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월 인왕산에서
울긋불긋
봄꽃처럼 가지런한 한 가지 색이 아닌
가지마다 잎마다 모두 다른 색으로 피어나는 가을꽃, 단풍
한여름을 마주하며
태양 아래 애타던 마음
빗줄기에 젖어 숨죽이던 마음
태풍을 마주하며 온몸으로 떨었던 마음
모든 순간, 모든 마음이 모여 빚어내는 색
비슷해 보여도 한 잎 한 잎 같은 것이 없다.
우리네 인생처럼
그중 너는 가장 상처 많지만 가장 예쁜 잎
너는 내게 그런 존재
해가 지기 시작하면 켜지는 등산로 가장자리 조명
그 빛의 곁에 자리 잡은 너는
까만 밤의 외로움도 어두움도
한 겨울의 살을 찢는 추위도 모르겠지
너만의 빛이 밤새, 혹은 길고 긴 겨울 내내
곁에서 지켜줄 테니
세상 어둠 속에서도, 추위 속에서도
안전하고, 평온하고, 고요하게 느끼게 해주는
너는 내게 그런 존재
억새가
바람에 쓰러진다
또 바람에 일어난다
우리는
마음 앞에 주저 앉는다
또 어떤 마음 덕분에 일어난다
가냘프디 가냘픈 몸으로
휘어질지언정 부러지지 않는 억새처럼
나약하디 나약한 마음으로
휘청일지언정 포기하지 않게 만드는
너는 내게 그런 존재
덩굴이 벽을 타고 바닥을 타고 뻗어나가는 것보다
더 아름다운 모습은
그 가냘픈 줄기를 서로가 서로에게 기대어
함께 비틀고 붙들어주고, 매달리며
함께 하늘을 향해 뻗어 올라가는 모습
누가 둘을 붙여준 적도, 묶어준 적도 없는데
기댈 벽이 없는 곳에서
누일 바닥이 없는 곳에서
그렇게 둘이 하나가 되어 서로를 지탱한다.
너는 내 운명
너는 내게 그런 존재
해가 지고 어두워졌을 때
더 선명히, 더 빛나는 것들이 있다.
밤하늘의 별이 그렇고
인왕산에서 내려다본 도시의 야경이 그렇고
등산로 까만길 보이지 않아 더욱 선명해지는 걸음마다의 숨소리가 그렇다
너도 그렇다
가장 낙심하고, 가장 외로울 때
무엇보다 선명해지고 빛나는 마음하나,
"그러니 나를 믿어"
너는 내게 그런 존재
주머니에 달랑거리는 헤드랜턴 하나가
칠흑 같은 어둠 앞엔 유일한 길잡이가 되어준다.
이걸 사놓고 1년 만에 처음 쓰는 날이었는데
사실 이 헤드랜턴은 1년 내내 서랍 속에 고이 모셔두고
스위치 한 번 켠 적 없지만, 마음으론 늘 켜두었던걸
너는 알까
내게 오는 길
헤매지 말고, 넘어지지 말고, 아프지 않길 바라며
마음으로 늘 켜두었던 불빛.
너는 내게 그런 존재
처음 산을 오르던 그때부터 늘 가방에 달아놓고 함께한 인형
늘 혼자 올랐던 산이지만
혼자 읊조리던 말,
혼자 들썩이던 순간,
혼자 바라보던 모든 것.
누군가는 지켜봐 줬으면, 아니 지켜봐 주길 바라며
함께 다닌 내 짝꿍
혼자이지만 혼자이지 않을 수 있는 이유
너는 내게 그런 존재
사연하나 땅에 감춰놓고 오고 싶어서
조그마한 쪽지와 삽도 들고 갔는데
결국은 땅을 파지도, 숨겨놓지도 못하고
그저 다시 가슴속에 품고 왔다.
밤이라 무서워서 그랬다고 했지만
사실은 애틋한 그 마음,
차가운 땅 속에 두기도 아까웠다는 걸
찬 이슬에 젖어 번져버릴까 염려했다는 걸
잊혀지다 사라질까 걱정했다는 걸
그렇게 주저하다 결국은 다시 주머니에 쏘옥 넣고 온 걸
아무도 모를걸, 너도 모를걸
너는 내게 그런 존재
10월 인왕산 이야기입니다 마지막주 주말이 11월과 걸쳐있긴 했지만요.
올해의 첫 야등이었는데
작년에 아기새 데려갔다가 아기새가 힘들다고 투덜거렸던 게 기억이 나네요 ㅋㅋㅋ
(다신 따라오지 않았다는 슬픈사연....ㅋㅋㅋㅋㅋ)
단풍에, 야경에
유난히 지난달과 달라 보인 인왕산을 잘 보고 왔습니다
그런데 작년 이맘때는 옷을 훨씬 가볍게 입고 갔었는데, 올해는 추웠어요
야등이기도 해서겠지만 칼바람에 귀 떨어지는 줄,,,,
산은 곧 겨울일 것 같아요
이제 딱 두 번 남았어요
진짜 열두 번 성공하고 달력 만들테다 ㅎㅎ
매달 저의 시선에 함께 머물러 주셔서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