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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랑지 Aug 08. 2023

생일날 만큼은 차려주는 밥상 받기

가족 중 누군가가 생일을 맞이하면 나머지 구성원이 그날 아침 생일상을 차려주기 시작했다. 언제부터 그랬는지 기억은 나지 않지만 지금까지 꽤 잘 이어오는 전통이 되었다. 고가의 선물을 할 경제력이 없기도 하거니와 정서상 돈보다는 정성이 깃든 무언가를 대신하는 것이 더 의미 있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돈을 대신하려면 몸이 움직여야 하고 시간도 꽤 많이 든다. 쉽지 않다. 업어가도 모를 정도로 깊은 잠을 자는 두 딸들은 아빠와 엄마 생일날 만큼은 먼저 일어나 조용히 계란말이를 만들고 미역국을 끓였었다. 


생일상이라고 해봐야 하나도 거창하지 않다. 밥과 미역국이 전부지만 오롯이 생일자를 위한 밥상을 차린다. 준비하는 손길을 생각하면 마음이 갸륵하고 따스한 정이 더 깊게 와닿는다. 하필 엄마 생일이 한 여름이라 이번에도 두 딸은 새벽부터 땀을 흘려가며 미역국을 끓이고 분주하게 달그락 거린다. 주방일이 익숙한 주부가 아니라서 밥과 국 반찬 몇 가지 놓는데만 한 시간이 걸린다. 냉장고문이 열렸다 닫혔다를 몇 번 하다 보면 내 엉덩이는 들썩거리지만 그래도 꾹 참는다. 


차려진 밥상은 안빈낙도의 삶을 사는 고승의 밥상처럼 단출하다. 전날 내가 만들어놓은 반찬이 있느냐 없느냐에 따라 내 밥상이 풍성하거나 빈약하기도 하지만 참기름 냄새 고소하게 풍기는 미역국에 밥 한 그릇 말아서 먹으면 세상 부러울 게 없다. 


살아가면서 기념일은 꼭 챙겨야 한다고 생각했는데 먹고사는데 바빠 소홀히 했다. 살아갈수록  더더욱 무뎌진 삶의 감성들은 생일날 무언가를 주고받는데 익숙하지 않고 밥 한 끼 먹는 것으로 퉁쳐지곤 했다. 


일 년 365일 무뎌진 삶을 살아가는 우리에게 생일날 하루쯤은 원하는 감성으로 보내는 것도 좋을 것 같은데 이마저도 쉽지 않은 성격이다. 이번 생일에는 큰맘 먹고  평소 가보지 않은 근사한 곳에서 식사를 하고 싶어서 강변의 한 호텔을 알아봤다. 하지만 막상 생일 전날 가성비를 따지며 친정 엄마를 모시고 에어컨 빵빵한 곳에서 식사를 했다. 


'나 혼자 산다'에 출연하는 기안 84는 평소 자기가 좋아하는 라이딩을 하곤 하는데, 이제 40이 된 그는 삶이 무뎌진다고 생각할 때마다 라이딩을 하곤 한다. 바람을 맞으며 자연의 냄새를 맡고 스피드를 즐기는 그 순간 감성이 촉촉해진다고 말이다. 


누군가가 그랬다. 생일날만 기뻐할 것이 아니라 매일 생일처럼 살라고. 매일이 생일처럼 기쁠 수 없지만, 매일이 생일처럼 특별하고 감사하며 살라는 말일 것이다.  


나는 라이딩을 할 수 없지만 내 감성을 살릴 수 있는 것을 만들어서 생일날 만큼이라도 촉촉하고 감성 터지는 날을 만들어 보리라. 



남편_밥, 큰딸_미역국, 작은딸_상차림


제목사진출처_다음카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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