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을 이해하는 무기 devil's advocates
악마의 대변인 이란 원래 가톨릭 교회에서 신도들을 심의할 때 쓰던 것이었다. 일부러 정에 반하는 내용과 결점, 미심쩍은 부분을 지적하는 역할이 악마의 대변인이었다. 이것은 후에 존 스튜어트 밀의 자유론에서 ‘반론 자유’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것과 연결해 볼 수 있다.
‘자신의 의견에 반박하고 반증할 자유를 완전히 인정해 주는 것이야말로 자신의 의견이 자신의 행동 지침으로서 옳다고 내세울 수 있는 절대적인 조건이다. 전능하지 못한 인간은 이것 외의 방법으로는 자신이 옳다고 내세울 수 있는 합리적인 보증을 얻을 수 없다.’ [존 스튜어트 밀 _자유론]
전에 공산당 선언문을 읽는 내 모습을 보고 한 어르신은 ‘이제는 불온서적이 아닌가 보네. 나 때는 그 책을 갖고만 있어도 빨갱이 취급받았는데..’라고 말씀하셨다. 그렇게 말하면서도 책에 대한 거부감은 느껴졌다. 나는 말했다. 우리는 자본주의 사회에 살고 있고 자본주의를 이해하는 데에 공산당 선언문을 읽는 것은 도움이 된다. 그리고 책 한 권에 선동당할 만큼 멍청하지 않으니 걱정하지 말라고..’
저 어르신에게는 자본주의가 선이고 공산주의가 악이라고 교육받아왔고 그렇게 알고 있다고 해도 “선을 아는 것이 선이 아니고 악을 아는 것이 악이 아니며 선을 알아야 악을 알고 악을 알아야 선을 안다.”라고 생각한다. 대칭될 수 있는 모든 사상, 제도, 이데올로기, 신념 등은 그렇다. 행복과 불행, 좌와 우, 도덕과 비도덕 모두 포함된다.
예를 우리는 아프리카의 가난한 난민들을 보며 측은지심을 느끼고 불행할 것이라 생각한다. 하지만 그들은 지금의 삶이 불행이라고 정말 느낄까? 우리가 영위하는 행복을 모른다면 그들은 지금 그 삶이 행복일 것이다.
또 어떤 사람이 선이라고 알고 있는 행위를 실천하지 않는다면 그 사람을 선한 사람이라고 하지 않는다. 악한 행동을 하지 않는 것이 선이라면 악함을 알아야 선한 사람이 될 수 있다.
악마의 대변인은 이런 양단의 입장을 잘 이해하고 더 나은 합의 결과를 도출해내는데 아주 효율적인 방법이라고 할 수 있다. 악도 시간이 지나면 선이 될 수도 있고 그 반대가 될 수도 있다. 그것의 옳고 그름을 그 당시의 엘리트가 영원할 것이라고 결정한다면 절대주의에 빠질 수 있다. 중세 시대 가톨릭의 암흑기나 나치의 이념을 떠올려보면 이해가 쉬울 것이다.
선과 악은 오랜 세월 많은 사람들의 다면적인 사고를 거쳐 결정된다.
토론에서 반대파의 입장을 이해해보려 하거나 변론 가능한 부분을 생각해본다면 내 입장을 더욱 잘 이해할 수 있기도 하고 더 나은 중의 점이 떠오를 수도 있다. 그것이 곧 악마의 변론과 변증법적 사고이다.
신념과 사상, 이데올로기가 종교적인 맹목적 믿음의 퇴화로 빠지지 않기 위해서 ‘악마의 대변인’은 아주 효율적인 무기가 될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