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도라지 도사 Mar 31. 2023

어둠의 동굴을 헤쳐 나가는 끝없이 다정한 분노

하운즈투스 3월의 감독인터뷰와 김승희 감독의〈심심〉(2017)

* 김승희 감독님의 작품은 퍼플레이에서, 독립 애니메이션 감독 컬렉티브 하운즈투스의 월간 인터뷰는 아래에서 관람할 수 있습니다. 

<그려서 만든 세상: 김승희 감독>  http://purplay.co.kr/service/detail.php?id=319

<Houndstooth 3월의 감독인터뷰 아티스트 김승희 작가> https://youtu.be/o7RQxMzJs3w

* 작품 스틸컷은 김승희 감독님의 허락 하에 사용합니다. 감사합니다.



어둠의 동굴을 헤쳐 나가는 끝없이 다정한 분노: 

하운즈투스 3월의 감독인터뷰와 김승희 감독의 〈심심〉(2017) 



애니메이션 컬렉티브 하운즈투스 3월의 인터뷰는 김승희 감독의 재치와 정의로 가득하다. 팟캐스트와 정론적인(?) 인터뷰 사이를 오가는 이 인터뷰에서 작품 이야기는 거들 뿐이다. 감독은 반려견 로빈과 레이븐을 향한 애정을 가득 들려주고 MBTI와 사주, 좋아하는 영화와 라디오, 음악과 같은 TMI에 대해 떠든다. 그 가운데서 마음에 꽂히는 부분은 역시 콜렉티브가 만들어진 계기다. 김승희 감독과 우진 감독이 그동안 겪어 온 부조리한 경험들을 공유하던 대화를 시작으로, 한국 독립 애니메이션 감독 12명이 모여 함께 화내고 으쌰으쌰하는 컬렉티브가 하운즈투스이다. 그렇기에 김승희 감독의 이번 인터뷰는 독립 애니메이션을 함께 하는 동료들에 대한 애정으로 가득하다. 본인 스스로는 더이상 “정의로운 쌍년”이기를 포기했다고 하지만 파괴가 아닌 연대를 목표하기에 그녀는 여전히 정의롭다. “어떻게 하면 우리는 살아남을까?” 김승희는 분노를 뻗어 혁명에 다다른다. 



Seunghee Kim, Simsim (2017), color, sound, 3 min. 30 sec.


사실 초기 작업에서부터 김승희 감독은 다정하게 따스히 분노에서 에너지를 뽑아내는 사람이었다. 그의 두 번째 작품 〈심심〉(2017)은 그러한 점들을 가득 껴안고 있다. 무수한 형태의 부조리와 역경, 무너지는 마음과 저항하는 분노, 함께 끌어안는 돌봄. 작품에서 다뤄지는 가치들은 감독 특유의 경쾌한 그림과 움직임을 통해 관객들에게 전달된다.


동화를 연상시키는 귀엽고 오동통한 캐릭터들과 모험담, 어두운 이야기를 덜어내는 유쾌한 리듬과 자장가처럼 흥얼거리는 따스한 허밍. 색색깔 종이상자, 반짝이는 조약돌로 이뤄진 화면. 동화적인 요소들이 가득 모여있어서 작품을 볼 때면 어릴 때 들었던 노래가 생각나곤 한다. 작품에서 주인공은 수 많은 어려움이 닥치더라도, 역경에 빠져 절망에 갇힌 소중한 존재를 위해 기꺼이 어둠의 동굴에 뛰어 들어 늪을 지나 손을 내민다. “언제나 너를 향한 몸짓엔 수많은 어려움 뿐이지만. 그러나 언제나 굳은 다짐 뿐이죠. 다시 너를 구하고 말거라고. 두 손을 모아 기도 했죠. 끝없는 용기와 지혜 달라고.”


잠시 감독의 첫 작품 〈심경〉을 떠올려 보자. 어느 산 속 커다란 상자에서 고립되어 만화경으로 마음을 들여다 보던 여성. 그 마음 속에서 자유롭게 춤추며 뛰어다니다가도 타오르는 불을 감당하지 못하고 무저갱으로 떨어지던 여성. 결국 그 여성은 끝까지 네모난 세계에 갇혀 혼자 남을까? 불타오르며 가슴을 두들기던 마음, 구불구불한 길을 따라 마음을 들여봐야 하는 상황에서 그 모든 걸 혼자서 오롯이 감내해낼 수 있을까?  〈심심〉은 〈심경〉을 보며 맺히는 질문들에 화답한다. 


