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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짱쌤 Feb 03. 2019

담과 사람들 21

세상엔 천사만 사는 것 같아요


주임님 안녕하세요

2014년 마지막 날인데 많이 추워요. 감기에 걸리신건 아니죠? 저는 매일 출근 아니 출장 다니는 기분으로 열심히 잘 다니고 있습니다. 출근 첫날 사장님께서 방을 보러가라 하셔서 회사 바로 길 건너편에 있는 원룸을 보고 왔어요. 월세는 제가 내고 보증금 지원해주시겠다고... 너무 갑작스러워 사장님께 저 좀 지켜보시고 결정하시라고 감히 말씀 드렸어요. 그래서 이르면 1월 초쯤 이사를 할 수도 있을 듯 해요.


주임님 저는요 요즘은 제 주변에 ‘천사’들만 존재하는 것 같아 너무나 행복해요. 누구하나 너나 할 것 없이 모두들 도와주려하고 도움 주시고... 체감을 하면서도 믿어지지가 않아요. 이 모든게 마술인거 같아 자고 일어나면 깨어지는 꿈 같아요. 이렇게 들뜬 마음으로 실수하지 않고 도와주신 분들께 누가 되지 않도록 열심히 생활 할께요. 새해에는 더 많이 열심히 잘 하겠습니다. 주임님도 항상 지금 같은 모습으로 늘 건강하셔야 해요. 꼭 좋은 모습으로 찾아뵙겠습니다. 항상 오래오래 함께 계셔주세요. 제가 주임님께서 베풀어주신 마음에 꼭 보답드릴 수 있게요. 새해에도 건강하시고 지금처럼 멋진 모습 간직하시구요. 복 많이 받으세요. 정말 감사합니다. 

2014. 12. 31.  찬미 드림  

  

찬미는 미결수용동에서 눈에 띄지 않게 조용히 지내고 있었다. 담당자인 나는 그녀가 접견을 자주 오지 않는다는 것과 가끔 창밖을 내다보며 훌쩍거리고 있다는 것을 알았지만 다른 근무자들에게 찬미는 존재조차 희미한 사람이었다. 그러던 그녀를 수용동 청소 작업을 시켰으나 소심하고 조용한 성격처럼 주저주저한다. 그때 언니 청소부는 그런 찬미를 친동생처럼 챙겨주고 또 또래 청소부도 함께 웃기기도 하고, 일도 도와주며 함께 잘 지냈다. 그러다 나는 담당 근무지가 바뀌었고, 갑자기 찬미가 여자교도소로 이송을 가게 되었다는 것이다. 계획에 없던 일이다. 대부분 소내에서 청소부로 지정이 되면 특별한 경우가 아니면 다른 기관 이송은 안하는데 무언가 실수가 생긴 것이다. 이미 결정된 상태라 어찌하지 못하고 아쉬움을 달래며 이송을 보낼 수 밖에...  

  

그 후 여자교도소에서 찬미와 함께 이송간 주현이가 내게 계속 편지를 보냈다. 편지의 주요 내용은 ‘찬미가 매일 울기만 하고 이러다 무슨 큰 일 날 것 같아요, 주임님 도와주세요.’ 대부분 여자교도소는 형기가 긴 수형자가 대부분이다. 그런 분위기에 형기도 짧고 영치금과 접견이 거의 없는 찬미 같은 존재는 동료 수용자들에게는 그저 불편한 존재이다. 거기에 성격이 싹싹하기보다는 얌전하고 두려움이 많아 놀리면 놀림을 그대로 흡수하기에 장기수들의 놀림감으로 딱인 것이다. 마침 여자교도소에 아는 과장님께 찬미 상황을 말씀 드리고 상담을 부탁 드렸다. 역시 멋진 선배님은 찬미를 불러 따뜻한 차와 상담으로 위로하고 다독여 주었고 그 응원 덕에 바리스타 직업훈련과정을 마치고 무사히 가석방 출소를 하게 되었다.   

