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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마음 수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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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틔우머 Aug 09. 2024

불확실한 삶, 온기로 버티기

숨쉬는고래 명상지도자 과정에서

"눈을 감고 걷습니다." 걷기 명상 시간이었다. 평소처럼 눈을 뜨며 걷되, 발의 감각 하나하나에 주의를 기울일 거라 생각했다. 하지만 이번 명상에선 조건이 하나 붙었다. 눈을 감기. 벽 옆에 모두 한 줄로 서서 눈을 감고 걸었다. 각자의 속도가 다 다르다 보니, 앞뒤 선생님들과 살짝씩 부딪치기 시작했다. 그때마다 내 몸은 '아이코' 놀래며 움츠러들었다.


 분명히 벽을 짚으며 걸었는데, 어느 순간 벽이 어디 있는지 알 수 없었다. 손으로 이리저리 휘적거려 보았지만, 찾을 수 없었다. 무서웠다. 의지할 곳 하나 없이 걸어야 한다는 게. 안전하다는 걸 알면서도, 어떤 일이 벌어질지 모른다는 원초적인 두려운 마음도 올라왔다.


 하지만 계속 걸어야 했다. 안정감을 주는 벽이 없다고 해서 걸음을 멈출 순 없었다. 무언가, 누군가 부딪칠 수 있는 상황을 그대로 받아들이기로 했다. 그저 발이 이끄는 대로 한 걸음씩 내디뎠다. 근데 왜일까, '예측할 수 없음'을 받아들이니 이상하게 자유로워졌다. 벽과 부딪치면 '아, 벽이구나'하고 다른 방향으로 걸음을 돌렸고, 일부러 익숙하지 않은 쪽으로 걸어보기도 했다.


 그러나 내 몸과 마음은 여전히 경직되고 조심스러운 상태였다. 탁-. 그 순간 어떤 선생님과 부딪쳤다. 선생님은 내 마음을 알기라도 한 듯이 내 팔을 다정하게 감싸줬다. 그 따뜻했던 온기가 두려움으로 단단하게 굳어있던 나를 녹여줬다. 뜨거운 눈물이 흘러내리기 시작했다. 처음 누군가와 부딪쳤을 때 화들짝 놀라며 피했던 나였다. 혹시나 불편함을 줄까 봐 몸을 사렸던 나였다. 그런 나에게 그럴 필요 없다고, 괜찮다고 말하는 듯했다.


 그 후로도 마주치던 여러 선생님이 저마다의 온기를 나눠줬다. 손을 잡아주기도 팔을 감싸주기도 했다. 용기가 생겼다. 내가 받은 이 온기를 나눠주고 싶어졌다. 조심스럽지만 마주치는 선생님들의 손이나 팔을 온 마음 다해 잡았다. 누군가 우는 사람이 있으면 그가 괜찮아지기를 기도하며 마음으로 사랑을 보냈다.


 불확실하고 두려웠던 그 공간이 안전하고 따뜻한 공간이라는 걸 알게 되자, 어둠 속에 있는데도 몸과 마음은 환한 빛으로 채워졌다. 각자가 나눠준 온기 덕분에 용기 내어 끝까지 걸을 수 있었다. 사람들이 나를 스쳐 지나가도 괜찮았다. 지나가면서 잠시 머무르는 그 존재의 온기만으로도 힘을 받았다.


-

 문득 이 경험이 삶에서의 나와 다르지 않을 거란 생각이 들었다. 늘 불확실한 미래를 불안해하고 두려워했으니까. 무언가 해야 할 일들을 끊임없이 생각하고, 뭐라도 하지 않으면 뒤처질 것 같은 불안함을 느끼곤 했다. 내 앞에 벽을 만나면 다른 길로 갈 수도 있는데, 어떻게 해야 할까? 붙잡고만 있었다.


 사람과의 관계나 사랑에서도 마찬가지였다. 혹시나 나와는 다른 마음이지 않을까, 불편해하진 않을까, 내가 상처받진 않을까 두려워하며 쉽게 움츠러들곤 했다. 모든 인연이 자연스레 오고 간다는 걸 알면서도 이별은 여전히 못 견뎌했다. 마음속엔 떠나는 사람들을 붙잡고만 있는 내가 있었다.


걷기 명상에서 경험했던 것처럼, 삶에선 불확실하고 알 수 없는 것들을 견뎌야 하는 상황이 연속적으로 온다. 가끔은 망망대해에 홀로 서 있는 것처럼 외롭고 무서울 때도 있다. 도무지 무너지지 않을 것만 같은 벽을 만나면 무력감을 느낄 때도 있다.


 그러나 삶은 언제나 그렇듯, 어둠이 있으면 빛을 보여준다. 지금이 영원하지 않다는 걸 알려준다. 묵묵히 견디다 보면 견고해 보였던 그 벽이 무너질 때도 있고, 다른 방향으로 틀었을 때 더 나은 길이 있다는 걸 알려주기도 한다. 누군가는 오고 누군가는 떠나더라도, 그들이 머물렀던 온기만으로 살아갈 힘을 얻기도 한다.


 앞으로 무슨 일이 벌어질진 아무도 모른다. 불확실한 미래에 자꾸만 불안해질 때면 그저 내 발이 이끄는 대로, 한 걸음씩 내디디면 된다. 그 과정에서 오히려 '모름에서 오는 자유로움'을 느낄 수도 있다.


 홀로 외딴섬처럼 느껴질 때면 내 곁에 머물렀던 온기들을 기억해 본다. 그 존재들을 마음속 지지대로 삼으면서 다시 내 길을 걸어가 본다. 다시 사람에게 다가가 본다. 그렇게 한 걸음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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