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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편소설] 페르소나 논 그라타 2부 -15-

정주현은 태블릿으로 당시의 CCTV 영상을 재생했다

by proofs Mar 24. 2025

11

 김선호는 무속인 설화에게 전화를 걸었다. 설화는 몇 년 전 자신의 주위를 맴돌며 스토킹을 하던 남자를 신고 했다. 스토킹은 그녀의 집에 들어와 물건을 훔치거나 몰래 엿보는 수준으로 발전해 현장에서 체포됐다. 검거를 해 신원을 확인하니 가까운 곳에 살고 있는 남자였다. 김선호는 무속인에 대한 편견을 가지고 있었다. 굿을 하도록 만들어 경제적 이익을 취한다던가. 부적을 팔거나 신을 참칭해 사람을 속이는 사례를 종종 봤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설화는 무속인으로서의 자부심 같은 것이 있었다. 과거를 굳이 밝히려 하지 않았지만 강신무 집안에서 자랐고 고등학교 시절에 무병을 앓아 무속인의 길에 들어섰다는 것이었다. 그녀의 말에 따르면 무속인중 제대로 된 무당은 손꼽는다고 했다. 세습무는 말 그대로 대대로 가업처럼 잇는 형태의 무속인이며, 강신무는 만신이라고 불리며 신내림을 받는 것이라 했다. 무속인은 사람들이 어려움과 맞닥뜨릴 때 도움을 주어야 하는 일이라는 말도 덧붙였다.


― 예수 그리스도 아닙니까? 그렇게 얘기하면. 김선호가 물었다. 김선호는  무속과 관련된 부분에 대해서 이것저것 궁금한 것을 물어보았다. 

― 하하. 그렇게까지 거창하지 않습니다. 무당에 대한 편견이 있는 것은 압니다.  충분히 이해하죠. 그래도 현대 과학으로 풀 수 없는 것들이 있기도 합니다. 영적인 것들의 힘을 빌려 문제가 해결되는 경우도 있고요. 일종의 믿음인데 종교도 사실 같은 방식이 아닐까요. 의사들은 정신병이라고 부르기도 하지만. 

― 정신질환과 비슷한 것도 있을 것 아닙니까? 

― 그렇습니다. 부인하지 못하죠. 하지만 아닌 것도 있습니다. 그러니까 100%는 없는 겁니다. 

― 보통 사이비나 사기꾼 취급을 받는 무속인들이 있는데 그들은 제대로 된 신을 모시는 경우가 아닌 거예요. 허주라고 불리는, 말하자면 잡귀가 들린 거죠. 그것을 가지고 신내림을 받는다는 것인데. 좀 위험합니다. 그런 잡귀들은 기운도 금방 사라지죠. 그렇다면 무속인은 혼돈에 빠져요. 신기가 사라졌다는 생각에 잡귀를 모시거나 하게 되면 이후 더 큰 화를 부르게 되죠. 

― 그 세계도 신비로운 체계가 있군요. 

― 알고 보면 뭐든 그렇지 않을까요? 설화는 말을 마치고 커피를 마셨다. 김전호는 최영은과 관련된 사건으로 설화를 다시 만나게 될지 생각하지 못했다. 시내의 한 커피숍에 이들은 마주 앉았다. 5년이나 지났지만 그녀의 모습은 크게 변하지 않았다. 잠시 후 정주현이 도착했다. 김선호는 설화에게 정주현 경사를 소개시켜주었다.

― 형사님이 저를 그냥 보자고 했을 리도 없고, 신점을 보러 오신 것도 아닐 테죠? 그녀는 웃으며 말을 꺼냈다. 

― 그냥 오랜만에 잘 지내시는지 근처에 지나다 들렀습니다. 

― 형사님 얼굴에 쓰여 있습니다. 힘든 일을 겪고 계신다고. 제가 하는 일이 좋게 얘기하면 모시는 신령과 교감을 통해 사람들의 어려움을 풀어 주는 것 아니겠습니까? 말씀하세요. 

― 뭐라고 해야 할까? 지푸라기라도 잡으려는 심정으로 찾아왔습니다. 


