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마 나의 해방 일지를 보며
제 하루 중, 아무도 없는 집에서 커피 한잔과 함께 마루에 누워 하늘에다 이런저런 잡생각을 하는 시간, 그리고 자기 전 드라마 보는 일은 삶의 즐거움 가운데 하나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좋은 커피콩을 만났을 때, 그리고 마음에 쏙 드는 드라마를 만났을 때는 소소한 살맛이 납니다. ㅋㅋㅋ
스카이캐슬이나 최근 시작한 그린 마더스 클럽처럼 입시나 자녀 키우는 이야기를 소재로 한 드라마를 보면서는 당연스레 자녀의 교육 방식에 대해 고민하며 보게 됩니다. 하지만 최근 시작한 드라마 가운데 마음을 확~ 뻬앗긴 '나의 해방 일지' 같은 드라마를 보면서도 등장인물의 부모와 자녀의 관계, 그 언어, 표정들이 제 마음을 잡아 세웁니다.
부모의 상, 부모와 자녀의 관계, 부모 역할 등에 대해 또 다른 시각에서 고민하게 하고, 소름 끼치도록 부모의 모습을 스미듯 닮아가는 그 자녀의 모습을 보며 충분히 설득될 뿐 아니라, 부모의 엄청난 영향력에 대해 또 한 번 생각해보게 됩니다.
얼마 전 끝난 ‘스물다섯 스물하나’를 보면서도 저런 엄마 아래서 저렇게 밝은 나희도가 가능하다고? 설득력이 떨어진다 생각하려던 즈음, 회상신을 보며 나희도의 아빠가 드리운 밝은 그늘의 반짝임을 확인하며 연유를 찾았다며 무릎을 치며 보게 되는 뭐, 그런 ㅋㅋㅋ
'나의 해방 일지'는 이제 Episode6까지 나왔는데, 드라마가 너무 재미있어서 찾아보다 보니 아이유와 이선균이 나왔던 “나의 아저씨”를 쓴 박해영이라는 작가분이 쓴 드라마였네요. 역시~
이야기는 계란의 흰자위(노른자는 서울을 말함) 저 끄트머리라고 표현하는 경기도 한 시골에서 서울로 출퇴근을 하며 직장생활을 하는 삼 남매와 그들의 부모, 그리고 그 마을에 온 미스터리한 구 씨와 그 주변 인물들의 이야기입니다.
이야기 전반에 깔려있는 커다란 무게감의 침묵이, 큰 메시지를 주는 드라마입니다.
침묵으로도
충분히
메시지를 더 숨 막히게 전달할 수 있다는 것
을 등장인물들과 특히 구 씨(손석구 배우)를 통해서 느낄 수 있는 신선한 드라마입니다.
이 드라마 안에서 삼 남매와 그들의 부모를 보며 그 줄듯 말듯한 어색한 사랑에 한없이 안타까워지기도 하고, 그 결핍을 원동력 삼아 삼 남매가 어딘가에서 결핍을 채우고, 성장하길 바라게 됩니다. ㅋㅋㅋ
주인공 삼 남매의 아버지 천호진과 어머니는 항상 무표정하고, 심지어 살짝 화난 듯한 표정으로 묵묵히 자신의 할 일을 하며 삶을 살아내는 그저 평범한 부모입니다. 그런데 그 삼 남매가 겪는 그들의 20대는 참 호락호락하지 않습니다. 왕복 네 시간의 출퇴근으로 육체적으로 지치고, 주말이면 쉬지도 못하고 부모님의 농사일을 도와야 하고, 집안 형편 또한 그리 넉넉하지 않아 보입니다.
그런데 그 모든 일상보다 이들을 더 숨 막히게 하는 것은 삼 남매의 영혼에 숭숭 뚫려버린 구멍들입니다. 부모의 사랑이 온전히, 오해 없이, 자~~ 알, 자식에게 전달되어야 하건만, 그 마음들은 침묵하는 밥상 위 숟가락에 담겨 그저 목구멍으로 꿀꺽 삼켜져 흔적도 없이 사라져 버리거나, 고추밭고랑 사이사이에서 허공으로 하염없이 날아가버리는 듯 보입니다.
그래서 더 아프고, 보고 있으면 짠하면서 어딘가 한구석 나의 이야기 같다는 생각을 하며 빠져들게 됩니다.
삼 남매의 직장은, 일류는 아니지만 그래도 번듯할 뿐 아니라(사회적으로), 외모적으로도 충분히 출중합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매사 자신이 없습니다. 스스로 사랑에 적극적이기보다는 선택받는 사랑을 소심하게 갈구하거나,
누군가에게 미움받지 않기 위해
늘 침묵과 미소로 일관하며 자신을 감춥니다.
