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혜수 Jul 08. 2022

여기 있는 그대로의 나를 좋아해 주는 사람

나를 키우는 아이의 한 마디

가끔 아니 그보다 자주 누군가 나에게 이런 말을 해주었으면 하는 이야기를 의외의 사람에게서 듣게 되는 경우가 있다. 그리고 그 말은 가슴 깊은 곳에서부터 온기로 가득 차서 가끔 눈시울이 붉어질 만큼의 우연한 감동을 주거나 나 스스로  사람에게 먼저 그런 존재가 되어주지 못한 것에 반성하게도 한다.




아이를 씻기설거지를 하다튄 물방울들이 군데군데 젖어있는 면티에 다리를 둘러싼 어떤 부분도 불편함을 허용하지 않는 추리닝 바지를 입고 있을 때면 두 가지 양가적인 마음이 든다.


'역시 편한 옷이 최고야.'

'집이지만 좀 예쁜 홈웨어 입고 있을까?'


마음속에서 '예쁜 홈웨어'가 차지하는 비중이 점점 커지다 보면 어느새 스마트폰을 손에 들고 네이버 검색창을 들여다보고 있다. 하지만 대부분의 경우 구매로 이어지진 않는다. '워낙 결혼 전에도 집에선 편하게 입는 것을 선호해서 늘 그렇게 입어왔면서 뭘 그래?' '아이를 키우면서 좀 더 면 위주 티셔츠를 선택하고 꾸미는 일에 조금은 덜 신경 쓰게 되었을 뿐 결혼 전과 후가 크게 다르진 않잖아?' 하며 스스로에게 묘한 위로를 건넨다.


그래도 잠깐 동안 상상 속의 나는 예쁜 홈드레스를 입고 단정하게 머리를 빗고 피곤한 기색이라곤 전혀 없는 맑은 얼굴로 거실 의자에 앉아서 아이를 바라보고 있었다.


"엄마~~ 나랑 놀아줘요."


다시 현실 세계로 소환되었다. 아이의 해맑고 애교 가득한 짓궂은 표정을 보면 자동으로 엄마 미소가 지어진다. 문득 '나도 이렇게 해맑은 표정으로 지내던 시기가 있었.' 하는 생각과 함께 아이를 품에 끌어안고 머리를 쓰다듬는다. 아이가 지금 이 밝은 표정을 언제까지나 간직하길 바라는 마음을 한가득 안고서.




대학교 졸업 후, 사회생활을 이제 갓 시작했을 때만 해도 해맑다는 얘기를 종종 들었다. 신혼 때 남편도 가끔 이런 얘기를 해주곤 다. 철없다는 소리로 받아들여질 수도 있지만 난 칭찬으로 느꼈고 밝은 모습의 내가 좋았다. 그래서 아이의 한없이 맑고 환한 표정을 볼 때면 사랑스러운 마음이 내 안을 가득 채우고도 흘러넘친다.


직장을 다니고 육아를 하면서 나름 열심히 지낸다고 하지만 둘 중 어느 것 하나도 제대로 하지 못하고 있다는 기분이 들 때도 있고 집에만 오면 점점 배터리가 방전된 것 마냥 엄마랑 노는 시간만을 기다려온 아이의 기대에 부응하지 못한 채 서둘러 재우려고만 한 날들도 많다. 그와 동시에 해맑은 표정의 자리를 지친 표정이 조금 더 차지했나 보다. 피곤해 보인다는 이야기를 종종 듣는 것을 보면 말이다.


그러다 보니 내가 진짜 하고 싶은 일은 무엇일까 고민하는 날들이 늘어가고 지금 내가 경제력을 갖는다는 것 이외에 어떤 가치를 부여하며 직장생활을 하고 있는 것인지 자꾸만 꼬리에 꼬리를 물고 생각의 늪에 빠지기도 한다.


책을 읽고 짧게나마 글을 쓰면서 요즘 직접 책을 쓰는 작가가 되고 싶다는 생각을 많이 했고 꿈을 실현해보고자 한 걸음씩 내딛고 있는 중이다. 달팽이 마냥 속도가 느릴지언정 포기는 하지 말자고 다독이며 어떤 글이든 한 글자 한 글자 차곡차곡 눌러가며 마음속 감정과 머릿속 생각들을 기록하고 있다.




"엄마~~ 놀아준다며~! 언제 놀아줄 거야~~"


아뿔싸. 또 잠시 상념에 빠졌다.


"희망아, 엄마가 작가 엄마 할까?"

"싫어!"

"싫어? 왜 싫을까~?"


4살 딸아이는 작가가 무엇인지도 모를 테면서 1초의 망설임도 없이 싫다고 한다. 그 이후 아이의 입에서 이런 말이 나올 거라곤 생각도 못했다.


"나는 여기 지금 있는 엄마가 제일 좋아!!"


후줄근한 옷차림에 화장기 없는 얼굴로, 하나로 대충 묶은 꽁지머리를 한 채, 도수 높은 안경을 쓰고 있는 내 모습은 지금 나도 그다지 맘에 들지 않는데 딸아이는 여기 자기 눈앞에 있는 그대로의 모습이 최고라고 해준다. 내가 하고 싶은 일은 무엇이고 어떻게 해나가야 할 지에 대한 생각, 아이에게 마음껏 시간을 내어주지 못하는 것에 대한 고민으로 며칠간 누적되어 온 피로가 이 말 한마디로 견딜 만해진다.


"어디서 이런 예쁜 딸이 나왔을까"

아이 볼에 부비적 부비적 내 볼을 맞댄다.

"엄마 뱃속~!"

서로 마주 보고 배시시 웃다가 불현듯 며칠 전 아이 머리를 예쁘게 묶어주려는데 아이가 싫다며 했던 말이 떠올랐다.


"안 묶을 거야. 나는 그냥 내 머리가 좋단 말이야."

그때의 난 부스스한 채로 정돈되지 않은 머리를 묶어주고픈 마음에 아이의 말을 대충 흘려듣고 설득하려고만 했다. 어떤 모습이어도 너무나도 사랑스러운 딸인데, 자기 스스로는 마음에 드는데 엄마는 그렇지 않은 것처럼 느껴졌다면 얼마나 속상했을까 생각하니 부끄러워졌고 미안했다.


육아는 아이를 키우는 과정이지만 아이를 통해 배우고 깨달으면서 엄마로 성장하는 과정이기도 하다. '여기 있는 그대로의 나'를 좋아해 주고 아껴주는 아이에게 그런 엄마가 되자고 다짐해본다. 나부터 나를 있는 그대로 인정하고 받아들이고 아이의 모습 그대로를 사랑해주자고.



매거진의 이전글 육아 에세이를 쓰는 이유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