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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짱쌤 Jan 15. 2019

담과 사람들 9

내가 아직도 출소를 못한거야?

출소한지 한 달쯤 되었을까? 경숙씨는 텔레비전을 보다가 소파에 누워 잠이 들었다. 잠결에 설핏 교도소 담당 주임님 목소리가 들렸다. ‘뭐지? 난 한달 전에 출소했는데. 이상하다. 내가 꿈을 꾼 건가?’ 화들짝 놀라 잠을 깨고 보니 텔레비전에서 무서운 우리 담당 주임님이 사복을 입고 춤을 추고 계신 것이다. 난 그런 줄도 모르고 우리 주임님 목소리가 들려 아직도 교도소 안 인줄 알았다며...    


고향으로 귀농하여 염전과 식당을 운영하고 있는 둘째언니는 나와 두 조카의 고등학교 후배다. 둘째 언니는 어렸을 때 넉넉지 않은 형편과 그다지 공부에 관심이 많지 않았던 까닭에 고등학교를 다니지 못했다. 막내인 나 역시 고등학교 진학이 어려웠으나 다행스럽게도 섬에 고등학교가 생겨서 다닐 수 있었지만 언니들에게 고등학교 진학은 쉬운 일이 아니었다. 그런 둘째 언니가 쉰이 넘어서 조카들까지 고등학교를 마치고 나서야 고등학교를 졸업하였다. 만학도인데다 지역에서 봉사활동도 앞장서더니 종편 방송사에서 진행하는 프로그램에 참여하게 되었다. 그 프로그램은 여자 연예인이 농어촌 총각들과 가상결혼을 설정하여 일상의 재미있고 감동 있는 에피소드 들을 풀어내기 위함이라 생각되었다. 둘째언니 덕분에 나는 졸지에 막돼먹은 영애씨의 시이모가 된 것이다. 여러 차례 방송촬영을 하며 영애씨는 인기 연예인 답지 않게 소탈하고 진정성 있는 태도로 언니와 형부 그리고 우리 자매들을 감동시켰다.    


그래서 우리 둘째언니를 제외한 세 자매는 갑작스럽게 고향방문을 시도했다. 그 방송 마지막 촬영 일에 맞춰 시이모님들이 조카며느리를 축하해주기 위해 밤기차를 타고, 새벽 배를 타고 내 고향 남쪽 바다를 향해 달려 간 것이다. 조카며느리를 위해 과일, 향수, 손수 뜨개질한 동전지갑 그리고 편지까지 써서 달려갔는데 그녀는 시금치 밭에 가고 없어서 아쉬움을 달래며 우리 세 자매는 산 넘어 시금치 밭으로 향했다. 어렸을 때 새벽에 일어나 도시락 두 개를 싸서 엄마 따라 산 넘어 시금치 밭에 일하러 다니던 생각이 훅 지나간다. 지금 이렇게 여유로운 몸과 마음으로 그 밭을 가게 되니 감회가 새롭다.    


맛난 섬초를 한 소쿠리 캐서 다듬어 시금치 튀김, 잡채, 나물을 하고 주먹밥을 만들다 우리는 갑작스레 엉뚱한 소풍을 기획하게 되었다. 우리의 소풍장소는 우리 네 자매의 추억이 가장 많은 ‘첫이미불’이라는 해수욕장이다. 그곳은 저수지에서 빨래를 해서 널어놓고 고개를 넘으면 조용하고, 모래언덕이 있고 모래사장이 곱고, 겨울이면 해파리가 떠내려 오기도 하고, 여름철엔 고동과 굴을 따기도 하고, 굴을 따다가 밀물에 못난이 삼형제 샌들이 떠내려가 언니가 굴 껍질에 상처를 입어가며 내 샌들을 구해주던 추억이 묻어있는 곳이다. 좀 더 커서 고등학생이 되었을 때는 친구들과 모닥불 피워놓고 카세트에서 흘러나오는 신나는 음악에 맞춰 디스코를 추고, 목청껏 노래를 불렀던 아름다운 유년의 추억이 가득한 곳이었다.  

   

그 바닷가에서 모두 한 덩치씩 하는 네 자매와 조카며느리까지 다섯이서 그 옛날 파도소리와 음악에 맞춰 밤새 몸을 흔들던 그 장면들을 재연하기 시작했다. 징키스칸 팝송에 따라 육중한 몸매를 흔들다 모래사장에 주저앉은 셋째언니와 우리 모두는 배꼽을 잡고, 눈물을 흘려가며 함께 웃었다. 그러다 조카며느리가 신세대 춤을 이모님들께 선보이기 위해 헬멧 쓰고 춤추는 5기통 춤인가를 가르쳐 주었고, 다섯 여인이 박자에 맞춰 춤추고 있는 장면이 방송에 나오고 있었고, 그때 마침 거실에 누워 텔레비전을 보던 경숙씨는 담당 주임님의 목소리에 화들짝 놀라 잠을 깬 것이다. 그녀에게 내 목소리가 악몽이었나? 잠결에 들었던 내 목소리로 철렁했을 그녀를 생각하면 안타깝기도 하지만 지금도 웃음이 난다. 행복했던 우리 네 자매의 웃음도 함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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