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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준규네 홈스쿨 Mar 28. 2022

아침마다 학교 가기 싫다는 아이

초등생활 가이드 #6


매일 아침, 등교와 씨름해야 하는 아이


유치원에서 환경이 크게 바뀐 아이들은 학교에 갈 때마다 긴장을 합니다. 약간의 긴장은 행동과 말 끝에 신경을 쓰기 마련이라 그리 나쁜 것만은 않을 테지요. 아이들은 워낙 적응이 빨라 하루 이틀 세상이 무너질 듯 울었 다가도 예쁜 선생님이 좋아서, 반 친구랑 놀고 싶어서, 학교에서 나오는 밥이 맛있어서 그것들을 핑계 삼아 학교 가는 재미를 붙이기도 합니다. 물론 요즘은 코로나로 인해 학교에서 쉬는 시간, 자유롭게 노는 것들에 제한적이라 안타깝기는 합니다. 어쨌건 그렇게 재미를 붙이며 적응을 할만한 3개월쯤 지나면 이내 방학이 옵니다.


그런 가운데에서도 그 긴장도가 줄어들지 않고 심해지는 아이들도 적지 않습니다. 밤마다 오줌을 싸는 아이, 등교시간마다 우는 아이, 교문 앞에서 엄마 손을 붙잡고 못 놓는 아이, 학교 가기 싫다고 해서 이유를 물어보면 엄마가 보고 싶다는 아이 등등 아이들의 반응은 예측 불가능합니다.


그러고 보면 내 아이가 매일 아침 일어나 세수하고 밥 먹고 당연하다는 듯이 학교에 가는 일이 대단하고 기특하다 느껴지기도 합니다.


학교를 보내야 하는 아침마다 매끄럽지 못하고, 난감한 일들이 계속 생긴다면 이건 아이가 보내는 신호이기도 합니다. 이런 신호들은 무게에 따라 때로는 진지하게 공감해줘야 하기도 하고, 때로는 대수롭지 않게 여기는 모습을 보여줘 담대해지도록 도와줄 필요가 있겠지요.


낯선 환경에 대한 불안도가 높아 적응까지 시간이 걸리는 아이일 수도 있고,

자기 조절이 서툴어 수업 시간 내내 앉아 있는 자체가 힘든 아이일 수도 있고,

엄마와의 애착형성이 불안정해 엄마가 학교 앞에서 손을 놓고 사라지는 모습이 불안해서일 수도 있고,

수줍음이 많아 점심시간 누구 옆에 앉아 먹어야 하는지 고민이 되어서 일 수도 있습니다.

혹은 자신이 하는 행동 하나하나마다 선생님에게 지적받거나 혼나거나 어떻게 해야 칭찬받고 잘할 수 있는지 아직 알아차리지 못해 속상해서이기도 합니다.



제 세 살 아래 여동생도 초등학교 입학하고 아침만 되면 학교 가기 싫다고 울어서 아빠가 백 원짜리 동전을 쥐어 보냈던 기억이 납니다.

얼마 전 그때 왜 그랬던 거냐고 궁금해 물으니 재미도 없고, 친한 친구도 없고, 선생님은 혼내거나 아예 관심조차 안 주거 나인데 자꾸 가라고 하니 너무 싫었었던 거였다고 이야기하더군요.


그만큼 아이들은 학기초 그 그룹 안에서 친구도 만들어야 하고, 선생님에게도 잘 보여야 하고, 선생님이 시킨 것들을 잘 해내기 위해 하루하루 긴장하고 애쓰고 있답니다.


저도 유치원과 초등학교 때 준규에게 매일 아침 용기를 한 주먹씩 주었던 기억이 있습니다. 이 아이는 완벽 성향이 심하고 자신이 실수를 하거나 지적받는 것에 대해 받아들이기 힘들어하는 아이였습니다. 선생님이 뭔가 발표할 사람을 물으면 매번 손을 들지만 자기 차례가 여러 번 오지 못하는 것에 대해서도 좀 더 예민하게 받아들이는 친구였어요. 승부욕이 워낙 강하고 인정 욕구 또한 강한 아이였기 때문이겠지요. 또한 친구가 어떤 룰을 어기고 나왔을 때 그것에 대해 양보 대신 더 큰 부딪힘으로 맞서는 아이였지요. 선생님께는 자꾸 혼나고, 낯선 곳에서 칭찬받고 주목받고 싶은 욕구는 강한데 잘 되지 않으니 지치고 힘들었을 테지요.


