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에서 남학생으로 산다는 것은 고단한 일이다. 대단할 것도 없고, 잘 울고, 소극적이고, 상처에 예민한 것은 모든 아이가 가진 속성이다. 하지만 남학생들에게 이런 것들은 용납되지 않는다.
늘 남들보다 대단해야 하고, 힘든 일이 었어도 울면 안 된다. 활발해야만 남자다운 것이며, 남자기 때문에 다소 상처 받아도 된다. 남학생들은 이것이 가혹하다고 말하지 못한다. 남자답지 않기 때문이다. 이렇게 남학생들은 아이도 아니고 남자도 아닌 어중간한 위치에서, 아이답지도 못하고 남자답지도 못해 괴로워하고 있다.
비극이다. 대부분의 남학생들이 겪는 흔하고 뻔한 비극이다. 몇몇은 우수한 재능으로 시련을 쉽게 넘는다. 하지만 더러는 시련을 넘지 못하고 뻔뻔해진다. 상처 받지 않기 위해서이다. 상처 받지 않기 위해 자신이 도전해야 할 일들을 우스운 일 취급한다.
자신이 해야 할 일들 중, 잘하지 못하는 일들을 깎아내리며, 자신은 다른 부분에 재능이 있을 거라고 믿는다. 이것이 이 비극의 가장 극적인 부분이다. 모든 것에서 평범한 아이가, 망상 속에서 어떤 부분은 뛰어날 거라고 도망치는 것이 비극의 절정이다.
우리 사회는 왜 이토록 가혹해졌을까? 누구 하나의 잘못은 아닐 터이다. 하지만 20대 초반부터 30대까지 학원에서 일하며 필자 나름대로 얻은 결론이 있다.
엄마는 단 한 번도 아들로 큰 적이 없다. 이것이 비극의 원인이다. 아들로 살아본 적 없기 때문에, '아들'이 아니라 '남자'만 있다. 엄마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남자애가"라는 단어를 참 많이도 쓴다. 사실 그 단어에는 "남자"만 있고 "애"는 없다.
남학생도 학생이고 아이다. 성인 남성을 대하듯 언성 높이고 짜증부릴 상대가 아니라, 너무 쉽게 너무 나쁜 말을 들어도 견뎌낼 수 있는 힘을 가진 남자가 아니라, 그냥 한 명의 아이다.
이 책은 남학생을 자녀로 둔 어머니들을 위해 썼다. 부디 한국의 어머니들이 아들을 위해 조금 더 공부하길 바라며 썼다. 필자 스스로 고통 받으며 자란 사람으로서 썼다. 이 글을 이 나라의 남학생들을 위해 바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