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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마음 수련

요가원에는 거울이 없다.

by 틔우머
요가원에는 거울이 없다.jpg

최근 두 번째 마음(@another_mind_lab )에서 내 몸의 역사를 돌아봤다. 지금까지 몸에 대해 가지고 있던 기억의 대부분은 감각이 아닌 누군가의 말이었다. 그 말들은 나를 바라보는 거울 역할을 하였고, 어느새 왜곡된 시선으로 스스로를 바라보고 있었다.


본래 운동을 좋아하지 않았다. 필라테스, 특공무술, 헬스, 스피닝 등 여러 운동을 시도했으나 오래가지 못했다. 운동 시설에 있는 거울을 보며 내 몸의 상태, 잘하고 있는지의 여부를 객관적으로 확인하곤 했다. 그러나 거울 속의 나는 늘 잘 못했기에 어떤 운동을 해도 재미가 없었는지도 모르겠다.


거울은 나보다는 타인을 바라보게 했다. 좋아하는 춤을 출 때도, 거울 속 선생님을 따라 '최대한 비슷하게' 동작을 맞추려 애썼다. 라틴계 선생님에게 춤을 배운 적이 있었는데, 그 선생님은 서 있을 때도 엉덩이를 흔드는, 그야말로 춤이 삶인 사람이었다. 선생님에게 잘 춘다고 인정받고 싶었던 나는, 집에서도 수시로 거울을 보면서 춤을 췄다. 내 느낌이 아닌, 그녀의 느낌을 똑같이 살리려고 노력하면서 말이다. 춤은 나에게 해방의 도구이기도 했지만, 과거의 나에겐 모방에 가까웠다. 동작, 춤선, 느낌 모두 누군가의 복제본이었다.


그러다 요가를 시작하게 되었다. 신기한 건 가는 요가원마다 거울이 없었다는 것이다. 처음엔 '운동하는 곳에 거울이 없어도 되나?'라는 생각이 들었지만, 어느새 거울이 없는 환경이 편하게 느껴졌다. 그제야 타인만 바라보고 있던 시선을 나에게로 돌릴 수 있었다. '오늘은 허리가 뻐근하게 느껴지는구나, 비 오는 날은 골반을 더 풀어줘야겠다' 찬찬히 몸이 말하는 소리에 귀 기울이게 되었다. 때론 내면의 거울이 내 안의 감정을 비춰주기도 했다. '위험해. 너 저 동작 아직 못할걸?'이라고 생각하는 두려움 앞에 서 있다가도, 선생님들의 손길만 닿으면 동작이 가능해지는 마법을 느끼곤 했다. 이처럼 내 안의 믿음을 깨부수는 경험들을 하면서 차츰차츰 내 안의 가능성을 엿보게 되었다.


그렇게 거울 없는 요가원에서 나는 '진짜 나'를 만나게 되었다. 외부를 바라보는 거울이 아닌, 있는 그대로의 내 몸과 마음을 마주하게 되었다. 나의 감각, 느낌, 감정, 생각 모두. 어느 날은 몸이 원했던 눈물이 흘러나오기도, 어느 날은 동작을 해내려고 애쓰는 나를 발견하기도, 또 어느 날은 동작의 결과만을 향한 채 과정을 대충 넘기려는 나를 보기도 했다. "모든 과정을 정성스럽게 해 보세요. 매트 위에서의 도전이 삶으로 이어지게 해 보세요" 선생님들이 해주시는 말씀 하나하나가 내 호흡, 근육, 몸의 구석구석에 서서히 녹아들었다.


여전히 유연성이 없어 못하는 동작도 많고, 머리서기의 두려움을 이겨내지 못한 상태이긴 하다. 그렇지만 꾸준히 하다 보니 힘이 길러지고 가능한 동작도 생겼다. 요가는 내면의 거울이 되어 끊임없이 나를 비춰주면서 '지금의 나'를 받아들이게 했다. '오늘은 잘 안되는구나, 어? 이제 조금씩 되네? 사실, 무서웠구나' 내 몸의 컨디션에 따라 가끔은 낯선 도전을 탐험하고 가끔은 뒤로 물러서면서 나만의 작은 실험들을 해나갔다.


그 도전이 일상에서도 힘을 발휘하게 되었다. 속도가 느리더라도 꾸준히 무언가를 해보고 싶은 마음을 가지게 했다. 실패하더라도 다시 시도하는 용기를 가지게 했다. 습관적으로 밖을 향하는 마음들을 내 안으로 돌려서 나와 대화하게 했다. 이처럼 요가는 결과보단 과정에 머무르게 한다.


우리는 매일 거울로 '바깥의 나'를 바라보고 있지만, 정말 필요한 건 '그 너머의 진짜 나'를 만나는 내면의 거울이지 않을까. 거울 없는 공간에서 난 '진짜 나'를 만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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