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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짱쌤 Jan 12. 2019

담과 사람들

세상을 보듬는 일보다 소중한 일

  몇 해 전 ‘스물아홉의 꿈 서른아홉의 비행’이라는 책을 쓴 조은정 기장의 특강을 듣게 되었다. 조기장은 스물아홉의 나이에 호텔리어에서 항공기 조종사라는 꿈을 갖게 되었고 10년간 차곡차곡 준비한 끝에 서른아홉에 조종사가 되었다. 작고 아담한 그렇지만 당차고 야무진 그 모습에 비해 내 모습은 얼마나 초라한지...    

  내가 그 강연을 들었던 날은 스승의 날 즈음이었던 듯하다, 수용 중 창업지원 프로그램을 통해 출소 후 떡집 창업을 준비 중이던 선화씨는 자신이 직접 정성스레 만든 떡케익을 내게 선물했었다. 수용 중에도 출소 후 자신의 창업을 위해 마음써준 것에 대한 감사의 마음이라며. 그런데 조기장님의 강연을 듣고나서 책에 저자사인을 받고나서 바로 그 떡케익을 그분께 선뜻 선물했다. 지금 이 사실을 알게 된다면 선화씨는 무척 서운하게 생각하겠지만 조기장님의 강연을 통해 나는 흔들리고 있었고, 그 파장으로 인해 귀한 떡케익을 성큼 내놓게 된 것이다. 그 강연은 십대도 아니고 청년도 아닌 사십대 중년의 나를 채찍하기에 부족함이 없었다.     

  내 오지랖은 내가 받은 이런 긍정적인 역동을 더 많은 이들에게 전하고 싶었다. 특히 우리 담 안에 있는 아직 앞날이 구만리 같은 소년수용자와 젊은 여자 수용자들에게 보여주고 싶었다. 내게 주는 메시지가 아니라 우리 수용자들에게 꿈을 주는 따뜻한 메시지를 담아 조기장님의 에너지를 선물해주고 싶어 다시 만나게 되었다. 자신의 오랜 꿈을 이루고 많은 이들을 대상으로 저자로 강연자와 강의를 듣는 사람이 아니라 누군가를 위해 무언가를 해줄 수 있는 동지로 만났다. 조기장을 닮은 비행기와  ‘비구름을 뚫고 올라서면 눈이 부시도록 새파란 하늘이 펼쳐집니다. ’나‘는 지금 비구름 속에 있을 뿐...’이라는 메시지를 적어 다섯권의 책을 선물해 주셨다.     

  그 책을 들고 다시 담 안에 와서 제일 먼저 주고 싶었던 희야에게 갔다. 사실 희야는 아직 미성년자인데도 아는 후배 여자아이들을 성매매 시킨 혐의와 거친 외모로 선뜻 다가가기 쉽지 않은 아이였다. 희야에게 조기장님의 책을 주고 읽고 감상문을 쓰게 했는데 감상문을 받아든 나는 신이 공평하다는 생각을 했다. 희야는 겉에서 본 모습은 거칠고 다듬어지지 않은 모난 돌멩이였는데 글과 글씨를 통해서 본 희야는 참 따뜻하고 속이 깊은 아이였고 가능성이 있는 아이였다. 희야의 작품이라고는 아무도 믿을 수 없는 정돈된 글씨와 글 내용, 그리고 그 아이의 다짐은 나를 흥분하게 했다.     

  그 후로 몇 권의 책과 감상문을 통해 마음을 주고 받다가 재판이 끝나고 형이 확정되어 청주여자교도소로 이송을 가게 되었다. 이송가서도 몇 번의 편지를 보냈던 것 같다. 그러던 중 청주여자교도소장님께서 출소를 앞둔 여자 수형자들을 대상으로 강의를 요청하셔서 방문하게 되었다. 강의장으로 가는 중 검정고시교육실에서 열심히 공부하고 있는 희야와 눈이 마주쳤다. 텔레파시가 통했는지 잠시 스쳐지나가는 곳이었는데 둘이 찐하게 통한 것이다. 역시 희야는 열심히 검정고시를 준비하고 있었다. 강의를 마치고 아는 직원의 도움으로 희야를 잠깐 만날 수 있었다. 한권의 책을 통해 시작된 나와의 약속, 희야 자신과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 그렇게 노력하고 있었고 그런 이쁜 희야를 나를 꼭 안아 주었다.    

  다시 조기장님과 이런 소소한 독서감상문 등을 통한 행복들을 나누다 듣게 된 이야기는 다시 나를 자괴감에 빠트렸다. 10년간 꿈을 위해 주어진 환경을 최대한 활용하여 자신이 그토록 부러워하고 바라던 항공기조종사가 되었기에 만족하고 안주하겠지 생각했었는데 그것은 내 생각일 뿐이었다. 항공기 조종을 위해서는 국제공용어 같은 암호로 항공기간 송수신을 하는데 이런 국제공용어를 통해 항공기 조종에서 그치지 않고 세계를 보듬을 수 있는 방법을 고민하고 있는 중이라고 하였다.     

  ‘누군가는 그토록 원하던 꿈을 이루고 또 더 큰 꿈을 꾸고 있는데 나는 무얼 하고 있지?’ 이렇게 의기소침해 있을 때 교정관련 행사장에서 존경하는 직장 선배님을 만나 뵙게 되었다. “요새 어떻게 지내노?” “누군가는 자기 꿈을 이루고 또 세계를 보듬겠다는 꿈을 꾸고 있는데 저는 무얼 하고 있는지 모르겠습니다.” 라고 푸념 섞인 목소리로 대답했다. 그 선배님께서는 “때로는 세상을 보듬는 것보다 한 사람을 보듬는 것이 더 가치 있는 일일 수도 있다. 너는 지금 그 소중하고 가치 있는 한 사람을 살리는 일을 하고 있지 않느냐”    

  아... 저는 이렇게 소중하고 의미 있고 가치 있는 일을 하고 있는 사람이었습니다. 단지 그 의미와 가치를 느끼지 못하고 있었던 것이죠. 가끔 제 일에 대한 가치관이 고민될 때 그분의 말씀을 떠올려봅니다.     

저는 오늘도 그 소중한 한사람을 살리기 위해 열두척 높은 담장 안으로 걸어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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