 유영철이나 강호순 같은 싸이코패스가 아니야. 훨씬 정교하고 지능적, 이성적이야. 유나바머 사건 알지?
― 아이고 선배님, 유나바머야 과학기술가 가져올 부정적 미래에 대한 신념 같은 거창한 그럴듯한 명분이라도 있지. 이놈은 그게 아니잖아요.
―모르지 조만간 그처럼 편지 하나 현장에 남겨 놓을지. 아님 언론사에 뭘 보내든가.
―그런 말씀 마세요. 아. 빨리 그냥 해결해 버리고 싶어요. 유나바머 비슷한 놈일지도 모른다는 말에 김선호는 긴장감이 느껴졌다. 여기서 한 번 더 사고가 발생한다면 그의 말이 틀리지 않는다는 반증이다.
―쉽지 않을 거야. 이놈은 지능범이야. 유나바머도 동생이 신고 안했으면 안 잡혔을지도 몰라. 조만간에 함 보세. 안 잡히는 것 너무 무리하지 말고 그 놈은 스스로 자기를 드러내고 싶어 할 수도 있어. 뭔가 사연을 알아 달라는 거지. 그렇지 않으면 이렇게 정교하게 사건을 만들 었겠어? 이제 슬슬 자신을 과시하려 한다거나 뭔가 드러내려 하겠지. 기다리는 것도 전략이야. 판단은 자네 몫이지만. 둘은 인사를 하고 통화를 끝냈다. 팀장은 사건 탐문을 더 촘촘하게 강화하라는 지시를 했고 합동수사반은 외노자에 대한 추가 조사를 진행하고 있었다. 김선호는 일단 지시대로 탐문을 진행했지만 이미현의 모친을 만나고 온 뒤 오래전 일이 계속 머릿속을 맴돌았다. 이미현의 모친이 경찰을 대하는 태도와 불신을 이해하지 못하는 것은 아니었다. 한정혜 사건은 형사 1팀에 배당되었다. 그는 1팀의 막내였다. 지구대에 있다가 수사와 강력팀 인원부족 상태에서 지원을 해 배치를 받은 것이다.
동시에 여성 청소년계에 있던 지성우 경사도 형사 팀으로 합류했다. 지성우의 형사팀 배치는 의외로 받아들여졌다. 그는 여청계에서 근무하고 있었다. 그 시기 형주고등학교 학폭 사건이 발생하고 오주희 투신 사망사건으로 학폭 운영위까지 열린 상태였다. 지성우에 대한 안 좋은 소문은 당시 팀의 막내였던 김선호에게 까지 들렸다.
김선호는 그와 한팀으로 함께 움직였다. 김선호는 최성우와 일을 했던 기억이 떠올랐다. 탐문이나 조사를 나갈 때 김선호는 왜 지성우에게 안 좋은 소문이 드는 이유가 뭔지 생각을 해 보기도 했다. 평상시 그는 후배를 함부로 대하는 법이 없었고 지극히 평범했다. 형사과가 잘 맞지 않는다는 얘기를 몇 번 했을 뿐이었다. 다만 그가 들었던 소문 중 여청계에서 여러 사건을 처리하며 주기적으로 뭔가를 받았다는 전언이었다. 특히 사건 정보를 미리 알려주고 댓가를 챙긴다는 것이다. 선입견이 생길지도 몰라 김선호는 조심하고 있었다. 하지만 평소 지성우는 평범했다. 두드러지게 눈에 띄는 어떤 행동도 없었다. 지역 내 성인오락실 운영을 두고 폭력배들 사이의 다툼이 벌어져 사건을 조사하고 돌아가던 중 뜬금없이 말을 꺼냈다. 몇 개 월동안 간간히 한 팀으로 활동을 했지만 둘은 일정한 거리감 유지하고 있었다. 그날은 사고로 유난히 차가 막혔다. 둘은 시내 중심가에서 신호등에 걸려 아무 말없이 앞만 보고 있는 중이었다.
― 김형사 혹시 말이야. 나에 대해서 뭐 들은 것 있어? 있지?
― 아뇨. 없습니다.
― 에이 그럴 필요 없어. 얘기해도 돼. 난 크게 신경 쓰지 않으니까. 나 조만간 이곳을 떠날 것 같아.
― 예? 떠나다니요? 경찰 그만두십니까? 뭐 좋은 거라도 만들어 두신 모양입니다. 김선호는 기계적인 말투로 대답했다. 그 말을 하고 아차 싶었다. 성의 없는 대답처럼 들릴 수 있기 때문이다.