그나마 삼 남매 가운데 조금 밝은 것이 아들인데 늘 아버지와 정면돌파를 해 처참히 깨지며 아버지로부터 인정받지 못하는 삶을 이따금 확인하곤 합니다.
이 세상에 자식을 사랑하지 않는 부모는 없습니다.
주인공들의 아버지 천호진이 침묵으로 숨 막힐 듯한 식사 자리에서, 너무나도 솔직한 발언으로 도발하는 아들, 이민기에게 눈을 흘기며 염려의 말들로 구박과 비난을 쏟아내곤 합니다. 그럴 때면 아버지는 자신의 사랑을 철저히 감추는 데 익숙한 나머지 자식을 향한 마음을 절대 보여주지 않습니다. 참 씁쓸해집니다. 그가 자식들을 얼마나 염려하고, 얼마나 걱정하는지, 누구보다 잘되길 바란다는 것이 뻔히 보이지만, 그 마음은 꽁꽁 싸매져 매일 밭일을 하며 흙속에 파묻어 버리고, 늘 인정받지 못한 자식들의 마음 또한 어딘가에서 갈구하게 될 사랑의 빈자리로 커져만 갑니다. 또한 이제는 부모로부터 그 마음을 채우기에는 이미 커 버려 더 이상 부모로부터 채울 것이 별로 없어 보입니다.
하지만 내 마음을 누군가로부터 채우려 할 때, 나도 모르게 부모로부터 배운 방식이 몸에서 스며 나와 슬픕니다.
자식들이 부모로부터 배운 사랑의 방식은
그저 침묵으로 일관해
더 이상 문제를 만들지 않거나,
미워하지 않을 만큼의 관계를 유지하는 것
그렇게 부모의 꼭꼭 감춘 사랑을 보며 자란 삼 남매는 똑같이 자신을 감추기에 바쁩니다. 싫은 마음을 괜찮은 척 감추고, 화난 마음을 괜찮은 척 무표정하게 숨깁니다.
자존감은 막걸리 마시듯 꿀꺽꿀꺽 삼켜 몸속 어디 구석에 처박아버리고, 자신감은 내가 가져야 하는 것이 아닌 남들의 이야기라고 치부합니다. 그로 인해 늘 채워지지 않는 허한 마음을 허공에조차 소리치지 못한 채 소리 없는 방황을 하며 살아갑니다.
똑같은 모습일 수는 없겠지만, 세상의 모든 자녀들이 허리가 굽은 나의 부모를 떠올리며 씁쓸해지는 저만의 순간들이 오버랩되어 장면 장면이 더 안타까워집니다. 또한 내 부모의 그늘이 얼마나 어두웠는지 미처 깨닫지 못하다가 내 자식을 낳고 그제야 느끼게 되는 좌절감, 원망감.
그래도 용기 내어, 내가 지닌 그늘을 내 아이에게 드리우고 싶지 않기에, 나는 좀 더 덜 어둡게 삶을 바라보는 모습을 보여 주겠노라 다짐하며 내 자식에게 물려줄 업그레이드 버전을 위해 많은 젊은?(나와 비슷한 세대) 부모들이 애씁니다.
기존 세대의 부모 대부분이 보여준 사랑의 방식은 그 마음을 깨닫고, 이해하기까지 꽤나 오랜 시간이 걸립니다. 특히 아버지들은 더 그렇습니다. 내가 부모로부터 받고도 알아차리지 못했던 그 사랑은 오해가 너무 많은 사랑의 방식임을 알기에 내 사랑을 자녀에게 온전히, 어떻게 주어야 할지 고민하며 책으로, 유튜브로, 영화로, TV로 배웁니다.
내 부모로부터 경험한 사랑의 방식이 못내 아쉬워 나는 더 나은 방식으로 사랑을 표현해 보고자 애써보지만 몸에 스미듯 배어있는 방식이 아니기에 참 어색합니다.
자연스레 내 기억에, 내 마음에 새겨진 익숙한 사랑의 방식이 아니기에 상대에게 어떻게 표현해야 하는지, 자녀에게 어떻게 표현해야 하는지 여전히 어렵지만, 그런 채로 살아갈 수는 없기에 해방을 꿈꾸고, 내 자녀가 해방된 채 살아가길 간절히 바랍니다.
아마도 자식들이 굶지 않고, 풍족하게 살게 하는 것이 부모의 최선이라 여기던 부모 세대 버전에서 좀 더 향상된 버전으로
아이들이 사랑을 온전히 전해받고, 마땅히 존중받으며, 비록 경제적으로는 부족하더라도 항상 당당하게, 자신감 있게 살아갈 수 있도록 노력하는 것이 현재의 부모들의 과제일지도 모릅니다.
