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과 삶 그리고 공감
내 인생 처음으로 친구가 추천해 준 책이었다. 누군가에게 추천을 해주고 받는다는 것은 그 사람의 생각을 인생을 엿볼 수 있는 것이라 생각한다. 이 친구는 비교적 최근 어머니가 돌아가셨다. 있을 때는 소중한지 모르는 존재.
돌아가시고 후회해 봐야 소용없다는 뻔한 소리.
나는 모른다. 1년에 두어 번 전화하려나. 살갑게 웃는 것도 표현하기도 어색하다. 같이 있어 소홀한 사람들.
누군가 죽고 나서 느끼는 상실감은 아직 모르지만 책 초반에 그런 상실감에 대해서 많이 다루는 걸 보며 조금 상상해 볼 수 있었다.
책을 관통하는 문장이자 가장 인상 깊었던 문장은 “시는 앎의 너비보다 경험의 깊이가 중요하다”라는 문장이었다.
평소 ‘알아감‘이 중요하다고 추구하며 살아왔다. 매일매일 지식의 너비를 넓히고자 노려했고 그것이 나를 자유롭게 할 것이라 믿었다. 아기가 엄마에게 의존하다가 세상을 알아가며 자유로워지듯 말이다. 그래서 시라는 장르가 뜬 구름 잡는 이야기가 아닌가 하며 읽기를 꺼렸다. 하지만 정말 힘들 때 필요한 것. 그것은 철학이고 칸트의 말처럼 경험 없는 이성은 공허하다. 인간은 어쨌든 경험한 만큼 공감하고 아는 만큼 이해한다. 이제는 시가 좋고 공감이 좋다. 시야가 많이 넓어진 것 같은 기분이다.
책의 대부분은 사실 사랑과 삶에 대해서 이야기를 많이 한다. 그것이 곧 인생의 역사일 테니
좋아하는 고전은 읽을 때마다 새로운 해석이 내게 다가온다. 그래서 오랫동안 읽혀왔기에 고전이 아닌가. 그건 은유가 많기 때문이다. 문학에 직관이 더해지면 그것은 라이트노벨이다. 시는 은유의 집합체이다. 그러니 누군가에게는 이름 모를 시가 인생을 바꾸기도 할 것이다. 참 매력 있다. 나는 연인과 헤어지고 이 책을 접했다. 지금껏 스피노자나 에리히 프롬, 라캉을 읽으며 사랑이란 관점이 잘 잡혀있다고 생각했다. 어려운 건 부모 자식 간에 사랑 밖에 없다고 기고만장했다.
사랑의 발명 - 이영광
살다가 살아보다가 더는 못 살 것 같으면
아무도 없는 산비탈에 구덩이를 파고 들어가₩1
누워 곡기를 끊겠다고 너는 말했지
나라도 곁에 없으면
당장 일어나 산으로 떠날 것처럼
취해 말했지
나는 너무 놀라 번개같이,
번개같이 사랑을 발명해야만 했네
타인 때문에 일희일비하며 살기 싫었다. 그건 너무 불안했고 그래서 늘 상처받아왔다. 의존적이지 않게 독립적으로 멋진 인간이 되고 싶었다. 하지만 이 시는 의존이 곧 사랑일지도 모른다고 이야기하는 것 같았다. 사랑은 당신이 죽지 않아도 된다는 뜻, 내가 없으면 너도 없다. 자살은 곧 살인이다. 이런 해석들이 굉장히 나에게는 신선하게 다가왔다.
‘그리고 살아간다’라는 일본 영화를 보았다. 사고로 부모를 잃은 여자 아이, 그 아이를 위해 결혼도 하지 않고 이발소를 하며 키운 삼촌, 삼촌은 시한부 판정을 받는다. 또 혼자 남을 딸을 걱정하며 하염없이 눈물을 흘린다. 딸을 짝사랑하던 남자도 혼자 남을, 가족이 사라질 여자가 안쓰러워 청혼을 한다. 가족이 되어주겠다고, 어쩌면 이런 게 사랑일지도 서로가 서로에게 위로가 되는 사람이면 좋겠다. 나중에라도 인생에 혼자가 되지 않았으면 좋겠다. 왠지 뜬구름 같던 결혼을 하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
또 인상 깊었던 부분, 130p ‘나란 무엇인가’ 진정한 나를 찾기 위해 번민하는 이들, 혹은 너무 많은 나 앞에서 자신을 위선자라 자학하는 이들에게 히라노 게이치로는 여러 개의 ’나‘가 있음을 인정하는 편이 낮다고 조언한다.
인간은 누구나 가면을 쓴다. 이를 테면 중학교 동창 앞에서의 내 캐릭터와 직장 동료 앞에서의 캐릭터는 다르다. 당연하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그런 다른 집단에서의 캐릭터가 합쳐지는 순간 우리는 매우 불편해진다. (대표적으로 상견례 자리) 하지만 진짜 나는 무엇일까에 대한 고민은 끝이 없었다. 어떤 페르소나가 진짜 나일까 나 역시 고민하고 번민했다. 우리는 사회가 나를 규정하고, 내가 나를 규정하고 타인 나를 규정했을 때 진정한 내가 존재될 수 있다. 스피노자 식으로 말하면 양태이기 때문에 신의 파편이기 때문에 당연하다.
책에서는 누군가를 사랑한다는 것은 (연인, 부모, 친구 등 관계) 그와의 관계를 사랑하는 것이다. ‘나는 당신과 함께 있을 때의 내가 가장 마음에 든다. 그런 나로 살 수 있게 해주는 당신을 사랑한다. 관계가 사라지는 것, 그것이 죽음이든 이별이든, 그것은 상대를 통해 생겨나 나의 분인까지 잃는 일이다. 그가 사라짐으로써 그 사람과만 가능했던 관계도 끝난다. 그것은 그때의 나로 이제 살아갈 수 없다는 뜻이다. 그래서 한 사람을 죽이는 행위는 그 사람의 주변, 나아가 그 주변으로 무한히 뻗어가는 분인끼리의 연결을 파괴하는 짓이다. 살인은 언제나 연쇄살인이다.
참 박애적이고 따뜻한 해석이었다. 차가운 실용주의가 난무하는 현대 사회에 이렇게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다면 참 좋을 것 같았다. 이 책은 나에게 공감하는 방법을 알려 준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