 김선호는 사건에 대해서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현장에 있었던 사람들 중 의심이 될 만한 사람을 탐문하고 있는데 굿을 했던 무당에 대해서도 좀 알아봐야 할 것 같다는 이야기를 했다. 굿을 한 무당이 갑자기 사라졌다는 얘기는 꺼내지 않았다. 정주현은 태블릿으로 당시의 CCTV 영상을 재생했다. 최영은 사망사건이 있던 날 반석동에서 보았던 익숙한 영상이었다. 둘은 감탄을 하며 보았던 기억이 있었다. 소리는 나지 않았지만 해상도에 문제는 없었다. 설화는 집중해서 당시 상황을 녹화한 영상을 보고 있었다. 무속인의 입장에서 굿을 보면 혹시 단서가 있을지도 모를 일이었다. 정주현은 무속인 영상을 챙겨서 가져오라는 말을 김선호에게서 들었을 때 자신이 잘 못 들은 것은 아닌가라는 생각이 들었다. 정주현은 단테의 신곡 <지옥>도 모자라 무속까지 알아야 하는 것이 아니냐고 툴툴거렸다. 설화는 화면 속 무속인과 굿을 하는 장면을 유심히 보고 있었다. 10여분을 지켜보고 그녀는 말을 꺼냈다. 


― 저한테 이 영상을 보여주는 이유는 뭔가요? 그녀는 고개를 갸웃하며 김선호를 바라보았다. 

― 알고계시겠지만 최근 형주에서 발생한 사건으로 시끄럽죠. 

― 네. 대충은 알고 있습니다. 설화는 김선호의 의도를 모르겠다는 표정을 지었다.

― 그때 저희가 출동을 했습니다. 피해자가 숨진 채 발견됐다는 신고가 있었고 그 장소에 도착하니 굿판이 벌어지고 있더군요. 사람들이 모여 있었고요. 사건을 조사 중인데 무속인에 대한 정보가 나오지 않더군요. 

―의뢰인이 누굽니까? 설화가 말했다. 보통 굿을 의뢰하면 그 사람한테 연락을 해서 파악을 하면 되지 않을까요? 

―빌라와 다세대 일부의 건물주인데 형주에 투자를 한 모양이더군요. 형주 출신이고 무속에 관심이 많다더군요. 수소문 한 끝에 신효선에게 연락을 한 모양이에요. 

― 혹시 알고 계신가요? 

― 신효선이면 법당을 말씀하시는 건가요? 

― 아. 그 사람이 법당인가요? 알고 계시는 군요.  

― 네 그렇게 부르고 있죠. 대부분 이름만 들어도 잘 압니다. 그쪽 일을 오래 한 사람들은. 굿은 혼자서 할 수 있는 게 아닙니다. 악사도 필요하고 일을 도와줄 여러 사람들이 필요하죠. 법당은 만난 적이 있습니다. 썩 좋은 느낌의 무당은 아니었던 듯 합니다. 제대로 된 신을 모신다는 느낌이 들지 않는 사람이었죠. 허주신을 모시고 신기가 이제 좀 떨어져 고민하고 있다는 얘기를 얼핏 들었습니다. 소문은 새 나가죠.


― 조금 더 자세히 말해주시죠. 그게 어떤 의미인가요? 

― 무당은 모시는 신이 있습니다. 쉽게 얘기해서 몸주신과 주장신 그리고 조상신을 모십니다. 그런데 일부 무당은 허주라고 불리는 잡귀 같은 조상신을 모시는 거죠. 잘못된 겁니다. 허주의 신기가 다하면 무당으로서의 능력도 사라지게 됩니다. 확인은 하지 못했지만 법당은 아마도 제대로 된 신을 모신 게 아닐 겁니다. 법당에게 무슨 일이 있습니까? 

― 살해됐습니다. 

― 네? 설화는 크게 놀란 눈치였다. 

― 신효선에게 굿을 의뢰한 사람의 통화 내역을 조사했는데 건물주가 그녀의 번호로 통화를 한 것은 맞더군요. 신효선이 주변 사람들에게 연락해 굿을 준비하기도 했고요. 당일에 굿을 한 사람만 다른 사람이었습니다. 신효선은 숨진지 일주일이 넘은 상태였습니다. 


― 그래서 찾아온 것입니다. 김선호는 말을 계속했다. 

