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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혜수 Nov 27. 2022

부모님의 꿈같은 시간에 색깔을 입혀 봅니다.

내리사랑 치사랑

30년이 넘는 과거 속에서 기억이 나는 가장 어렸던 순간,  나에게 처음부터 엄마는 엄마였고 아빠는 아빠였다. 당연히 엄마, 아빠도 어린 시절이 있었고 학창 시절을 지나 젊었던 20대가 있었다는 것쯤은 상식적으로 알고 있었지만 와닿지는 않았다. 마치 부모님은 태어날 때부터 나의 엄마였고 아빠였던 것처럼 그 모습이 아닌 다른 모습은 머릿속에 쉬이 그려지지 않았다.


내가 아직 부모님의 딸이기만 할 때까지도 부모님의 어리고 젊었던 시간들은 역사 교과서 속의 사진처럼 희미하고 흐릿할 뿐이었다. 그 사진들에 색깔이 입혀지기 시작한 건 내가 아이를 낳고 키우면서 엄마라는 또 하나의 정체성을 갖게 되면서부터이다. 내가 딸아이에게 무한히 주는 사랑의 원천은 부모님이 내게 아낌없이 주었던, 지금도 마르지 않는 샘물 같은 사랑일 테다.




워킹맘 2년 차, 매주 금요일엔 특별한 경우가 아니면 아이와 함께 친정에 가서 하룻밤 자고 오고 있다. 어렸을 때부터 지금까지 엄마랑 시시콜콜한 얘기도 잘하고 아빠랑도 오히려 나이가 들수록 육아나 직업, 미래 얘기 등등 이야기를 편하게 하는 편이다. 결혼 전 연애를 하지 않던 시절, 엄마랑 둘이 쇼핑도 자주 가고 영화관 데이트도 하곤 했다. 아빠는 엄마도 칭찬하실 만큼 손주들을 잘 돌봐주시고 집안일도 많이 하신다. 두 분이 투닥거리실 때도 있지만 이젠 그 모습조차 잘 어울리는 한 쌍이시다. 이렇듯 서로 살가운 사이의  모녀, 부녀지간임에도 왜 좀 더 일찍 부모님의 나이 듦과 무한한 희생을 알아차리지 못했을까?


"언제 크나 싶었는데 돌아보면 꿈같은 시간이다."


여느 때처럼 친정에서 밥을 먹으려고 식탁에 아빠랑 마주 앉아 있었을 때였다. 언니와 나를 키우실 때는 이 두 꼬맹이들이 언제 커서 사회 속에서 잘 자리 잡고 지낼까? 하며 천천히 흐르는 시간 속에서 하루하루 열심히 지내셨을 아버지. 이제는 그 시간들이 붙잡으려 해도 붙잡을 수 없고 선명한 색으로 다시 칠해보려 해도 그저 꿈같이 뭉게구름 속에 묻힌 기억의 조각들 아쉬워하며 말씀하셨다. 어린 시절의 기억이 더 흐려지기 전에 함께 했던 부모님의 젊은 시절을 기록하고 추억하고 싶어 이 글을 써보려고 한다. 이 글들이 쌓여서, 아빠의 기억의 조각들이 엉성해도 정겹게 이어진 퍼즐이 된다면 조금은 덜 아쉬워하지 않으실까 하는 마음으로.


말씀을 하는 아빠의 표정은 밝으면서도 무언가 그리워하는 듯 보였고 배고프다며 맛있게 먹는 딸을 그저 흐뭇하게 바라보셨다. 아이가 밥을 잘 먹을 때 내가 기특해하며 말하는 " 맛있져용~~? 잘 먹어서 배 뽈록해졌네~~! 오구오구."와 같은 추임새는 없었지만 아빠미소의 깊이만큼은 4살의 나를 바라보던 30대 시절의 아빠였을 적과 다름없었다. 자식이 아무리 장성해도 부모가 아무리 나이가 들어도 부모 마음속의 자식은 그저 어린아이라는 말이 엄마가 되어 보니 왜 그럴 수밖에 없는지 알겠다.




아이가 기쁨이든 슬픔이든 어떤 감정을 느끼면 그 이상을 감정을 느끼 부모.. 가끔은 혼자 조용히 시간에 구애받지 않고 책 읽고 글 쓰며 자유로이 시간을 쓰고 싶다는 생각을 하기도 하지만 엄마를 부르는 딸아이의 목소리를 들으면,


"아이들이 조금만 더 크면 언제 그랬냐는 듯이 엄마 잘 안 찾아."


엄마의 얘기가 떠오르며 기꺼이 읽던 책을 덮고 아이에게로 간다. 나는 언제부터 엄마를 덜 찾았을까? 그 시기의 엄마는 서운했을까? 아니면 이제 조금 생긴 자유시간을 만끽했을까? 아마 혼자만의 시간을 즐기면서도 어느덧 쑥 커버린 아이의 모습에 조금의 아쉬움을 느꼈을지도 모른다.


"너랑 언니 둘 다 재워놓고 아빠도 잠들고, 밤에 혼자서 조용히 마시는 커피가 얼마나 맛있었는지 몰라."

"네가 어릴 때 참 말을 예쁘게 했지. 엄마가 너무 예쁘다 예쁘다 하니까 이모가 좀 그만하라고 할 정도였어 하하."


엄마랑 이야기를 나누다 보면 종종 나오는 대화이다. 짧은 시간이나마 혼자 아무 생각 없이 커피를 마시는 그 순간이 얼마나 소중했을지 굳이 수식어를 덧붙이지 않아도 충분히 공감할 수 있다. 나도 그러하니까. 엄마는 종종 나에게 말을 참 예쁘게 한다는 이야기를 했었다. 지금은 좀 덜 하다는 말을 덧붙이기도 하지만 말이다. (남편이 남자 친구였던 시절부터 꽤 최근까지도 그런 이야기를 한 걸 보면 내 말 습관이 그러한가 보다.) 엄마도 어린 시절의 내가 엄마에게 해준 아기자기하고 사랑 가득 담긴 말에서 힘을 얻었을까? 지금의 내가 아이의 말에서 힘을 얻듯이.


아이를 키우면서 엄마라는 이름의 무게감을 느낄 때마다 지금의 나보다 더 젊은 나이에 부모가 된 엄마, 아빠를 떠올리고, 떼를 부리다가도 사랑스러운 미소를 지으며 이내 품에 안기는 딸을 보며 어린 시절의 나도 부모님께 무한한 사랑을 주는 존재였기를 바라본다. 그리고 지나간 시간을 그리워만 하지 않고 지금 부모님과 한번 더 눈 마주치며 웃고 시시콜콜한 이야기하고, 따뜻하고 즐거운 형형색색의 추억을 많이 쌓아가야겠다 다짐해본다. 사랑은 내리사랑이라지만 부모님께 많이 사랑하고 감사하다는 치사랑을 담아 전하고 싶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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