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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레몬트리 Nov 10. 2024

실밥

한땀한땀 정성이 필요한 우리의 만남 

오후에 여름옷 마저 정리하고 가을 겨울 옷 정리하고 

일요일 저녁마다의 주말루틴이자, 다음 주의 안녕을 기원하는 나만의 오래된 의식 - 다림질 ㅎㅎ

(가을 겨울은 니트나 카디건 안에 셔츠 입으면 되니까 조금 다림질 설렁설렁해도 되니 좋다 ㅋㅋ)

그렇지만 아이 교복은 정성껏 다려주고, 

주말의 루틴이니까 또 건너뛰면 허전하니 오늘도 저녁엔 다림질로 마무리


살림을 별로 좋아하지 않지만 그나마 잘하는 종목을 꼽으라면 바느질과 다림질인 듯 ㅋ

주름 사이로 다림질을 하면 쫙 펴지는 기분에 쾌감이 느껴지기도 하고, 

스팀을 뿜을 때 나는 특유의 수증기향이나 적당한 습도도 좋다. 

다 끝내놓고 줄 세워 걸어두고 볼 때의 만족감이란 (으쓱으쓱) ㅎㅎㅎㅎㅎ



그런데 다림질이나 빨래 정리를 하다 보면 실밥이 삐죽 튀어나온 게 보일 때가 있다. 

가위로 툭 잘라도 되지만 어떤 건 그냥 손으로 톡 떼면 될 것 같아서 무심코 툭 잡아당겼는데 

올이 투두둑 터져버리는 난감할 때가 있다. 

마치 꾹, 참고 있었다는 듯, 투두둑 터져버릴 때의 당혹스러움 


마찬가지로 마음에도 그런 실밥이 있는 것 같다. 


못내 서운하고, 못내 아쉬워도 속상해도 꾹, 참고 있다가 

무심코 어떤 말 한마디에, 또는 어떤 별것 아닌 상황에 터져버린 실밥의 올 풀림처럼 

마음이 꿀렁꿀렁 다 쏟아져버리는 날. 


또는 반대로 좋아하는 마음, 바라보는 마음 애써 숨기고, 아닌 척 꾹꾹 눌러 담아두었지만 

언젠가 어떤 눈빛 하나에, 표정하나에  꼭꼭 박아두었던 박음질이 흐물거리며 풀려버리는

애타고, 안타깝고 속절없는 날 


바느질이야 터진 부분 곱게 다시 꿰매어주면 되지만 

속상한 마음이든, 애타는 마음이든 

사람의 마음은 

툭! 터져버리면, 한번 풀려버리면  쩔쩔맬 수밖에 방도가 없다. 


사람과 사람이 만나 사랑을 하는 건, 

서로 다른 날실과 씨실이 사이좋게 서로 만나고 지나가면서  

두 선이 함께 면(옷감)을 한 땀 한 땀 만드는 과정이라고 생각한 적이 있다.  

그래서 한 땀 한 땀 정성을 들여야 할 때 어느 한구석에서 대충 하거나, 

실을 당겨가며 해야 하는데 엉성하게 하다 보면 꼭 미운 실밥이나 엉키는 경우가 생긴다는 것. 

관계에 있어서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했던 것 같다. 


옷감은 수선이 되지만 

마음은 수선이 실로 쉽지 않으니, 

기왕이면 누군가와의 시작은 처음부터 정성스럽게, 올 풀림 걱정 없게

야무지고 단단하게 그렇게 맺어지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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