  

다들 교도소에서 나가면 무엇이든 해먹고 살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한다. 하지만 생각대로만 되는 것은 아니다. 출소 후 이모네 집에서 거주하면서 이것저것 일자리를 알아보고 아르바이트를 해서 자리 잡으면 독립하려던 찬미의 계획은 걸림돌이 너무 많았다. 그럼에도 찬미는 나와 계속 연락을 주고 받았고 그때마침 부탁해놨던 일자리가 연결이 되어 출근하라십니다. 그런데 서대문에서 경기도 광주까지 너무 먼 거리라 버거웠지만 고정된 일자리가 생겼다는 것만으로도 감지덕지입니다. 찬미 말대로 출근이 아니라 출장 수준의 출퇴근을 감내하고 있던 그녀에게 사장님께서는 원룸을 지원해주신 것이지요. 가까운 거리에서 출퇴근 할 수 있게 된 찬미는 정말 열심히 일했답니다. 생각보다 축산가공 업계는 구제역 등 환경에 민감했고, 동료 근로자들은 거칠고 대화가 어려웠지만 힘든 시간들 마다 더 힘들었던 출소 후 시간들을 생각하며 버텨냈습니다.  

   

그동안 찬미에게 힘이 되었던 유기견들과 감방 동기들이 있었습니다. 그 동기들은 물론 우리 수용동 청소부들이었구요. 이들은 몰래몰래 자기들끼리 연락을 하고 있다가 찬미의 취업문제로 나와 소식을 주고 받는 것을 알고 함께 자리를 만들었습니다. 인사동 골방 하나에 앉아 출소 후 근황과 감방 안에서의 일상들에 대해 수다를 떨었습니다. 그 당시 힘들었던 일, 웃겼던 일 등 누구에게도 말 할 수 없는 우리들만의 이야기를 나누며 웃고 스트레스를 해소했습니다. 그렇게 몇 번 만나다 하루는 소풍을 준비했습니다. 일과 학업을 병행하는 나를 배려하기 위해 우리집 근처로 오겠다는 그녀들에게 우리집 근처 저수지 소풍과 미술관 나들이를 제안했습니다. 그날 저수지 옆 숲그늘 귀퉁이는 여인들의 웃음소리와 맛난 수다가 가득했습니다. 과일과 음료를 준비한 찬미, 직접 농사지은 쌈야채와 밑반찬을 준비한 미숙이, 정성껏 도시락을 만들어온 선영씨, 먹을 것 대신 최근 미싱을 배워 각양각색의 파우치를 만들어 온 수영... 참 행복한 시간이었습니다.    


그날 이후 우리는 ‘마중물’이라는 단톡방을 만들었습니다. 처음엔 내가 그녀들의 마중물이라 생각하고 만들었는데 시간이 지나면서 깨달았습니다. 공황장애를 딛고 부업을 하고 있는 미숙이, 교도소에서도 온갖 똘아이들 뒷수발을 해주었던 선영씨는 요양보호사가 되어 구순이 넘는 원로음악가의 치매를 돌보고 있었고, 미싱을 배우면서 학습지교사로 다시 학원 강사로 돌아간 수영이, 이제는 어엿한 과장으로 승진해서 제법 목소리를 키우고 있는 찬미... 이 여인들이 내게 큰 힘이 되는 마중물이 되어주고 있음을...    


지난 가을 학위논문 마무리에 정신없는데 찬미에게 전화가 왔다. 마중물 식구들이 너무 보고 싶어한다고, 그리고 인사드릴 사람이 있다고... ‘누군지 모르지만 너무 바빠 나를 제외하고 나머지 식구들에게 인사하고 우선 너희 끼리 만나라고’ 했더니 ‘결혼 할 사람이라고... 가장 힘든 시간에 도와주신 분이라 꼭 계장님께 먼저 인사드리고 싶어한다고’... 결국 장흥 유원지 근처 음식점에 방갈로를 예약해놓고 찬미를 위해 아니 찬미의 허물을 알고도 보듬어준 그 남자를 위해 꽃다발을 준비했다. 다행히 그 남자는 마중물 식구들을 다 알고 있었고 가장 수치스러운 그 부분까지 넓고 따뜻하게 포용해주고 있었다. 다행이다. 찬미에게 정말 든든한 천사가 생겨서 이제는 내 마음에서 내려놔도 될 듯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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