여전히 상자 하나는 한 사람만의 방이다. 하지만 〈심심〉에서는 이제 또 다른 상자 인간이 등장하고, 상자는 고정된 정육면체를 벗어나 분리되고 다시 합쳐지기도 한다. 〈심경〉의 상자가 산 속에 홀로 서서 고립되거나 도피할 수 있는 자기만의 방이었다면, 〈심심〉의 상자들은 바깥 세상과의 충돌과 타인과의 연대를 경험한다. 이 작품에서 김승희 감독은 영혼과 마음을 담는 신체를 표현하기 위해 사람이 그려진 상자를 내세운다. 큐브 형태로 만들 수 있는 다양한 물성 가운데서도 종이를 소재로 삼으며 신체의 연약함을 드러낸 것이다. 종이는 외부 환경에 잘 흔들린다. 한편으로는 조각나고 접혀도 다시 이어붙일 수 있고, 종이의 일부를 접거나 다른 종이와 연결하여 여러 형태를 만들 수 있다. 


그렇기에 〈심심〉에서 종이 상자는 가해지는 끊임없는 충격에 튕겨 오르고 흔들리며 조각나고 흩어졌다 접힌다. 그 과정에서 내면을 잘라내어 무기를 찾아내고 서로 의지하며 함께 움직이며 변화하는 방법을 배워간다. 상자 속 사람들은 상처가 남더라도 회복될 수 있는, 곁에 의지할 누군가가 있다면 더욱 강해질 수 있는 우리의 몸과 마음을 담아낸다. 종이의 연약함 안에서 변화무쌍한 회복성을 보여주듯, 종이 상자의 사람들은 단단한 돌멩이들로 형상화되고, 끝내 상자의 형태를 벗어나 서로 합쳐진다. 


〈심심〉은 터질 듯한 절망과 분노가 구원을 위한 원동력이 될 수 있음을 보여주는 작품이다. 그래서 마치 마법 같다. 끝내 자유롭게 하늘을 날아가고 우리 앞에 펼쳐질 세상이 너무나 소중하게 될 여느 노랫말처럼, 함께라면 모든 건 잘 될 것이다. 〈심심〉의 상자 속 사람들도  현실의 우리들도.






김승희 감독님은 인터뷰에서 분노하는 마음에 관한 이야기를 자주 하시고 작품 속 캐릭터들도 매번 분노하는데 언제나 다정하다는 느낌을 받곤하죠. 근래 독립 애니메이션 감독님들의 컬렉티브 하운즈투스에서 객원으로 활동하기 시작했습니다. 매달 하운즈투스의 감독 인터뷰에 맞추어 공부하고 글을 쓰는 것을 목표로 합니다. 애정을 가진 작품에 대해 글을 쓰는 것은 항상 어려운 일이라 3월 초에 올라온 감독님의 인터뷰를 듣고 작품을 보면서 글을 완성시키는 데 한 달이 걸렸습니다. 사실 〈심심〉 작품을 처음 보고 글을 써야겠다 공부를 시작한 것은 2021년 하반기부터였으니 1년 반이 훌쩍 걸렸네요. 무척 게으르긴 하지만 어쨋거나 아슬아슬 3월 세이프! 


역시 내년이면 제 최애작이 바뀔 것 같지만 〈심심〉은 김승희 감독님의 작품 가운데서도 가장 사랑하는 작품입니다. 또 이렇게 말하고 〈심경〉과 〈호랑이와 소〉를 떠올리면 두 작품도 너무 좋아서 견딜 수 없네요. 종이에 그려낸 김승희 감독님의 빼곡한 움직임과 혼자서 크레딧을 가득 차지해버리시는 아름다움을 좋아했는데 2020년대에는 더이상 볼 수 없을 것이라 생각하니 아쉬우면서도 여러 협업과 디지털로 완성될 신작도 기다려집니다.

매거진의 이전글 부러지지 않고 나아가는 방향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