― 형사 생활 15년에 남은 것이라고는 은행대출밖에 없네. 마누라와 애새끼는 다 떠나고 말야.
그는 알 듯 모를 듯 한 웃음을 지어 보였다. 지성우 경사는 뇌물 수수혐의로 감사가 진행 된지 몇 달 후 경찰을 떠났다. 그 과정에서 김선호는 의문의 제보전화를 한 통 받았다. 형주고등학교에서 학폭 사건 담당 경찰이 사건이 커지지 않도록 증거를 은폐하고 있다는 것이었다. 하지만 팀장은 대수롭지 않다는 반응을 보였다. 일부 학부모들은 학교에 대한 감사 민원을 제기했지만 그 뿐이었다. 전화를 받은 김선호는 의심을 품고 숨겨진 폭력 사건에 대한 조사를 진행해야 한다고 했지만 그가 할 수 있는 것은 많지 않았다. 선거를 앞두고 내현 신도시 유치와 관련 떳다방과 투기로 인해 조폭들이 은밀하게 활동하기 시작했다. 윗선에서 학폭 사건에 대해서 굳이 더 캐고 들 필요성을 느끼지 못하는지 자체적으로 내사 종결된 것이다. 여청계에서 그가 학폭사건을 무마하기 위해서 증거를 빼돌렸다는 감사결과를 냈지만 그대로 흐지부지 됐다.
형주고와 관련된 또 다른 사건이 수면위로 드러난 것은 한정혜 사망사건이었다. 다들 자살로 여겼지만 사건을 맡은 김선호는 자살이라는 생각이 잘 들지 않았다. 마치 상황을 교묘하게 조종하거나 통제하는 뒷배가 있다는 생각을 하기도 했다 하지만 그 뿐이었다. 더 이상은 없었다. 김선호는 그녀의 모친을 만난 기억을 떠올렸다. 숨진 채 발견된 신효선이었다. 그날은 아직도 기억에 남아 있었다. 병원에서 뇌사상태의 딸의 시신을 마주하는 그녀의 눈빛에서 김선호는 뭔지 모를 서늘함 같은 것이 느껴졌다. 많은 사건을 접했지만 부모로서 자식의 죽음을 눈앞에서 목격하는 것은 큰 정신적 충격일 것이다. 자신의 신체 일부를 잃은 듯 한 고통과 극도의 슬픔이 아닐까. 하지만 이상했다. 김선호가 보기에 신효선은 왠지 모를 공허감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닌 감정만을 드러내는 듯 보였다. 절절한 감정의 표현은 중요하지 않을 수도 있다. 극도의 슬픔은 무표정과 웃음으로 대치될 수 있는 정 반대의 감정일까? 극과 극은 통한다 하지 않던가.
그녀의 얼굴 양 끝에 살짝 걸려 있는 웃는 입꼬리는 뭘 말하는 것일까? 김선호는 자신의 생각과 아니 자신이 가지고 있는 이해의 방식과 너무나 다른 신효선의 모습에서 이질적인 느낌을 받았다. 그 기억은 아직도 잊혀지지 않고 기억에 남아 있었다. 형사사건을 조사하는 과정에는 뭔지 모를 직감 같은 것이 느껴질 때가 있다. 해결되지 않고 내사 종결된 그 사건들이 엮여 있고 그 의심들은 그림자처럼 어께에 들러붙어 좀처럼 떨어지지 않는다. 한정혜 사건은 내현 혁신도시와 관련해 사람들의 관심이 온통 부동산에 쏠려 있을 때였다.떳다방과 사기 사건으로 형주서는 쉴새없이 업무에 짓눌렸다. 상대적으로 그 사건은 관심을 덜 받았고 빠르게 잊혀졌다. 누군가 그 사건이 잊혀지도록 의도적으로 설계한 것처럼. 근처를 지나가던 차량 수 백대를 조사했다. 비까지 내리는 날 오전 왜 인적이 드문 그곳에 그녀는 간 것일까. 축제기간에 시내를 돌아다니다 왜 한 밤중에 학교에 간 것이며 갑자기 그곳에서 삶을 마감하려 한 이유가 있을까. 사건은 결국 종결됐다. 김선호가 생각에 잠겨 있는 사이에 정주현으로부터 전화가 걸려왔다. 최영은 살해사건과 관련해 참고인 조사를 했던 박현민에게 연락을 했는데 그가 흥미로운 제보와 제안을 했다는 것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