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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혜수 Aug 14. 2022

안정과 인정의 굴레

회사의 낭만_3

안정감: 1. 바뀌어 달라지지 아니하고 일정한 상태를 유지한 느낌. 2. 육체적 또는 정신적으로 편안하고 고요한 느낌. 사전에서 정의하는 안정감은 이러했다.


매달 일정한 날에 일정한 액수가 통장에 찍히는 것은 묘한 안정감을 준다. 변화무쌍하지 않아 예측 가능하지만 단조로운, 좋으면서도 정말 좋은 것일까 문득문득 스스로에게 질문을 던지게 되는 그런 안정감 말이다.


일 년에 한 번 성과 평가가 반영되는 달이거나 승진을 한 해가 아닌 이상, 실적이 좋았던 달이든 좀 부진했던 달이든 관계없이 늘 같은 월급을 받기에 긴장감 없이 편안하면서도 성취감을 느끼기엔 조금 부족한 나날이었다. 물론 돈기부여가 전부는 아니지만 맡은 일을 최대한 잘 마무리하되 그 이상 굳이 나서서 일을 만들고 싶지는 않았다.  어떻게 보면 지나치게 성과 위주로 여를 받는 시스템은 심적으로 너무 많은 스트레스를 받을 것 같아서 나는 그럭저럭 만족하면서 지냈다.




회사에 다니는 이상 특별한 사유가 없는 한 매달 통장에 돈이 들어온다. 직장생활을 하기 전에는 알 수 없었지만 이건  안정적인 생활을 보장해주는 꽤나 큰 이점이다. 대단하고 거창한 것은 아니어도 소소한 취미생활을 큰 부담 없이 할 수 있고 가족과 친구들과 맛있는 음식을 먹을 수 있고 좋아하는 것과 필요한 것을 위한 소비를 할 수 있다. 가끔은 평소보다 좀 큰 지출을 하기도 하고 충동구매를 하기도 한다. 그럴 땐 다음 달에도 어김없이 들어올 월급이 있기에 '가끔 이런 날도 있는 거지.'하고 넘어가는 여유를 부리기도 하면서 말이다.


업무의 성향이 나와 잘 맞고 일을 통해 스스로 성장하고 있음을 느낄 때 이 급여는 긍정적인 동기부여를 해주고 여러모로 고마운 존재이다. 하지만 일에 점점 흥미를 잃거나 일을 통해 얻는 성취감보다 일 때문에 받는 스트레스가 커지게 되면 머리로는 배부른 소리라는 것을 알면서도 마음속에 월급의 존재는 그 안에서 쉬이 벗어나지 못하게 하는 굴레가 되기도 한다. 다른 하고 싶은 일이 생겼을 때 주저하게 되고 오히려 '그 일이 정말 하고 싶은 거야?'라고 되물으며 스스로를 믿지 못하기도 한다.


한 회사에서 다른 회사로 이직을 확정 짓고 기존에 몸 담고 있던 조직에서 퇴사하는 것이 아닌 경우에는 일정 기간 동안에 월급의 공백이 생기게 된다. 하고자 하는 일이 어딘가에 속하는 것이 아니고 1인 창업이나 프리랜서 형식으로 진행되는 경우에는 수익이 잘 자리 잡는 데까지 시일이 더 소요될 수도 있고 불확실성이 좀 더 큰 편이기에 훨씬 더 잘 될 가능성도 많음에도 망설이게 된다.


책에서 보면 사람은 얻게 되는 이득에 대한 기쁨보다 손실에 대한 두려움을 훨씬 더 크게 느낀다고 하는데 이 경우도 딱 그러한 것이 아닐까. 아직눈에 보이지 않는 열매를 기대하는 마음을, 벌어지지도 않은 일을 걱정하는 마음이 계속 방해하는 것처럼.




보통 '공로를 인정받다'라고 말할 때, 그 인정은 사전적으로 '확실히 그렇다고 여김을 받다'는 의미이다. 우리는 누군가, 특히 우리가 속한 여러 종류의 사회가 인정해 줄  때 동기부여받고 성취감과 보람을 느끼기도 한다. 나 또한 마찬가지였다. 목표한 바 이상을 달성했거나 포상의 기준에 충분히 부합하는 후보자들 중에서 선발된 직원에게 소정의 상금과 함께 시상을 한다. 그렇게 상을 받으면 기분이 좋긴 하지만 보통 상을 받은 달은 정말 일하느라 고생했던 기억이 가득한 경우가 대부분이기 때문에 수상의 기쁨을 만끽하기보다는 피로를 풀고 쉬고 싶은 마음이 간절했다.


상 받으려고 열심히 해야지! 란 생각을 하게 되는 것이 아니라 그래도 맡은 바 책임은 다 해야 하니 실수 없이 순조롭게 일을 진행하기 위에 나를 갈아 넣고 나니 회사에서 직원들에게 고생했다고 인정해주는 것이 포상이란 제도에 더 가까운 것 같다. 그렇게 생각하면 포상제도 동기부여책이라기보다는 위로의 한 방편인 것은 아닐까. 그럼에도 이렇게 상을 받고 나면 또 마음 한 켠에서는 '그래, 그래도 고생한 것을 회사에서 알아주니까..' 하며  점점 이 업무 패턴에 익숙해져 가고 인정이라는 또 다른 굴레 속에서 갈팡질팡하며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있는 나를 발견하곤 했다.




분명히 안정과 인정은 개인이 추구하는 긍정적인 가치인데 그 안에서 만족하지 못하고 자꾸 다른 길에 관심을 갖고 눈길을 주는 내 모습에 답답한 마음에 '모든 사람이 다 하고 싶은 일만 하면서 지내는 건 아니야.', '돈 버는 일이 쉬운 게 어디 있겠어.', '나만 힘든 것도 아니잖아.' 하고 스스로 몰아붙이기도 했다.


주변을 둘러봐도 자신이 현재 종사하고 있는 업종의 장단점을 알고 있는 상태에서 과거로 돌아간다면 이 업종에는 종사하지 않을 거라는 사람들이 제법 많았다. 다들 현 상태를 만족해하면서 지내는 것은 아니란 말도 맞았다. 사실 희망해서 시작한 일도 막상 해보니 생각과 다른 경우도 허다하기 때문에 지금 하고 싶은 일도 기대했던 것과 다를 수도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경험해보고 싶은 것은 지나친 욕심인 걸까. '이 정도면 적당히 사회적으로도 인정받고 안정적인 일이니까'처럼 내 삶의 기준을 외부에 두지 않고 '내가 좋아하는 일, 하고 싶은 일, 그러면서 사람들에게 가치를 제공하는 일'과 같이 좋고 싫음의 기준을 내 안으로 가져오기를 멈추지 않는 것이 현실적이지 못한 걸까. 오늘도 내 맘 속은 여러 생각들로 뒤죽박죽이지만 포기하고 싶지 않아 이렇게 글을 써 내려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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