그렇게 아이들은 매일 아침 엄마의 따뜻한 밥과 따뜻한 용기 한주먹씩 받아 들고 학교로 향한답니다. 하교해서 돌아온 아이에게 사랑이 가득한 눈빛을 담아 오늘 하루 애썼다, 오늘 하루 신나게 놀았니, 아침 일찍 시간 맞춰 학교 가는 모습이 멋지네 라며 듬뿍 애정과 칭찬을 쏟아야 다음날 또 일어날 힘이 생기겠지요. 그리고 그런 엄마에게 학교에서 힘들었던 것, 속상했던 일들에 대해 이야기하며 털어낼 수도 있겠지요. 남편들도 아마 매일 퇴근해서 왔을 때 이렇게 대해주길 바라겠지요? 아내들도 남편들이 그렇게 대해주길 바랄 테고요^^




다음은 제가 좋아하는 교육서 장 자크 루소의 책 [에밀]에서 발췌한 부분입니다. 아이의 울음과 관련된, 용기와 관련된 이야기라 첨부해보니 천천히 읽어보시길요^^


신체와 감각훈련-5살에서 12살


말을 하게 되자 아이는 우는 일이 적어진다. 이것은 자연적인 진보이다. 하나의 언어가 다른 언어로 바뀐 것이다. 말을 사용하여 고통을 알릴 수 있는데 무엇 때문에 울음소리를 지르겠는가, 하긴 고통이 너무 심하여 말로 표현하기 어려운 때는 별문제이다. 이 시기가 되어서까지도 아이가 울기만 한다면 그것은 아이의 주위에 있는 사람들의 잘못이다. 아이들은 일단 ‘아프다’라는 말을 배우게 되면 웬만큼 격심한 고통을 느끼지 않는 한 울지 않을 것이다.


아이가 허약하고 섬세하여 천성이 울기를 잘하는 경우에도 울어봐야 아무런 소용이 없고 이득도 없다는 것을 알게 함으로써 눈물의 근원을 끊을 수 있을 것이다. 나는 아이가 울고 있는 동안은 가까이 가지 않는다. 울음을 그치면 당장에 가 준다. 마침내 그가 나를 부르고 싶으면 울음을 그치든지 기껏해야 한 번만 소리를 지르든지 하게 될 것이다. 여러 가지 징조가 나타내는 효과가 눈에 띄게 될 때 아이는 그 징조가 뜻하는 의미를 판단한다. 아이에게는 그 이외의 다른 약속은 없다.


아무리 격심한 고통을 받았을 경우에도 아이 혼자 있고 들어 줄 사람이 없다는 것을 알게 되면 그 아이는 좀처럼 울지 않는다.


아이가 넘어지거나 머리를 부딪쳐서 혹을 만들고, 코피를 쏟고, 손을 베도, 나는 당황해서 아이 곁으로 뛰어가는 일 없이 적어도 잠시 동안은 침착하게 아이를 지켜본다. 재난은 이미 일어난 것이다. 아이는 필연적으로 올 고통을 참아야 한다. 내가 서두르고 당황하면 아이에게 더 겁을 주고 감수성을 자극하는 결과가 된다. 사실 상처를 입었을 때 고통을 주는 것은, 그 상처가 아니고 오히려 겁을 먹은 마음이다. 내가 그 상처를 어떻게 생각하느냐에 따라서 그 아이는 판단을 내릴 것이다. 내가 걱정하며 달려가서 달래거나 가엾게 생각하면 그는 자기가 무척 심하게 다쳤다고 생각할 것이다. 내가 냉정을 유지하면 아이도 마침내 냉정한 태도를 취하다가 통증이 멎으면 다 나았구나 생각할 것이다.


아이는 이 시기에 처음으로 용기를 갖는 것을 배우게 되고, 조그마한 고통을 무서워하지 않고 참은 결과, 앞으로 닥쳐올 더 큰 고통을 이겨내는 방법을 배우게 된다.


나는 에밀(아이들을 지칭)이 다치지 않도록 주의를 기울이는 일 따위는 하지 않을 것이다. 오히려 그가 한 번도 상처를 입지 않아서 고통이 무엇인지 모르고 자란다면 이것은 매우 난처한 일이라고 생각한다.. 괴로워하는 것이야말로 그가 어떤 무엇보다도 먼저 배워야 할 일이며 이것을 안다는 것이야말로 앞으로 가장 필요한 일이다. 아이의 눈이 작고 약한 것은 그런 중요한 교훈을 위험성 없이 배우게 하기 위해서가 아닐까.


… 중략…


하루 백 번 넘어져도 상관없다. 그것은 매우 좋은 일이다. 그만큼 일어나는 것을 빨래 배우는 결과가 된다. 쾌적한 자유는 많은 상처를 고쳐 준다. 내 제자는 자주 다치겠지만 그래도 항상 쾌활할 것이다. 당신들의 제자는 그만큼은 다치지 않을지 모르겠으나 항상 의지를 꺾이고, 항상 속박당하고, 항상 슬픈 얼굴을 하고 있을 것이다. 그런 제자가 더 나을까.


또 하나의 진보가 아이를 덜 울게 만든다. 힘이 붙는 것이다. 자기 혼자서 많은 일을 할 수 있게 되면 아이는 그때부터 타인의 원조를 구할 필요가 없게 된다. 힘과 함께 그것을 올바르게 사용하는 지식도 발달한다. 여기서부터 제2의 단계가, 정확히 말해서 개인의 생활이 시작된다. 이때부터 사람은 자기 자신을 의식하게 된다. 기억은 매 순간의 삶이 자신의 것임에 틀림없다는 감정을 갖게 한다. 그는 진정으로 한 인간이 되고 비로소 행복, 또는 불행을 느끼게 된다. 그래서 이제부터는 그를 정신적인 한 존재로 생각할 필요가 있다.


<장 자크 루소의 에밀 p. 71~7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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