가끔 주변에서 타인의 시선을 크게 의식하지 않고, 행동함에 있어서도 늘 자신감이 넘치는 사람들을 봅니다. 무례하지 않되 거침이 없고, 오만하지 않되 자신감에 차 있고, 타인을 배려하되 주도적인 사람들을 발견합니다. 이런 이들은 타인에게 부탁을 하거나, 신세를 질까 봐 눈치 보고, 주저하는 저 같은 사람과는 다르게 기꺼이 신세를 지고, 유쾌하게 감사할 줄 압니다. 그럴 때면 ‘저렇게도 할 수 있구나’를 느끼며 내가 어떤지를 다시 한번 돌아보게도 합니다.
내가 진심으로 원하는 것을 감추고, 겉으로 늘 안전한 쪽을 선택하는 ‘그저 좋은 사람이려고만 하는’ ‘그저 욕먹지 않고, 튀지 않으려는…’ 그런 사람들에게서는 볼 수 없는 자존감이 그들에게는 있습니다.
아마도 남에게 신세 지지 않고, 피해 주지 않고, 쓴소리 듣지 않도록 배려해야 한다고 늘 주의를 받고 자라 그저 ‘괜찮아요’ ‘ 다 좋아요’ ‘아무거나 상관없어요’가 나도 모르게 튀어나오고 눈치 보는 것에 익숙하다는 것을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고, 그제야 스스로 알아차렸습니다. 그리고 그 틀을 깨야한다는 것을 인정하고 조금씩 주변의 건강한 사람들, 배우자, 자식을 보며 계속 배워나갑니다. 그리고 내 자녀가 같은 모습으로 힘들어하지 않길 바라며 노력에 속도를 냅니다.
아마도 그런 마음들이 투영되어 내 아이는 듬뿍 사랑을 받고 자랐으면 하는 마음,
그리고 그 사랑의 마음이
왜곡되지 않고 따뜻하게 가서 닿길 바라는 마음
그 안에서 아이가 원하는 것과 그렇지 않은 것을 솔직하게 말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주고자 저 또한 부단히 애썼는지도 모르겠습니다.
물론 내가 그렇게 자라지 못해 어떤 구석들은 서툴고, 부족했겠지만, 16살 아이는 자신이 원하는 것을 당당히 요구할 줄 알고(물론, 좀 더 예의 있게 말하는 걸 더 배워야 할 듯요 ㅋㅋㅋ), 타인이 원하는 것에 대해 유쾌하게 받아들이거나, 무례하지 않게 거절할 줄 아는 사람으로 커가고 있겠지요.
어렸을 때 유복하게, 그리고 부모의 사랑과 애정 표현들을 건강한 방식으로 듬뿍듬뿍 받고 자란 경우들은 성인이 되어서도 타인과 관계를 맺고, 그 안에서 마음을 주고받음에 있어 비교적 매끄러운 편입니다. 그만큼 사랑을 주는 것에도 거리낌이 없고, 사랑을 받는 데 있어서도 벽이 없다고 느끼곤 합니다.
드라마 속 삼 남매는 충분히 사랑받아 마땅하고, 충분히 빛나는 존재 이건만 자신감은 마음속 깊이 꼭꼭 눌러 숨도 못 쉬도록 하거나, 내가 누군가에게 선택받지 못하는 것에 대해 뒤에서 늘 툴툴거리며 방어를 하거나, 그저 친절하게 꾹꾹 참으며 자신을 감추기에 바쁜 그들을 보며 안타깝고, 제목처럼 그들이 해방하는 순간을 열렬히 응원하게 만듭니다. 제목처럼 언젠가 해방을 하겠지요?
그들은 건강한 연애를 통해 온전한 사랑을 받는 것의 즐거움, 조건 없는 사랑을 받아도 된다는 경험, 그리고 내 마음을 오롯이 표현해도 안전하다는 것들을 경험하겠지요. 물론 상대에 따라 그 마음이 받아들여지기도 하고, 때론 거절당하기도 하며 시행착오들을 겪겠지요. 그리고 최대한 나의 빈 구석들이 채워질 건강한 사람을 만나 결혼을 하고, 자녀를 낳으며 배우자로부터 온전한 사랑을 주고받는 경험을 하고, 자녀에게 또 온전한 사랑을 퍼부으며 부모로부터 느꼈던 빈자리와 결핍들을 채우고, 마음을 충만히 채워가거나 혹은 배우자로부터 그러지 못해 다시 부모와 겪었던 그 쓴 마음들을 겪어야 할지도 모릅니다.
암튼… 이런 드라마를 보면서도 자꾸 부모의 사랑, 자식이 느끼는 사랑이 눈에 들어옵니다. 그리고 제 블로그에 항상 비밀 댓글로 모든 글들에 한 번도 빠짐없이! 한결같이! 댓글을 달아주는 남편을 보며, 그것을 저는 사랑이라고 읽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