― 굿을 한 사람이 누군지 혹시 짐작이 가는 사람이 있는지요. 연락처를 수소문하고 당시 굿을 하던 사람들을 조사했는데 다들 신효선이 굿을 준비해 달라고 했다고 하네요. 사람들이 그녀의 휴대폰으로 온 문자 메시지를 보여줬습니다. 악사들이나 굿을 준비하는 사람들은 일정대로 온 것이고요. 다들 시간에 맞춰 신효선이 왜 안 오는지 걱정이 됐는데 제시간에 와서 굿을 시작했다고 하더라고요. 악사하고 굿 준비를 해 주는 사람은 그냥 하던 대로 한 것이라고. 일이 끝나고 그녀는 어디론가 사라졌습니다. 다른 인원들은 그곳이 사건 현장이라 정신이 없었고 인적사항을 파악해 놓은 상태로 이후 조사를 진행했습니다. 


― 언론에는 아직 보도가 안 됐는데 사건이 동일한 수법에 의한 연쇄살인일 가능성이 높습니다. 설화는 잠시 생각에 잠겼다. 

― 잠깐 영상을 다시 한 번 보죠. 그녀는 영상을 몰입해서 보기 시작했다. 

― 이게 무슨 굿이죠? 아무래도 좀 이상한데. 무당도 처음 보는데 제가 알기로는 근방에 이 사람은 없어요. 이 굿은 말하자면 저주를 부르는 굿이에요. 하지 말아야 할 굿입니다. 

― 네? 정주현은 큰 소리를 냈다. 

― 보통 기신굿은 사람들이 모여서 수호신에게 복을 빌죠. 의뢰를 받으면 일반적으로 하는 형태입니다. 그런데 지금 이 굿은 아니에요. 기신굿의 형태를 틀어버렸어요. 이렇게 하면 굿을 하는 무당에게도 좋지 않아요. 보통 양밥을 건다고 합니다. 저주와 비슷한 것입니다. 신을 모시는 사람으로서는 절대 해서는 안 되는 겁니다. 

― 그러니까. 쉽게 얘기해서 새 빌라를 산 사람이 복을 기원하는 굿을 해달라고 했는데 중간에 다른 무당이 나타나 타인을 저주하는 굿으로 바꿨다는 것인가요? 

― 말하자면 그래요. 대상이 누구인지는 이것만 봐서는 모르겠네요. 무당은 사람들의 어려움을 해결해주고 복이나 안녕을 기원하는 거죠. 굿이라는 것도 그렇고요. 

― 근처에  무속인들은 사이비나 돈을 벌기 위한 가짜 무당이 아닌 이상 대충은 다 알고 있어요. 이 사람은 교묘하게 마지막에 상대에게 살을 날리고 있는 것으로 보이네요. 김선호와 정주현은 반석동 빌라에서 뭔가 섬뜩한 기운 같은 것을 느꼈던 순간을 떠올렸다. CCTV를 분석하면서도 격정에 찬 무당의 굿에서 이질적인 기분을 느낀 이유가 이것이었던가. 둘은 인사를 하고 차에 올랐다. 

― 별일이 다 있군요. 세상에는. 정주현은 운전을 하며 미심쩍다는 표정을 지었다. 박현민 기자한테서는 연락 없어요? 나름대로 뭐 찾아본다고 하지 않았나요? 

― 글쎄, 나한테도 아직은 연락이 없어...... 뭐 우리한테 얘기해 줄게 있으면 연락을 주겠지. 경찰출신인데. 그냥 있을 것 같지는 않아. 다른 쪽을 뒤지고 있을 것 같은데. 방송을 하려면 우리의 도움도 필요할 테니. 

― 팀장님한테 언제 얘기 하실 거예요?  본격적으로 수사방향을 재 설정해야 하는 것 아닌가요?

― 아직은 아냐. 며칠 더 봐. 물어보면 탐문한다고 얘기해 놔. 조금 더 알아봐야 할 게 있어. 아. 그리고 박현민 기자한테 받은 그 사람 사무실 cctv 신원 확인되면 바로 사건 수사 진행하자고. 

― 너무 흐릿해서 확인이 안 될 수도 있다는데. 정주현은 신호 대기중 창문을 열며 말했다. 

― 팀장한테는 그 신원이 확인된 후에 얘기를 해야 할 것 같아. 안 믿으면 어쩔 수 없는 거고. 일단 움직이자고. 퇴근시간이 가까워서 인지 시내 중심가에는 빠르게 차량이 늘어나고 있었다. 둘은 경찰서로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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